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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호산나의 교훈 (마 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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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교회의 절기 중에서 부활절은 가장 비중이 큰 절기이다. 부활절은 40일 전부터 사순절이라는 절기를 통하여 시작이 된다.

2.그 사순절의 마지막이 바로 고난주간이다.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셨다.

3.그 당시 예수님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지배자에게 억압당하고 있던 그들에게 예수님의 존재는 대단한 것이었다.

4.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종교지도자로서 보다는 민족의 지도자로 더 환영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입성이 틀림없이 그가 민족의 지도자로 정식 선언하는 절차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5.그래서 예수님이 입성하던날 예루살렘에는 엄청나게 많은 군중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6.물론 예수님도 왕의 자격으로 입성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과 군중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심지어는 제자들 까지도 예수님의 생각을 모르고 있었다. 최초의 고난주간은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 속에서 출발을 하였다.

7.입성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민족의 환호는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진리를 모르고 있었다. 오해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행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일중의 하나다.

I.예언의 성취였다(1-5).
A.이사야와 스가랴가 예언하였다.

1.그들은 한결같이 메시야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 올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의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예언이었다.

2.예수님은 먼저 나귀를 확보해야 했다.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이런 일을 알아서 처리할만한 능력이 없었다. 유능한 비서는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스스로 알아서 처리를 한다.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전혀 감지할 수가 없었다. 서로의 세계가 달랐기 때문이다.

3.제자들 역시 일반 군중들과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주님의 뜻을 헤아렸다면 스스로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했을 것이다.

4.주님은 제자 두사람에게 보이는 동네에 들어가서 나귀를 끌고 오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아울러 더이상의 질문이 필요없도록 모든 궁금 가능성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셨다.

5.이미 예수님의 활동중에 이런 종류의 신비한 일들은 있어왔다. 갈릴리 호수에 낚시를 넣으면 고기가 물릴 것인데 그 안에 돈이 있을 것이라든지 기타 가능성있는 유사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인지 제자들은 아무 말도 않고 그대로 순종하였다.

B.죽음을 위한 입성이었다.

1.지금 주님 앞에는 왕이 될 수 있는 길과 사형수가 될 수 있는 두개의 길이 놓여 있었다. 주님은 얼마든지 화려하게 입성하실 수도 있었다.

2.한국의 교회사는 황무지를 일구워 장미꽃을 피운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성도들은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헌금하여 그 지역을 압도할만한 교회당을 건축했다. 어느 특정한 한두사람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는 거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일지라도 힘을 합하여보니 큰 일을 해낸 것이다.

3.마찬가지로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주님을 위해서 힘을 합하였다면 얼마든지 큰 일을 해

낼 수 있었다. 적어도 주님께서 동의 하셨다면 말이다. 겨우 나귀 새끼 그것도 돈주고 산것이 아니라 요즘말로 “렌트카”가 아닌가 어찌 주님께 자가용을 사실 능력이 없었을까

4.지금 우리나라는 풍요로운 경제력으로 덕분에 목사님들 대다수가 업무를 위한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 경자동차 부터 수천만원에 이르는 고급 승용차 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5.주님은 죽음을 위한 입성을 하셨기 때문에 나귀새끼를 무상으로 렌트하셨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들은 어찌하든 ‘살아보려고’ 아우성을 치는 때문인지 최대한 화려하게 자신을 장식하고 있다.6.우리는 주님의 고난주간을 지내면서, 나귀를 타신 주님을 생각하면서라도 현재의 수준에서 한 단계 낮추는 결단을 할 필요가 있다.

7.주님을 태운 ‘나귀’는 평화와 순결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성도의 검소한 생활은 이 시대의 양심이 된다.

8.성도는 궂이 세상으로 부터 대접받으려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모든 것을 포기하셨다. 그야말로 초개와 같이 내어 던지셨다. 우리도 대접받으려는 마음을 버리자.

II.의미없는 외침이었다(6-11).
A.호산나라고 외쳤다.

1.“호산나”라는 말은 ‘기원하노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군중들의 이 외침은 결코 헛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의미를 몰랐다는데 있다.

2.그야말로 한치도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혼미한 상황이 지금 전개되고 있다. 분명히 이들은 입성하시는 주님을 향하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다.

3.그러나 이들은 몇일 후 그 주님을 향하여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외치게 된다. 이 얼마나 비정한 세상인가

4.언제는 당신이 없으면 안된다고 온갖 수단을 다 떨다가 어느날 갑자기 ‘이제는 필요없으니 사라져 달라’는 식이다.

5.더군다나 주님은 이 모든 일의 앞을 다 알고 계시지 않는가 지금은 저들이 나를 향하여 저렇게 열광을 하지만 이제 몇일만 지나면 너희들은 나를 죽어라라고 외칠것이다 라고 생각해 보자.6.이들중에 자신의 외침처럼 ‘구원받은 자’가 몇이나 될까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자신의 죄를 위하여 죽는 분 이라고 믿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7.그러나 호산나의 위력은 금방 나타났다. 예루살렘 시내에 금방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도대체 저사람이 누구요라고 궁금해 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대단한 홍보의 효과 였다.

B.주님을 찬양하자.

1.예루살렘의 주민들은 뜻도 모른채 호산나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2.그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외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았더라면 그들은 모두 구언받을수 있었을 것이다.

3.지금 우리들은 어떠한가 사이비 종교에 속아 교주에게 기만당하는 것처럼 몸은 예배당에 와 있지만 마음이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도 조금도 다를바 없는 것이다.

4.군중들의 소란이 온통 지역을 뒤흔들었다. 만일 그들이 참으로 진리를 안다고 그렇게 하였다면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만일 지금 우리들이 그 당시의 군중들 처럼 ‘호산나’라고 외친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5.사람들은 ‘도대체 에수가 뭐요’하고 물었다. 믿음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하여 힘있게 외쳐댄다면 그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궁금해 할 것이다.

결론

1.호산나라는 뜻은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그래서 “호산나”라고 외쳐야 한다.

2.그러나 세상에는 아무 뜻도 모른채 맹목적으로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혹시 나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3.주님은 말을 타지 않으시고 나귀를 타셨다. 그것도 나귀새끼를.왜 그러셨을까 허영심을 버리고 겸손을 호소하시기 위해서 였다. 허영심을 버리자. 허세를 버리자. 그리고 낮아지고 겸손해지자.

4.의미도 모르는 외침이었지만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웠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듭남을 체험하고 예수의 사랑을 깨닫고 외친다면 세상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러므로 우리는 힘껏 주님을 찬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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