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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용서의 힘 (마 18: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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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용서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의무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감정적 존재이기 때문에 용서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하는 데에도 하나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용서하려면 참 는 힘, 이해하는 힘, 사랑하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대하여 인간적 의리를 지키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참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의 결점을 잘 알 고 있었던 것 같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묻기를 '주님 형제가 내게 죄를 지 었을때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한 일곱 번 정도 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아마 그때 베드로는 마음 크게 먹고 '일곱 번까지'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 하여 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용서하라는 교훈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찬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주의 명령입니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 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18:36)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에서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만일 이렇게 무제 한적으로 용서만 한다면 우리가 오히려 무시당하지 않겠나 하는 걱정입니다.

해치울 것은 본때 있게 해치워야지 힘도 없고 줏대도 없는 사람처럼 무조건 용서만 한다면 상대방이 얼마나 나를 깔보고 무시하지 않겠나..... 그렇치 않 아도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앝잡아 보는 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 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 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십니다.

또 하나의 의문은 경우에 따라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도 있을 것 인 데 그것도 용서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고, 그리고 이 용서의 능력을 우리 가 어떻게 우리는 소유할 수가 있는가 다시 말하면 감정도 초월하고 이해 관계도 초월하여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우리는 어떻게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 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어서 하늘에서 도 풀리도록' 하여 모든 것이 다 잘 풀리게되는 그러한 은혜와 축복을 풍성 히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첫째로, 용서는 약해 보이는게 아니냐 하는 의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남을 용서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천치 바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 닙니다. 용서는 곧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으로 이기라는 권고입니다. 사도 바 울도 '악에게 지지말고 오직 선으로써 악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적대 감 정을 품고 보복을 하고 상대방을 패배시키는 것이 진정한 힘이 아닙니다. 그 것은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이긴다면 다시 공격을 당하게 되고 끝없는 싸움이 계속될 뿐입니다. 공자님도 '사람이 오해를 받거나 도둑을 당하여도 그것을 잊어버리기만 하면 결국 아무렇치도 않다. 세상에서 분개하지 못하는 사람은 천치요 분개하지 않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용서란 오해를 받고 손해를 보아도 분개하지 않는 어진 마음인데 그것이 곧 진정한 힘입니다. 분개하지 않고 오해나 손해를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입니다. 용서 는 어진 마음을 가지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는 사람을 누가 약하다 하겠으며 누가 감히 업신여기겠습니까 만 달란트의 빚을 준 채 권자 왕은 가장 강한 자입니다. 그는 왕입니다. 그런데 그 막강한 권세와 재 물을 가진 왕이 그 큰 돈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를 불쌍히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석방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마찬자지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으로 실력자입니다. 적어도 남을 용서하는 마음과 정신은 위대한 힘입니다.

힘이 있는 자가 용서하는 게 아니라 용서하는 자가 힘있는 자입니다.

우리는 힘있는 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죄와 허물을 용서하고 나에게 잘못 한 것을 용서하는 것은, 곧 모든 빚을 면제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빚을 면제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강한 자입니다. 그리고 그 빚을 면제받은 자는 용서의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여기 종이 왕에게 엎드려서 '조금만 참아 주 십시요. 그러면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라고 간청하니 왕은 그를 불쌍히 여겨 그 빚을 모두 면제해 주고 놓아 주었다고 했는데 누가 과연 강한자 입니까 용서한 자입니다. 용서는 곧 큰 힘입니다. 그러므로 용서하는 자는 멸시 당하 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세계에서 강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신 령한 은혜 생활에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항상 위에만 있고 아래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남을 용서하는 자가 가장 강한 자라는 것을 잊지 맙 시다.

둘째로, 그러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절대로 용서해서는 않 되는 것은 어떻게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살아 가는 동안 나쁜 생 각을 가진자들,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자들,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않될자들 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도 용서해야 합니까 용서는 용서이지 묵인이 아닙니 다. 용서라고 하면 묵인하고 눈감아 주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용 서란 비리나 부정을 눈감아주고 모르는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용서의 정신은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지 공의 와 진리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용서에는 희생이 따르고 출 혈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 관계에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일 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용서해서는 않될 일도 있습니다. 가령 물질 상의 손해배상이나 혹은 채권.채무관계 같은 겨우, 그것을 정확히 계산하여 갚든지 그렇지 않으면 면제하던지 해야만 그것이 해결됩니다. 또한 감정적인 갈등이나 원한은 자존심을 내어버리고 높은 인격이나 기도로써 서로 화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용서하려고 하지만 상대방이 그것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용서의 길은 막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곱 번 뿐 아 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일방적인 것 이라도 좋으니 적어도 너희들의 마음 자세는 그러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 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막대한 희생이 따릅니다. 진정한 용서는 그 희생이 어 떤 종류의 희생이든지 그것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면서 죽으셨습니다. 용서는 그 런 것입니다. 참된 용서는 내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것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일흔 번씩 일 곱번'이라고 하는 것은 산술적인 숫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죄가 무엇이던지, 그 희생이 어떻든지, 상대방이 마음 문을 꼭 닫고 열지 않더라도 용서하라는 교훈입니다. 그러면 내가 용서 할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대답입니다.

그 이유를 여기 비유의 말씀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왕에게 빚을 탕감받고 나오는 이 사람에게도 자기에게 빚진 동료 하나가 있었는데 사람은 그를 만 나자마자 멱살을 잡고 심하게 빚을 독촉하고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에 그 동료는 엎드려 사죄하면서 '조금만 참아 주면 반드시 갚겠네' 라고 간청 했습니다. 그 모습은 조금전 자기 자신이 임금에게 간청하던 바로 그것이었 습니다. 이 사람이 만일 자기가 누구였는지 겸손히 자신을 알았더라면 그렇 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고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다 집어 넣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너무 모릅니다. 방금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겨우 백 데라니온 빚진 것을 용서해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우 리들이 구원을 받았는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는데, 동 료가 우리에게 행한 작은 잘못 하나를 용서해 주지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 다.

여러분! 죽을 것을 살려 준 은혜,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죽 음에서 구원받은 우리에게 다른 것이야 무엇이 그리 대단합니까 우리는 불 가불 죽을 수 밖에없던 것이 살게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 님의 십자가 보혈은 일만 달란트보다 더 갚진 은혜인데 그것을 우리는 거저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해야만 될 우리의 의무입니다. 용서는 죄를 묵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어려운 용서의 길만 이 이웃을 살리는 길이 되고 또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살리는 길이 되는 것 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이 엄청난 힘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용서는 분명 보이지 않는 큰 힘이라고 믿습니다. 용서는 사람의 과거를 완전히 변화시키 는 힘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창녀는 나중에 주님을 열심히 따르 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38년이나 병상 에서 고생하던 병자는 죄의 용서를 받을 때에 그의 침상을 메고 걸어갔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은 주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받고 사도 바 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용서와 은혜를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그 분은 예 수님이십니다. 그 힘은 예수님에게서 오는 힘입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자기 자신이 세운 도덕적 기준들이 다 있게 마련입니 다. 그래서 그 기준을 가지고 자로 재듯이 다른 사람을 재고 평가하고 때로 는 심판하고 정죄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의 기준에 지나지 않습 니다. 그 기준은 자기의 지식, 자기의 경험, 자신의 선입관, 때로는 고정관념

같은 것들에 의해서 정해지기 때문에 그것이 절대적이라 말 할 수는 없습니 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저마다 가지고 있는 이 자기 기준을 버리지 않으면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부터 버리지 않으면 용서의 새 힘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옛날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이 자주 충돌한 이유는 바리새인들의 기 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준은 우리와 아주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무한히 용서하시는 사랑'입니다. 인간은 크게 잡아 '일곱 번'이지만 하나님은 '일흔 번씩 일 곱 번' 입니다. 원수는 미워하고 당연히 복수하는 것이 인간들의 관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 를 핍박하는 자에게 복을 빌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사회에는 윤리와 사 회적 규범이 있습니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그 규범들을 어기면 그 사 람은 지탄을 받습니다. 사회는 그것을 용서를 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개인은 자기를 용서해 주지않는 사회에서 이탈하여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인 행위를 일삼는 범죄자가 됩니다.

이들을 바로 잡아 주는 것은 처벌이나 정죄가 아닙니다. 인간은 처벌함으 로써 고쳐지거나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랑과 용서가 그들을 고치고 새롭게 합니다. 하나님께는 용서하시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인간은 변 화되고 새롭게 되어집니다. 인간의 수치스럽고 후회스러운 과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오직 한 길은 용서 뿐입니다. 용서는 과거를 완전히 변화시키고 현 재와 미래에 용기와 희망과 활력을 줍니다. 이 힘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옵니 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남을 용서합니까 또 남을 용서하지 않고 어떻게 감히 나를 용서해 달라고 하겠습니까 용서는 곧 사랑이요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넷째로 용서에는 언제나 큰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일할 때 보상을 바라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상이 없어도 사랑은 자 기의 할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것은 내 가 남의 죄를 용서해 준 공로 때문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용서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앙심을 품고, 매듭을 풀지 않으면 그 사람의 정신이 이미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하나님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셔서가 아니 라 자신이 자기를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겨우 100 데나리온을 탕감해 주 지않은 그 사람에게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 준 임금이 격노하여 다시 그를 잡 아가두어 그 빚을 갚게한 것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겨우 100 데나리온을 용서하지 아니한 그 사람의 마음이, 자기 자신이 용서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 져 오게 했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용서는 이웃을 구원하 고 나 자신을 구원하는 길입니다. 용서는 모든 매듭을 풀어서 평화와 화해와 은총을 얻게 할 것입니다. 용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큰 힘입니다. 이러한 큰 힘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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