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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에 대한 적의 증거 (마 27:42, 막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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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하여 예수님편에서 참된 증거를 하는 이가 있으니, 이는 성부와 성신이 증거하시며, 예수님 자신이 증거하였고, 또 예수의 친 구 곧 선지자들과 제자들이 증거하였다.

 이외에 예수의 원수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이 있으니, 마귀도 예수 를 지존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였고, 예수님당시, 예수를 모 해하던 원수들도 예수를 증거한 일이 있다.

 예수의 적은 예수에게 대하여 인명한 것이 외식으로 한것도 있고 부 득이 그리하여 증거 중에는 예수님 편에서 하는 증거보다는 적이 하는 증거가 더욱 유력할 경우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적의 악덕만은 가증한 것으로 알되, 그 증거된 결과는 우리가 상고하여, 좋은 영양으로 삼을 수 있다.

 1. 하나님의 참 도를 가르치는 참된 선생이라고 마22:16에 의하면, 바리새인과 헤롯당들이 예수에게 나아와 "선생님 은 진실하시고 하나님의 참 도를 가르치시며 사람을 편벽되이 보지 아 나히는 줄 우리들이 아는 것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심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물론 저들이 책잡으려는데서 아부하는 말이다.

아부하는 사람들은 매양 거짓 말을 하는 것이나, 저들의 거짓말도 예 수에게 대해서는 참말이 되는 것이다.

 첫째, 저들이 예수에 대하여, 선생님은 진실하다고 하였다. 선생이란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참된 것은 선생된 자에게 마땅히 있어 야할 소질이다.

 둘째는 저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참도를 가르친다고 말하였다. 저들이 비록 도를 배우지 아니하지만, 저들의 말이 부지중에 예수의 고귀한 품격에 감응한 것은 토설한 점이 있다.

 셋째, 사람을 편벽되이 보지 아니하고,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한 다고 증거하였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으로 예수에게서 여러 번 견책을 받았음으로 하는 말일 것이요, 또한 예수의 태도도 정히 그러 한 것이었다.

 원수가 이와같이 예수를 증거하기 전에 우리는 예수의 참되시고 하나 님의 참도를 가르치시는 선생인줄 알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함 도 이미 아는 것이지만, 원수도 이렇게 증거한 것을 보면, 예수의 태 도는 얼마나 고귀하였던 것을 사실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2. 능력 많으신 예수라고 요한복음 11:47에 의하면 예수께서 나사로를 소갱케 하신 뒤에 제사 장과 바리새 교인들이 예수를 모해하려고 공의회를 열고 하는 말이 " 이 사람이 이적을 많이 행하니 우리들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하는말 은, 예수 당시의 예수의 적이 예수의 이적을 부인하지 아니한 것이다.

 주후 200년 이후로 오늘까지 예수의 이적을 부인하려는 적이 혹 있었 으나, 예수 당시의 적들의 증거만은 못할 것이니, 이적은 많고, 또 확 실한 것임은 적의 인명에 의하여도 분명한 사실이다.

 요한복음 9장의 나면서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한 이적에 대하여도 바리새 교인은 그 부모를 꾀어 그 이적을 가리려 하엿지만, 이는 골방 속에서 행한 일이 아니요, 대중앞에서 행한 만인 주지의 사실이매, 적 도 그 이적을 부인하기 불가능하였다.

 3.죄인의 친구 예수라고 누가복음 15:2에 의하면,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는 죄인을 대접한다고 비난하였고, 삭개오의 집에 들어갈 때에는 저들이 원망하 였으며,바리새교인의 집에서 같이 잡수실 때, 예수께서 죄있는 여인 을 용납한다고 허물하였고, 마태의 집에서 잡수실 때에도 바리새인들 이 예수를 세리와 죄수들의 친구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기에 대하여 크신 복음으로 말씀하사,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하시였다. 과연 예수는 선한 목자가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까지 힘쓰신 것이 다.예수께서 죄인을 부르러 오시고, 죄인의 친구되시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다.

 인류가 반죄인이 아니요 전죄인인 까닭에, 예수는 더욱 우리의 친구 요 우리의 소망이다.

 4. 남을 구원하고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 예수라고 마태복음 27:42과 마가복음 15:31에 의하면, 원수들은 예수를 십자가 에 못박고도 아직 부족하여 예수를 희롱하면서, "저는 남을 구원하였 으되, 제 몸은 구원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는 물론, 저희가 기롱함 이었으나, 가야바가 예수에게 대하여,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한 말이 우연히 예수의 사명을 증거함과 같이, 핍박하 며, 기롱하는 저들의 말도 예수의 사명을 증거하기에 족하다.

 예수는 과연 남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신 것이다. 남을 구원하는 자는 반드시 자기를 희생함은 진리이다. 나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도 그러하니, 친구나 사회를 위하고자 하면 나를 바라지 아니치 못하는 것이며, 예수를 위하여서도 먼저 자기를 희생치 아니하면 봉사 는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남을 위하는 일은 자기에게 수고나 희생이 아니고서는 될 것이 하나도 없다.

요한복음 12:24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그 열매를 맺는다 고 하심과 같이,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죄인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 리지 아니하면 우리를 죄악과 사망에서 건지기 불가능한 것이므로 예 수는 몸을 버리신 것이다.

 희생함에는 세가지 요의가 있으니, 첫째 희생은 자발적 허락으로 하 여야 한다. 노동자는 수고하나 이는 자발적 허락이 아니요, 노임을 얻 고자 함에 있는 것이니, 이와같이 만물을 희생하나 이는 불완전한 것 이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목적이 순전하여야 한다. 명예,금전,안일,치병 등 자신의 요구를 섞지 아니한 무아의 희생이라야, 그 목적이 완전 무결 한 것이다. 예수의 희생은 이런 고귀한 것이니, 저들이 이른바 남을 구원하되, 자기를 구원하지 아니하는 예수시었다.

 셋째, 희생은 사랑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가 말씀한 대로 몸을 불사를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 유익함이 없나니라함은 이 를 이름이다.예수께서는 순전히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죄인을 사 랑하심으로의 희생시었다.

 그런즉, 예수의 희생은 자발적 허락과 고귀한 목적과,순전한 사랑으 로 하신 완전한 희생이요, 우리의 구원이시다.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서 내려 오시지 아니하셨는가 능력이 부족하심 이냐 로마 병정이 지킴으로 못 내려 오신 것인가 아니다. 십자가에 서 내려오실 능력이 부족하심이 아니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십자가 의 죽음을 이루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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