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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마 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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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과 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강하고 힘이 있는 사람이 살아 남는 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이 세상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천국 복음을 전하는 그 순간에도 로마는 강한 군사로 유대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힘과 용기를 존중히 여기고 나약함이나 긍휼,자비는 경멸했습니다.
당시 힘이 없어서 로마의 속국이 되어 통치를 받고 있었던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면 힘을 길려서 독립을 하여 종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온갖 고통의 짐을 벗어버리고 행복하게 살기를 소원하던 사람들이 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힘으로 로마를 물리쳐 주셔서 자기들의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 주기를 원하면서 따라 다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복이 있는 사람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힘이 있어 지배하고 그 힘으로 많은 것을 누리는 자들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긍휼이란 무엇인가

긍휼(λεο 엘레오스):-당연한 결과로 비참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겨서 그를 돕는 것을 긍휼이라 합니다.

비천에 처하여 있는 사람이나, 고통을 받고 있는 자들을 구하여 주는 것을 말합니다.

한글 성경은 “긍휼히 여긴는 자는”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긍휼과 여긴다는 말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같이 생각되지만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말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긍휼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이나 감상적인 생각이 긍휼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개미 한 마리 못 죽인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합니다. 감정이 여린것과 긍휼과는 틀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긍휼은 하나님의 의를 전재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속에 긍휼이 있고 긍휼속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토마스 왓슨이라는 목사님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은 하나님의 품속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의좋은 세 자매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아카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해서 가장 소중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조건 없이 주셨습니다. 사랑은 조건 없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것을 은혜라 합니다.
구원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은혜와는 반대로 당연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는 것을 긍휼이라합니다.
죄인들은 누구나 죄의 값으로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불쌍히 여기사 저주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사랑은 애인을 방문하는 친구와 같다면 긍휼은 병자의 병을 고쳐 주기 위해서 방문하는 의사와 같은 것입니다.
긍휼은 죄의 결과로 비참한 상태 속에 놓여 있는 사람을 향한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입니다.

이러한 긍휼을 누구에게 찾아 볼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입니다.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죄의 결과로 당연히 고통당하고 죽어야 하지만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그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느 9:16 저희와 우리 열조가 교만히 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느 9:17 거역하며 주께서 저희 가운데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하며 패역하 여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사오나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느 9:18 또 저희가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이르기를 이는 곧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라 하여 크게 설만하게 하였사오나
느 9:19 주께서는 연하여 긍휼을 베푸사 저희를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 행할 길을 비취사 떠나게 아니하셨사오며

시 86: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시오니

시 145:9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 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 도다

하나님에게 공의만 있고 긍휼이 없으셨다면 지구는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죄인의 상징인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까
히 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들이 죄의 값으로 죽는 것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사 살려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죽음으로 슬퍼하시는 것을 보시고 살려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오빠가 죽음으로 슬퍼하는 누이들을 보시고 살려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귀신들이 들려 고통 당하는 것을 보시고 고쳐 주셨고, 병들어 고통 당하는 것을 보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이 십자가입니다.
자신을 배반하고 조롱하고 침을 뱉으며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 드리시던 주님의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긍휼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눅 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십자가는 사랑의 완성이요 긍휼의 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이러한 긍휼이 있습니까

혹시 실수해서 어려운 고난에 빠져 있다면 안된다 어떻게 도와줄 수 없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됩니다. 그러나 하면 안된다.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고집을 피우며 하다가 문제가 생겼다면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됩니까 흥 ./ 내 말 않듣고 고집 피우며 하더니 당연하다,속 시원하다.

롬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당연한 결과로 비참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겨서 그를 돕는 긍휼이있습니까
당연한 결과로 비천에 처하여 있는 사람이나, 고통을 받고 있는 자들을 구하여 주는 긍휼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과시 욕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하는 긍휼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긍휼의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긍휼의 사람이 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까요

1.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들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입어야 긍휼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 입니다.
하나님이 긍휼을 입기 위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자 가되어야 긍휼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합니다.
딤전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긍휼이 누구에게서부터 우리에게 임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딤전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그리스도안에 거하여야 긍휼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의 가지라 했습니다. 포도나무이신 주님은 긍휼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와 연합되어 있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성도라면 주님의 긍휼을 받아 가지인 우리도 긍휼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입니다. 그래야 긍휼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계속적으로 긍휼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질 때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들에게 계속적으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여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일곱번 까지 할까요 아니다.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하라.
천국은 그 종들과 계산하려는 마치 주인과 같다. 주인이 계산할 때 일만달란트라는 빚진 사람이 들어왔다. 주인은 너의 몸과 처와 자식까지 팔아서 빛을 갚으라. 참으소서 내가 다 갚겠습니다. 주인은 긍휼이 여겨 어마어마한 빛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탕감 받은 사람이 길에서 자기에게 백 데라니온 빚진 친구를 만났습니다. 조금만 참아 달라고 간구하는 친구를 허락하지 않고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마 18: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 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마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마 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마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하시리라.

맺는 말
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는가
 행복한가

1.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2.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만들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3.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긍휼히 여김을 받을 뿐만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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