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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하신 분 (요 08: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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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간의 限界

현대 科學은 모든 면에서 인간의 한계를 도전하고 있으나 인간이 결코 성공하지 못할 도전의 영역은 時間입니다. 물론 과학은 인간의 수명을 60세에서 90이상으로 연장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의 한계를 결코 超越하지 못할 것입니다. 요즈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문제성이 있는 영화이지만 <빽 투더 퓨쳐>(Back to the Future)가

1.
2.3탄으로 제작되는 것을 보면서 시간을 극복하려는 현대인들의 몸부림이 얼마나강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시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2.예수님의 선언

성경은"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히9:27)라고 합니다. 시편 기자는"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그런데 인간으로 오셨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느 날 시간의 한계 속에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충격을 주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로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Before Abraham was I am)하시니."(요 8:58)이 선언은 <나는/이다> (I am)라고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세번째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선언입니다. 이 메시지는 예수님이 영원성에 대한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불과 33년밖에 살지 않으셨고 짧은 기간을 이 땅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본문을 통해서 자신의 진정한 기원은 이 땅에 계신 그 순간 부터가 아니라 아브라함과의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무려 2천년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브라함이 나기 이전 부터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있었느니라'라고 아니라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여전히 아직까지도 계시는 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58절)이것이 요한복음이열리면서 선포된 메시지였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으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존재의 시작은 태초 이전이었으며스스로를 영원자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
본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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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원한 생명의 처방자이신 예수님(5

2. 53절)


이 말은 "야,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너는 특별나느냐 어떻게 감히 <내 말을 지키면 죽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물론 예수께서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있었고 인간의 죽음에 대한 위대한 처방이 바로 부활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

어도 살겠고"(요 11:25)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아십니다. 그러나 죽음이후에 부활을 가능케 하심으로써 죽음을 넘어서는 해답을 제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시체로 썩어 가던 나사로를 살리심으로써 부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죽음에 대한 처방을 선언하신 분은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분 안에만 죽음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 생각의 한계를 초월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인간의 비교는 언제나 상대적입니다. 기껏해야 인간과 인간을 비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도 예수님이 위대하신 분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비교는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 4:12)"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즉, 우리 유대 민족 열두 지파의 출발을 이루었던 야곱보다도 크냐 고 묻는 것입니다.
(요 6:31, 32) 또 유대인들이 "너는 모세보다 크냐"냐고 질문했습니다.
(요8:)그리고 본문에서 "너는 아브라함보다 크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이 위대하신 것은 틀림없는데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한 질문들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생각한 차원은 유대민족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던 그들의 조상과 비교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주님은 인간과 비교될 수 있는 존재가아닙니다. 그분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한 知識, 동등한 榮光, 동등한 質의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찾아 오신 분이라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만이 가지고 있었던 영원한 질의 생명을 인간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오셨다고 선언하십니다.
바울의 선언처럼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물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롬6:23)요한복음 첫장에서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1:4)라고 선언합니다. 이 생명은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순한 생명 이상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요10:28)
그리스도는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의 解決者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영원하신 분이므로 가능합니다.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 전부터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지 못하고 죽음이라는실존적인 벽에 부딪쳐 인간의 허무와 불안을 고백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영원한생명을 주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아들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우리는 70, 8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인생살이에서 이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덤 건너편의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을 분명히 할 수 있으며, 그 분이 주신 영생을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누림으로써 새로운 질의 놀라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한없는 감격과 기쁨과 평안은, 오직 예수님으로 부터 온 것입니다 예수님 영원한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2. 영원한 치유자이신 예수님

<점쟁이와 예언의 은사> 오늘날처럼 과학이 발달한 새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점쟁이를 찾아가는데, 용하게 알아맞히는 점쟁이들도 많은 모양입니다. 점쟁이들이 곳곳에서 여전히 성업 중인 것을 보면 그들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마치 점을 보듯이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이것 저것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사를 가도 좋겠습니까 기도를 해봐 주십시오." 복채와 비슷한 헌금을 놓고 예언 기도를 받아서자기 앞날을 결정하려는 이런 모습은 결코 바람직한 신앙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여간 이렇게 알아맞히는 사람 중에서도 아주 잘 맞히는 사람을 "귀신 같이알아맞힌다"고 합니다.
(예화)어느 교회학교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설명했습

니다.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세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절대로 속일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것 하나하나를 다 아시거든요."이때 눈을 반짝이던 한 어린이가 선생님에게 말합니다.
"선생님 그러면 하나님은 귀신 같이 알아 맞히겠네요"본문에도 그 비슷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위대한 진리를 당당하게 말씀하시며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누누이 반복해서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귀신 들려서 그런것이 아니냐"예수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진리를 말씀하실 수 있는 까닭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다아십니다. 인간의 예감과 직감도 미래를 예언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고 점쟁이들이 잘 알아맞히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맞힐 수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것을 완전히 다 아십니다.
위대한 선언을 다시 한번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떤 상담자를 찾아가기 원하십니까
만약 내 과거를 완벽하게 아시며, 내 현재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시고, 또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서 나와 함께 하시며 놀라운 소원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 계신다면, 그 분을 찾아가서 당신의 모든 문제를 내놓고 의논하지 않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그 예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선언을 했습니다.(사9:6)"그는 모사라. 보라 한 아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니 그의 이름은 모사라!"이 '謀士'라는 번역이 좀 어색한데, 영어 성경에서는 '상담자'라고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상담자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과거를 아십니다. 그래서나의 과거를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현재도 바꾸실 있으며,나의 미래를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이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걱정에 싸여 있지는 않습니까

(이야기)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집회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장차 올 미래에 대해서 많은 설교를 했는데 그렇다면 목사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까"
"나는 나의 미래를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누가 나의 미래를 붙들고 있는지를압니다"빌리 그래함의 아주 적절한 대답입니다. 나의 과거를 현재 뿐만 아니라, 나의 미래까지도 가장 보람되고 가치있는 삶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예수님이 내 삶을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하거나 조바심을 가질 필요가없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며 내 삶에 대한 처방과 해답을 완벽하게 알고 계신 그분이 내 삶을 인도하신다면 우리는 앞으로의 모든 공포로부터 해방될수가 있습니다.
주 앞에 오는 사람마다, 그리고 참으로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마다 주께서는그의 과거를 치유하시고 다 용서하십니다. "내가 너의 죄를 기억도 아니하리라"(히10:17)이 놀라운 치유자!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인생 길을 나와 함께 가시겠다고 약속한 임마누엘의 하나님! 나의 미래에 빛나는 영원한 기업을 보장하신 이 놀라우신 분!주님은 우리가 살면서 허덕이고, 넘어지고, 좌절하고, 불안해 하는 이유를 다 아십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그것을 설명하려고애씁니다. 그러나 그 근원적인 원인은 죄 때문이라는 것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이 종이라.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자유하리라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진정한 자유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과거로부터의 자유! 나를 얽매고 좌절시키는 이 치욕스럽고 끊어버리고 싶은 멍에에서해방시켜 주실 수 있는 그분!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한 내 삶의 길에 뛰어 드시며 나와 동행하시겠다고 선언하시는 분! 빛나고 영원한 기업을 나에게 보장하시며 그 미래를 향해서 함께 가야 한다고 외치시면서 그 미래를 보여주시는 이 놀라우신 주님!"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이 영원한치유자! 그분은 영원으로 부터 오셨고 영원을 알고 계시기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예수께서 우리가 겪는 고통과 갈등과 모

든 문제들에 관해 지금 여기에서 나의 진정한 치유자가 되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치유자가 내 삶 속에 들어오신 사실은 실로 감격과 감사와 찬양이 아닐 수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영원한 치유자이십니다.

3.영원한 구원자이신 예수님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56절)이 말씀은 대단히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도 예수님을 기다렸다는 말씀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꿈, 아브라함의 진정한 소원도 나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땅의 모든 족속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족속을 가르킵니다. 이 복은 단순이 땅에서 잘 먹고잘 산다는 정도의 복이 아닙니다. 근원적으로 그것은 즉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구원의 놀라운 복을 말합니다.
먼 훗날 바울 사도는 창12: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위대한 진리를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알지어다"(갈3:7)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핏줄을 타고 태어난 유대인 뿐 아니라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유대인이 아니라모든 이방인 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9절) 여기에서의 福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복음입니다. 성경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근원적인 복은 사실상 이 구원의 복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네 후손을 통해서 땅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이 얼마나 복된 사실입니까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셨을 때, 하나님은 벌써 아브라함의 후손인메시야를 통해서 온 세계의 모든 인류가 구원받을 것을 암시하였습니다. 유대인들과 전혀 상관이 없었던 우리들은 메시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되어 복된 삶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1)자유함

본문 (요 8:32)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예수님의이 위대한 선언에 유대인들은 어떻게 반문하고 있습니까"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33)"아니 언제 우리가 종 되었던 일이 있었습니까 자존심 상하는 말마시오"유대인들은 종이라고 하면 아랍 족속들을 생각합니다. 본래 아랍족속은 여자(사래)의 종이었던 하갈을 통해서 생겨났기 때문에 자기들의 조상이 종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이 후손이 아닙니다. 우리의 조상은 본래 종이 아닙니다. 그런데무엇 때문에 당신은 우리에게 자유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입니까" 이 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죄를 범하는 사람마다 죄의 종이라"(34절)우리의 조상이'양반인가 상놈인가'하는 것이 우리를 종이 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죄가 우리를 종 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야기) 칼빈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自由란 무엇인가 자유란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不自由란 무엇입니까 해야 될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할 수 없는것이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不道德한 죄의 性品에 끌려 다니고 있는 인간의 모습! 당신은 어떤 것이 진리이고 마땅히 해야 될 일인지 알면서도, 양심껏 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죄책에서의 해방! 진정한 용서 가운데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놀라운

비전과 능력! 이런 삶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또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容恕와 自由와 새로운 삶이포함되어 있는 구원의 놀라운 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죄책에 끌려 다니다가 마침내 죄의 삯인 사망과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던 우리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죄에서부터 우리를 해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저분하고 부끄러운 삶에도 불구하고 감히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고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자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이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2)유대인들의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민족만을 위해서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복음서에보면,예수께서는 이런 유대인의 오해를 철저하게 고쳐 주십니다. 사실 복음은우주적이고, 세계사적이며 모든 민족을 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1장부터가宇宙的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1:9)"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3:16)
하나님은 유대민족뿐 아니라, 온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빛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의 구주로 찾아오셨습니다.

3)예수님이 바로 나의 구세주라는 사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가 온 세상의 구주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분은 온 세상의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바로 나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위대한 메시지는 나의 복음인 것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단지 그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은 <내가>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원 전부터 계셨다가 죄 때문에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인생의 고뇌와 고통을 해결하시기 위해 인류 역사 속에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 우리를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사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이것은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 예수님의 선언을 듣고 그당시 유대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59절)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아주 위대한 聖者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성자 같은 소리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있었느니라. 아브라함도 나의 때볼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했느니라.나로서만 너희들의 죄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될수 있느니라."예수님은 훌륭한 분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그분은 좋은 분이다 소크라테스나 석가나 공자 같은 분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독교의 복음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든가 아니면미치광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당당한 선언을 할수 있겠습니까
++
맺는 말
++

결론은 분명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죄악과 죽음의 문제들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시고 그들에게 참된 자유와 진정한 해답을 주시기 위해서 찾아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당신은 그분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그분이 당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영원한 치유자가 되시며 영원한 구원자가 되셨습니까복음은 좋은 소식 정도가 아닙니다. 복음은 엄청난 소식입니다. 복음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이 땅에 찾아오신 어마어마하고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분이 나의 구원자가 되시며 나의 치유자가 되시며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내 삶의모든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이 되시며, 기쁨과 생명과 새로운 능력을 더하시는 나의 주님, 나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도 정말 그런 분이십니까 그렇다면 이 예수님께 돌려 드리는 당신의 감사는 무엇입니까 "오, 하나님, 저의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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