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사 09:6)

첨부 1


이사야서를 흔히 이사야의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가 이 책의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예수니이 탄생하기 700년 전에 씌워졌습니다. 그 시대에 주님의 사역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증거는 중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증거는 예언과 그 예언의 성취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수백개의 에언의 말씀이 있습니다.그 예언들이 신약성경에 무수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얼마든지 채을 수 있습니다.그리고 그 예언의 성취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매우함축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가 이 책들을 쓴 저자들을 인도하지 않았다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의 모든 에언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초점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에언만도 무려 300개 이상이 됩니다. 이 사실을 두고 수학자들은 말합니다.
주님께 대한 예언이 단지 50개만 된다 하드라도 그 예언들이 성취될 확률은 11억 2천 5백만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계산 합니다. 성경에는 무려 300개 이상의 예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에언들이 모두 성취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본문 말씀이 그리스도께 대하여 가장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메었고 그 이름을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성육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심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 사실을 그의 복음서 1장 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금 읽어 드린 이 귀절은 우리 주님 그리스도에 대하여 4가지 놀라운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님은 기묘자 모사 이십니다.
주님께 대하여 첫째로 불리워 지는 이름은 기묘자 모사 이십니다. 이 말은 카운슬러 라는 뜻입니다. 주님께는 지혜에 있어서 제한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친히 하늘과 땅의 만물을 창조 하셨습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일에 관해 모든 것을 아십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분야에 대하여 자문을 받고자 한다면 그 분야에 정통한 카운슬러를 채습니다. 법률에 대하여 알고자 한다면 변호사에게 갑니다. 건강에 관한 것이라면 의사에게 갑니다. 보석에 관한 것이라면 보석 감정사에게 갑니다. 건축에 관한 것이라면 마땅히 건축사를 채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묘자 모사 이십니다. 주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십니다. 과연 우리에게 충분한 카운슬러가 되십니다.
어느날 사람들이 주님께 듣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비밀에 관한 말씀 이었습니다. 주님은 미래의 일에 관하여, 죽음에 관하여,그리고 영생에 관하여 말씀 하셨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 지혜에 대하여 놀랐습니다. "이 사람의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놀라는 장면이 마태복음 5장 14절에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기묘자 모사 이십니다. 모든 생각과 모든 언어 그리고 우리의 모든 일들까지 낱낱이 아십니다. 주님은 바로 지금 여러분의 고민하는 문제도 아십니다.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하여서도 바두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런 주님을 믿고 그에게 나아가면 그의 지혜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주님의 지혜가 필요치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말 여러분에게 주님의 지혜가 요구 되십니까. 주님이야말로 우리에게 참다운 카운슬러 이십니다. 주님을 채으십시요. 주님을 믿고 주님의 지혜를 가지십시요.
우리의 카운슬러 주님은 야고보서 1장 5절에서 이렇게 부르십니다.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생각해 보십시요. 주님은 당신의 지도력과 방향 제시와 안내를 바로 내 생활 속에 넣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십시요.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둘째.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말씀은 능력에 있어서 제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뉘인 아기는 여늬 아기와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생애가 베들레헴 마구간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의 주소지를 33년간 세상으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계셨습니다. 육신으로 오신 아기 예수도 바로 그 하나님 이십니다. 요한복음은 그의 서두인 1장 1절과 2절의 말씀에서 이렇게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했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생각해 보십시요. 주님이 질병을 꾸짖자 몸은 치유되어 버렸습니다. 귀신을 명하여쫓아 내시매 즉시 물러 갔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자에게 명하시매 생명이 되돌아 오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능력에 있어서 전연 제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런 전능 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께 인생의 모든 문제를 맡기고 행복한 삶을 누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셋째. 주님은 영존하시는 아버지 이십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말씀은 주님의 사랑에 있어 제한이 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본래의 의미는 보호자입니다. 욥기서 19장 16절에 보면 욥은 빈궁한 자의 아버지 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는 보호자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103편 8절과 13절에서 이렇게 노래 합니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임자하심이 풍부 하시도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마치 아버지가 그 자식을 동정하는 것과 같이 우리를 동정 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에는 전연 제한이 없습니다.
여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소념이 낡은 새장을 흔들면서 골목길을 뛰어 오고 있었습니다. 옷은 낡고 땟국이 지르르 흐릅니다. 10살 가량의 아직 나이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 소년이 들고 있는 새장 안에는 몇마리의 작은 새들이 무서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한 신사가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그것을 어디서 잡았지, 소년은 덫을 놓아 잡았노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그 새들은 어떻게 할 작정이냐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소년은 가지고 놀 거예요. 장난감으로요. 소년의 대답을 들으면서 신사는 말했습니다. 머지 않아 너는 그 놀이에 싫증이 날텐데 그땐 그 새들을 어찌할 셈이냐. 집에 고양이가 한마리 있는데 새를 좋아 하거들랑요. 나중에는 고양이 먹이로 줄거예요.
아이의 말은 천진 하면서도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이 슬픈 말을 들으면서 신사는 애야 그 새를 나에게 팔지 않으련 얼마주고 팔래. 소년은 신기한 듯 눈을 깜박 거리면서 아저씨 정말 사시려고 그러시는 거에요. 이건 보잘 것 없는 새에 불과해요. 노래도 못하고 볼 품도 없어요.
하여간 얼마에 팔래. 그 소년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힐끗 곁눈질로 신사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머믓 거리면서 속으로 부지런히 계산을 하다가 드디어 말했습니다. 2천원이예요.
어안이 벙벙해진 소년에게 신사는 주머니에서 빳빳한 지페 두 장을 꺼내 주었습니다. 돈을 받은 소년이 잽싸게 골목 길을 벗어 났습니다. 소년이 사라질 때까지 새 장을 들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사는 소년이 사라지자 새 장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우리 주님과 사탄 마귀와의 협상이 무엇과 같은지 아시겠습니까. 사탄은 에덴 동산에서 어떻게 유혹의 덫을 처서 온 세상의 사람들을 사로 잡았는지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우리 주님과 사탄과의 매매협상을 가정해 볼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사탄, 너는 이 모든 사람들을 어떻게 할 작정이냐 갖고 놀거예요. 장난치고 결혼 시키고 싸우게 하고 이혼 시키고 서로 죽이게 하고 등등 나는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폭탄을 쏘는 방법을 가르치겠소. 온갖 장난을 다 할 거예요.
너는 영원히 장난만 하지 않을 것이다. 장난에 싫증이 나면 그땐 어떻게 할 작정이냐. 제기랄 이것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소. 저주할 것이요. 그래서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요.
그 사람들을 나에게 얼마에 팔것이냐. 그건 소용없는 일이요. 이들을 내가 당신에게 판다면 이들은 당신에게 침을 뱉고 당신을 미워할 거예요. 당신을 때리고 못박고 등등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들이라오.
하여간 얼마에 팔것이냐. 당신의 모든 눈물과 당신의 몸과 당신의 모든 피 그것이 내가 받아야 할 값이요.
그래서 주님은 그 값을 치루고 새 장을 취했습니다. 그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 사랑에 있어서 제한이 없습니다. 주님이야 말로 우리의 영존하시는 아버지 이십니다.

넷째. 주님은 평강의 아버지 이십니다.
평강의 왕, 듣기에 즐겁습니다. 복스러운 말입니다. 이 말은 구원에 있어서 제한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아기 예수로 세상에 태어 나셨을 때 천사들이 찬양 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바울 사도도 로마서 5장 1절에서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그리고 에베소서 2장에서는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우리의 평화 이십니다. 당신을 채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평안을 주십니다. 모든 사물을 변화시켜 화평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참 된 내적 평안을 이루어 주십니다.
주님이 주신 평안은 우리 주위의 환경이 어찌 되었던 변치 않는 평안 이십니다. 주님의 평화를 누린다고 하면서도 상황에 이끌리고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면 그것은 곧 주님이 주신 평화가 아닙니다.

주님은 기묘자 모사 이십니다. 지혜에 있어서 제한이 없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능력에 있어서 제한이 없으신 분입니다. 영존 하시는 아버지 이십니다. 사랑에 있어서 제한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평강의 아버지 이십니다. 구원에 있어서 제한이 없으신 분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이 놀라운 구세주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 입니다. 저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 분이 필요 하십니다.
만약 지금 이 시간 우리의 생활 속에 그 분을 모셔 들이지 않으신 분이 이나다면 지금 곧 그 분 앞으로 나오십시요.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고백 하십시요. 그리고 죄사함을 받기 위하여 세례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과 38절의 약속에 의하면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선물로 성령님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성경대로 순종하여 구원 얻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