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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 23:1-6,행 18: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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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이끌고 푸른 초장과 마실만한 물을 찾아 다니는 목자는 어쩔 수 없 이 양떼를 험한 골짜기로 인도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목자는 언제나 양떼를 안전하게 이끌기를 원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험한 골짜기를 피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푸른 초장에 도 달할 수 없을 경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통과하는 것입니다. 위험한 골짜 기를 통과할 때면 목자는 그 어느 때보다 양떼의 안전에 신경을 쓰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놈이 있으면 목자가 친히 안아서 건너게도 하고,

사나운 이리나 늑대가 넘볼때는 돌팔매로 쫓기도 하면서 신속하게 그 골짜 기를 통과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목자는 음침한 골짜기에 양떼를 오래 머 물게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신속하게 통과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떼들에게는 그 음침한 골짜기가 상당히 길고 험하게 느껴지고 영영 벗어나지 못할 골짜기로 생각되기도 할 것입니다. 때로는 그런 험 한 골짜기로 자기들을 인도한 목자를 원망하기도 할 것입니다. 다른 좋은 길도 있을텐데 하필이면 이렇게 험한 골짜기로 인도하여 우리를 괴롭히는 가 불평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는 묵묵히 그 불평하는 양떼들을 이 끌어 신속하게 그 골짜기를 통과하여 마침내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쉬게 합니다. 그 푸른 초장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양떼들은 왜 목자가 그들을 그렇게 험한 골짜기로 인도하였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출애급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급에서 고난 당하던 히브리인들을 구원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험한 광야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는 동안 하 나님은 그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목 마를 때 바위를 터쳐 물을 공급하시고, 만나를 내려 양식이 떨어지지 않 게 하셨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는 메추라기를 보내어 먹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내산에서 저들의 삶의 지표가 되는 율법을 주시면서 계약백 성을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속하게 이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 하 였지만, 그들은 가나안의 족속들을 두려워하여 들어가기를 거절하였던 것 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였기에 저들은 거친 광야에서 40년 을 헤메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 방치하지 아 니하시고 약속대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두려운 경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결코 그것은 영원한 것이거나 본질적 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 내가 너희를 두고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으로서, 너희 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29:11)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그곳에 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 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손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인도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난의 때에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우리가 시련의 골짜기에 들었을 때 낙심하고 좌절하며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보다 좋은 생명의 길로 나가기 한 과정이라 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마련하신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희망" 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독교 시인인 김 현승의 "희망"이란 시를 소 개드리겠습니다.

 나의 희망, 어두운 땅 속에 묻히면 황금이 되어 불 같은 손을 기다리고,

너의 희망, 깜깜한 하늘에 갇히면 별이 되어 먼 언덕 위에서 빛난다.

 나의 희망, 아득한 바다에 뜨면 수평선의 기적이 되어 먼 나라를 저어 가고,

나의 희망, 나에게 가까이 오면 나의 사랑으로 맞아 뜨거운 입술이 된다.

 빵 없는 땅에서도 배고프지 않은 물 없는 바다에서도 목마르지 않은 우리의 희망!

온 세상에 불이 꺼져 캄캄할 때에도 내가 찾는 얼굴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생각하는 갈대 끝으로 희망에서 불을 붙여 온다.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때에도 우리의 무덤마저 빼앗을 때에도 우릴 빼앗을 수 없는 우리의 희망!

우리에게 한번 주어버린 것을 오오, 우리의 신도 뉘우치고 있을 너와 나의 희망! 우리의 희망!

그렇습니다. 어두운 땅 속에 묻혔을 때는 황금이 되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깜깜한 하늘에 갇히면 별이 되어 빛나면서 동터오는 새벽을 기 다릴 줄 아는 신앙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신앙이라 하겠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막연하고 불확실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희망은 현실로 나타나며 약속은 성취됩니다.

시련의 때에 희망을 가지려면 하나님의 약속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서울 지하철 공사장 흙이 무너지면서 매몰된 사람들을 구출할 때 마침 공기통이 있어서 그리로 음식도 내려주고 대화를 통해서 구출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 주었기 때문에 갇힌 사람들은 희망을 갖고 기다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갇힌 상황에서 구출하고 있다는 약속의 말을 듣는 것처럼 희망적인 것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난의 때에 곧 벗어나 서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희망적인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의 때에 부지런히 말씀을 읽 고 그 말씀 속에 간직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을 때 그 시련의 골짜 기에서 좌절하지 않고 용기있게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직 면하고 있는 통일의 문제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어 주실 것 이라는 희망을 가질 때 분단의 아픔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통일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드린다면 서로를 저주하고 욕하며, 원망하고 증 오하는 일들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때 통일에 대한 희망을 전혀 가질 수 없었습니다. 남북이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희망의 빛이란 어 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통일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은 몇몇 그리스 도인들이 모여 통일을 논의하고 통일의 희망을 불러 일으키려고 애를 쓴 결과로 점차 통일의 희망이 우리에게 되살아나 이제는 누구나그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희망을 갖고 분단의 골짜기를 신속하게 통 과하여 통일의 여명(黎明)을 맞이하여야 하겠습니다.

 고난의 때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시련의 골짜기에 들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 다. 하나님께서 결코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나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을 가질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되어 낙심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하 여 희망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니 떨 지 말아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리 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사 41:10)

시련의 골짜기에 들었을 때 그 어느 때 보다도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 시며 나를 그 골짜기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애쓰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한 노인이 어느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하늘에서는 그가 살아온 인생의 모습들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습니다. 몇 장면들을 보다가 해변을 문득 바라보니 모래 위에 두 사 람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 님의 것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스쳐간 뒤 남자는 다시 뒤 를 돌아 보았습니다. 오랜 그의 인생 길에서 한 사람만의 발자국이 새겨 진 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너무도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웠던 때에 발자국 이 하나뿐인 것을 알았습니다.

노인은 의아해서 주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주여, 주님을 따르기로 하 였을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나와 같이 인생의 길을 걷자고.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발자국은 하나밖에 새겨져 있 지 않습니다.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한 때에 왜 저를 떠나 계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아들아, 난 너를 사랑하여 한번도 너 를 떠나 있은 적이 없다. 네가 고통당하고 슬퍼할 때면 내가 너를 업고 인 생의 길을 걸었단다. 모래 위에 새겨진 한 사람의 발자국은 바로 내 발자 국이란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고난의 골짜기에서 신음할 때 하나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여러분과 가까이 계시며, 그 고난을 빨리 통과하도록 돕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고난이 무엇입니까 주님께 기도 하십시요. "주님, 저를 업고 가 주소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 골 짜기를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저를 업어 주소서.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제 앞에 가로 놓인 두려움에 과감히 맞서겠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여러분을 번쩍 들어 올려 사망의 골짜기를 건너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두려움 대신에 용기를 갖 게 됩니다. 용기를 갖게 되면 어떤 고난의 골짜기라도 헤쳐나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침한 골짜기를 만나게 될 때 무서워 피하려 하지 않고 정면으 로 맞서면 거기에 해결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용기를 주고, 용 기는 두려움으로 가리워졌던 눈을 뜨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면 헤쳐 나갈 길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당황하고 두려워하면 모두가 어둠이요 절벽이며 탈출의 길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골짜기 에는 반드시 나가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를 탈출의 길이 전혀 없는 고난속으로 몰아 넣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 로 시련을 겪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시련과 함께 벗어날 길 도 마련하여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하십니다.

 (고전 10:13)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면서 수 없는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하였습니 다. 유대인들이 반대하고 핍박하여도 굴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이라고 어찌 두려움이 없고, 낙심하는 마음이 없겠습니 까 그러나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두려움을 극복해 갔습니다. 두려 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 을 터이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서 해하지 못할 것이다. (행 18:10) 그는 옥중에 있을 때도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므로 오히려 용기를 북돋 우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는 사망의 골짜기에 있는 동안에 결코 벗어나려 고 허둥대지 않고, 오히려 차분히 미래를 계획하며 자기의 신학적 수업을 정리하여 갔던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고난의 골짜기는 두려움과 고통만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 골짜기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우리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인데도 하나님 없이 살아왔던 삶을 반성하게 하며,

삶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고난의 골짜기는 평소에는 나타나 지 않던 인간의 새로운 면을 보게 하며 우리의 삶을 보다 깊은 경지로 이 끌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직면한 고난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 엇이든지 믿음과 희망을 가지십시요. 그 고난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 한 과정임을 의심치 마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때에 당황하여 이리 저리 헤맬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하나님의 약속 의 음성을 듣도록 노력하면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 의 귀에 조용히 들려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한 사람들은 모두 그 골짜기를 다 벗어나 약속의 땅에 들어 갔습니다. 희망과 동시에 하나님 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 보시면 거기에 새로운 탈출의 길이 보일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담대하게 도전하면 막혔던 길 이 트이고 약속의 땅으로 향한 길이 환히 보일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23 편에서 바로 이런 경험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 주님을 늘 기억하면서 담대하게 고난의 골짜기를 헤쳐나가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 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23편 연속설교 6> 안동교회 유경재 목사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시편 23:1-6 요한복음 16:31-33

목자들이 양떼를 인도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가 지팡이와 막 대기입니다. 지팡이는 목자의 키보다 긴 것으로서 끝이 굽어져 있습니다.

양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끌어올리는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막대기는 짤막 한 곤봉과 같은 것으로 양을 공격하려는 이리나 늑대를 쫓아내는데 사용한 다고 합니다. 시편 기자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짤막하게 고백하고 있지만, 이 고백이 있기까지는 이미 한차례 그 지 팡이와 막대기의 효력을 체험한 사건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양떼를 탈취하려는 도적이나 혹은 이리나 늑대의 습격을 받았는지도 모 릅니다. 그래서 목자가 한바탕 그들과 싸워 양떼를 지켰을 것입니다. 이때 지팡이와 막대기가 큰 효력을 발휘하였을 것입니다. 또는사망의 음침한 골 짜기를 통과할 때 양들 중의 더러는 혼자의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벼 랑이나 웅덩이에 떨어져 살려달라고 소리지르면 목자는 지팡이의 갈구리로 그들을 거기서 끌어올렸을 것입니다. 양떼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서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기들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믿음직한 도구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러 시편을 통하여 자기가 적들에게 둘러싸였을 때나 곤경에 처 했을 때 하나님이 그의 산성(山城)이 되어 주시고 그의 반석(磐石)이 되셔 서 그를 구원하여 주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음을 노래하고 있습니 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 리로다." (시28:7)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 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 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시 27:1-3)

다윗의 이런 시편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어떤 역경에 처할지라 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굳건히 서야한다는 사실입니다. 물 론 다윗은 곤경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시31:2-3)

이렇게 그가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34:4,6)

그래서 다윗은 확신을 가지고 성도들에게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 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강하고 담대하 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시31:23-24)

기도하라

이런 다윗의 경험을 통하여 환난의 때에 우리가 제일 먼저할 일은 기도 임을 배우게 됩니다. 다윗은 환난의 때에 열심히 아뢰며 부르짖었다고 하 였습니다. 다윗의 시편 대부분이 기도의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 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시18:6)

환난의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 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잘 보이지 않는 웅덩이에 빠졌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목자가 와서 건져 주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는 양은 없습니 다. 슬픈 목소리로 크게 울어대야 목자가 듣고 달려와 구원해 줄 것입니 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 도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탄식하며 부르짖음이 있는 곳 에 하나님의 구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의 집에서 억울하게 그 아들과 함께 쫓겨난 하갈이 광 야에서 부르짖었을 때에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이스마엘인데 그 뜻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애급에서 고 난당하던 히브리인들이 그 고난을 견디다 못해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 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 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출2:23)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그들에게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하여 내셨던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부르 짖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언제나 들으시며, 거기에 우선적으로 응답하시 는 것입니다. 결국 탄식하며 기도함은 곧 구원에 이르는 문임을 알 수 있 습니다.

부르짖음이 응답되는 까닭은 그 순간이 바로 철저하게 자기가 깨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이제까지 자기의 지식과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어 보려던 교만이 한꺼번에 깨어져 나가면서 자신의 무력 함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이때야 말로 이제까지 집착하던 모든 자존심과 체면을 다 벗어던져 버린 순간입니다. 통회하며 회개하는 시간이기도 합 니다. 시편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 하는 자를 구원하신다"(34:18)고 하였고,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 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 시리이다."(시51:17)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가난한 마 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그에게 나와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기도에 기꺼이 응답하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아직도 환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전쟁상태 이며, 분단의 벽은 조금도 낮아지지 않고 있으며, 우리의 사회는 많은 문 제를 안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약간의 경 제적 성장을 이룩했다고 해서 이제는 완전히 환난의 날을 벗어난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축하의 샴페인을 터트릴 때가 아닌데 우 리는 너무 일찍 서둘러 터트린 것입니다.오늘의 문제는 아직 환난의 시기 인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우리의 허리띠를 조이지 아니하며, 경각심을 잊어버리고 사치와 향락에 도취되었다는 점입니다. 통곡하며 부르짖어야 할 때인데, 우리는 통곡대신 헤프게 웃고 있으며, 기도하는 대신에 춤을 추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통회하며 자복 하여야 할 때인데 오히려 화려한 옷을 입고 잔치집에 앉아 향락의 술에 취 하여 밤깊은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일을 위해 기도한다지만 사실상 통회하는 마음과 간절한 마음이 없는 우리의 기도는 부르짖음이 아 닌매마른 심령의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오늘 우리의 상황 은 모두 한계상황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아직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 못 한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교통의 혼잡이나 더 이상 처리 능력을 잃 어버린 쓰레기 문제나, 심각한 환경오염문제 등이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상징들이라 하겠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큰 파멸이 올텐데도 정부나 국민들이 별로 크게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땅히 우리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죄를 자복하면 서 부르짖어야 할 때인데 이 사회의 분위기는 우리로 기도를 드리지 못하 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기의식을 일깨우는 언론이나 양심적인 사람들을 입다물게 만들면서 지금 이 사회는 파멸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들도 이사회가 직면한 위기는 외면한 채 사람들의 마음을 비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으로 가득 채우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들 마다 철 야기도회를 매주 갖지만 통회자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기 보다는 축복을 간구하며 자기 욕심을 한껏 내놓아 기도하는 시간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우리 사회와 민족이 직면한 위기를 느끼면서 하나님 께 나아가 통회하면서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1995년이 정말로 통일의 희년이 되고 이 땅에 참 자유가 오는 해가 되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하 겠습니다.

 두려워 말라

다음으로, 다윗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면서 담대함으로 위기를 돌파해 갔습니다. 다윗이 적장인 거인 골리앗과 맞서려고 하였을 때 물론 그는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가만히 있지 않 았습니다. 담대하게 그를 향하여 나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실 것을 확신하면서 그 앞에 나가 선 것입니다. 골리앗이 저절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다윗이 겨냥하여 던진 물매돌에 맞아 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막대기가 거기에 작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막대기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거기에 있음을 알고 담대하게 문제와 맞서는 것입니 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막대기로 나를 위해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다 윗은 주님께 기도하면 그가 자기를 강하게 하셔서 싸움에 이기게 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 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 케 하시며,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 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활을 당기도다...대 저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나이다."(시18:29,31-34,39)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믿음 속에 있다고 하겠습 니다. 환난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간구하였으면 믿고 일어나서그 환난에 서 벗어날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 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새로운 힘이 솟아나게 하시 며,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담대하게 나가 싸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을 위해 회개 하며 기도하였으면 믿고 준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1995년을 희년으로 믿 고 기도하였으면 그때를 위해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희년으로 선포했다 가 통일이 되지 않으면 어찌하나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역사하고 계심을 의심치 말고 우리는 일어서서 통일을 위하여 준 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저렇게 허무하게 넘 어갈 줄 누가 알았습니까 마찬가지로 북한의 고집도 하나님의 막대기 앞 에서 견뎌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을 위한 마당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장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시고 자 하시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날을 위해 준비 하며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신다는 다윗의 신앙이 바로 여러분의 신앙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환난날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를 그의 지팡이로 건져주시며, 더 나 아가 우리를 강하게 하시며 새롭게 하셔서 능히 그 환난을 뚫고 나가게 하 시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당한 환난이 무엇입니까 진심으로 통회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여 주실 것입 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심각하게 돌아보고 위기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안이하게 기도하 지 아니하고 지나갈 때 파멸이 급속하게 닥아올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그 파멸의 날을 생각하면서 깨어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우 리가 진심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담대하게 오늘의 문제에 도전해가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경재 (yu8082 ) 시편 23편 연속설교 7 11/14 09:29 172 line

--설교제목:원수 앞에 베푼 상 구약성경:시편 23:1-6 신약성경:요한일서 5:4-12 설 교 자:유 경 재 목사--

시편 23편 가운데서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부분은 "주께서 내 원 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장면 이 새로 바뀝니다. 여기서 다윗은 양이 아니고 손님으로, 하나님은 목자 가 아니고 주인으로 비유가 되고 있습니다. 주인은 손님을 귀빈으로 대접 하고 있습니다. 근동 지방에서는 자기를 죽이려는 원수에게 쫓기게 되면 자기가 보호를 받고 싶은 사람의 천막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주인의 보호 와 환대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므로 원수 들도 천막 문 밖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집주인으로 원수에게 쫓기던 사람을 맞아들일 뿐 아니라 원수 들이 보는 앞에서 향연을 베풀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 환영의 예를 행한 후 잔이 넘치도록 술을 따르는 것입니다. 강력한 권세를 가진 주인의 보호를 받은 이 사람은 더 이상 원수에게 쫓길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주인 은 "이 사람은 내 친구"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대조된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우리 를 둘러싸고 있는 원수들이 있다는 사실과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그 원수들로부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까지는 사울왕에게 쫓겨 다녀야만 했습니다. 왕이 된 후에는 항상 수 많은 적들과 대치하여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경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을 늘 경험하였던 것 입니다. 그는 항상 적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들로 인하여 그의 삶은 형통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원수들

오늘 우리가 바르게 살려고 할때 수 많은 원수들이 우리를 둘러싸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원수란 우리를 공격하여 파멸시키려는 모든 세력을 말 합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때로는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나타나기도 하 고, 때로는 부드럽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에덴 동산 의 하와를 유혹하던 뱀처럼 그럴듯한 유혹으로우리를 파멸로 이끌기도 하 고, 히브리인들을 철저하게 탄압하였던 애급의 바로처럼 강력한 권력으로 우리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오늘은 마침 종교개혁주일입니다. 마틴 루터가 1517년 10월에 개혁의 기치를 들었을 당시에 교황청의 세력은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아주 막강 한 것이었습니다. 교황은 한낱 수도사에 불과한 루터같은 사람은 수 천명 도 파멸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존재는 마 치 거센 바람 앞에 하늘거리는 촛불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도 그 촛 불이 온전하리라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보름스 의회 앞에서 그가 심문당할 때 그는 으르렁거리는 이리떼들 속에 서있는 어린 양과 같았습니다. 아무 도 그가 거기서 살아나오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그가 주 장하는 종교개혁이 성취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에 게 있어서 교황청은 아주 무서운 원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 닫기 전까지는 교황청은 그에게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 진리를 깨우치고 비텐베르그 교회 정문에 95개조 항의문을 내건 다음부 터 교황청은 무서운 원수로 변하여 버린 것입니다. 그가 진리를 몰랐을 때는 원수가 없었으나 진리를 깨달으면서 원수가 생겨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면서 수 많은 적대적 세력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어디가나 유대인들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유대인들은 모두 그의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난 이후 열심 있는 복음 전도자가 되자 유대인들은 원수로 변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마 침내 유대인들에게 고소되어 로마로 압송되기까지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셨을 때 수 많은 원수들에 둘러싸 여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것입니다. 그가 고난당하신 것은그가 진리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모든 예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의롭게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원수들이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 풍조를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핍박과 환난이 없으나 그것을 거슬 려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고난이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예수께 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 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신대로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일찌기 경 고를 하였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5:8).

오늘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려할 때 우리를 공격하려는 적들을 예상하여야 하며, 그들에 의한 고난을 감수할 각오가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므로 내적 평화를 누리지만 외적으로는 오히려 그 평화를 깨트리려는 세력들에 의해 고난을 당할 각오를 하여야 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행5:41). 예수님때문에 전에는 친구였던 사람들 이 이제는 원수가 되고 전에는 무관하던 사람들이 적들로 변해버린 것입니 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내적평화를 파괴시키려는 원수가 생겼다면

우리도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그만큼 성숙하여 있 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원수를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그런 적이 많이 생길수록 여러분의 믿음은 활동하고 있는 것이며, 성장하고있는 것입니다.

 내게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

이와같이 믿음의 원수들이 나를 둘러싼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 은 하나님께서 강력한 주인이 되셔서 나를 영접하여 보호하실뿐 아니라 내 게 상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상을 베푼다는 것은 손님을 대접하여 잔치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원수들에게 쫓겨 그에게 피하여 온 지친 영혼들에게 힘을 돋구어 주고 그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잔치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잔치상의 메뉴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의 지친 영 혼에 새로운 힘을 돋구어 줄까요 무엇이 우리의 약하여진 믿음을 강하게 해 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말씀입니다.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가면서 벧엘에서 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그는 20년동안 그의 망명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피곤하여 지쳤을 때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들으므로 용기를얻어 형 에서와 만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이어 가나안을 담대하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도 그를 떠나지 아니하고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 속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이 반대 와 핍박을 받았으나 언제나 담대할 수 있었던 것도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내걸 수 있었던 것도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교황청의 강력한 탄압을 받게 될 때 그가 낙심 치 않고 끝까지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였거나 들었어도 깨닫지 못하고 순종 치 않는 사람들은 늘 시험에 빠지고 실패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사울왕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행하 였을 때 다시는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 님께서 말씀을 들려 주시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왕에게서 잔치상을 거두어 버리신 것입니 다.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피곤하여진 영혼에 새 힘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 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한다"(시19:7)고하였고,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19:10)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먹으면 우리 의 눈이 밝아지고 우리의 머리가 명석해지고 지혜로워집니다. "주의 말씀 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한대로 말씀은 우리의 눈을 밝혀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길로 행하 여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 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 보다 승하니이다"(시119:99-100)라고 한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명 철함과 지혜를 주어 바르게 판단하며 지혜롭게 행동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가 외로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 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한한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정의를 위해 투쟁하다가 낙심될 때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말씀에서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피곤한 나그네 앞에 차려진 잔치상 위 에 올려진 가장 좋은 음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여 새 힘을 얻으면 어떤 대적도 우리와 맞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영의 양식일 뿐 아니라 적과 맞 서 싸울 때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원수들이 들끓는 세상에 서 우리가 승리하려면 항상 말씀을 섭취하여 힘을 얻어야 하며, 원수들이 설치한 미혹된 길을 피하여 바른 길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혜와 명철을 얻 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므로 여러분의 영 혼이 늘 강건하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더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차리신 잔치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하여 주신 성찬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 다. 그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므로 죽어가던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고 새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피 곤할 때 그리스도의 성찬상에 모여 앉아 그가주시는 떡과 잔을 받아 먹 으면 우리 속에 새로운 생명의 힘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상 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성찬은 이 땅에 육신이 되어 오 신 말씀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받는 일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모 든 구원의 은총을 집약시켜 놓은 잔치상입니다. 우리는 이 성찬상에서 모 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되며, 진리와 정의가 승리하고 모든 악은 격 퇴될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찬상에서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게 되며, 이를 위하여 헌신할수 있도록 우리 속에 능력과 용기를 더하여 주시는 성령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에 가득찬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 도록 부름받은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주님은 여러분들로 하여금이 악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말씀을 공급하시고 마침내는 독생자예수 그리스도 의 몸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를 받으므로 여러분은 누구도 넘어뜨릴 수 없는 강한 능력의 소유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아무리 거대하고 무서워 보여도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 싸우시기 바랍니다. 골리앗이 나가 넘어지듯 말씀으로 무장하 고 나가 맞설 때 원수는 의외로 쉽게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 일 서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 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5:4).고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공급 해 주시는 영의 양식을 받은 자들은 누구나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 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라는 말씀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 시는 하니님의 은총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과 예 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늘 승리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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