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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문을 찾는 어린양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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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선한 목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선한 목자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양들에게 푸른 풀과 맑고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양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목자의 임무에 관한 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이유는 그가 어린시절 목동의 경험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렇게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그분을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또 목자라는 표현은 통치자들에게도 적용되는데 선하고 정직한 왕은 선한 목자로, 악하고 타락한 왕은 악한 목자로서 양무리를 멸하고 흩는 자로 비유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선한 목자’로 비유하신 적이 있는데 이는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것이라는 당신의 사역을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목축이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팔레스틴에 있어서 목자나 양의 비유는 매우 친근 하고도 이해하기 쉬운 표현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19-25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요한복음 10:1-10
본문에서는 참 목자와 거짓 목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틴에서는 낮 동안은 양떼들을 방목했다가 밤이 되면 다시 양우리에 몰고 오게 됩니다. 이는 밤에 몰려드는 짐승들과 강도들로부터 양떼를 보호하기 위해서 였다.
우리로 들어가는 문은 하나뿐인데 목자는 이 문 앞에서 양떼들의 수를 세곤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 양의 무리가 교회를 의미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유대 교회를 의미했습니다.
본문에 문지기, 목자, 문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실제적으로 모두가 그리스도를 의미하기 위하여 중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목자가 양의 이름을 개별적으로 부르듯이 신앙도 개인적인 관계에서 시작이 됩니다.
한편 팔레스틴에서는 지금도 양 한 마리 한 마리마다 이름을 지어주는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양들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고 타인은 따르지 않듯이 진실로 하나님께 헌신되고 택정된 자들은 많은 이들이 거짓된 자에게 미혹된다 해도 그들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참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면, 양우리 밖에 있는 짐승들의 위험과 거짓 목자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아 구원을 얻고 궁극적으로는 영생을 얻습니다.
한편 ‘꼴’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을 의미하며 들어가며 나오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서론”
한국사회가 유교적 전통에 서 있다고 해서 부모가 유교적 권유주의로 자녀를 복종시키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먼저 가정에서부터 온전케 되어야 하는데, 부모가 경건한 모습을 보여줌으로 목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자녀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선한 양의 무리들이 되는 아름답고 경건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정의’생명의 문을 찾아 들어가는 어린 양은 분별없이 아무 문이든지 닥치는 대로 문만 있으면 찾아 들어가는 그런 양이 아닙니다. 그리고 생명의 문을 찾는 어린 양은 다른 양들이 많이 가고 있다고 목표도 없이 따라 들어가는 그런 양도 아닙니다. 생명의 문을 찾는 어린 양은 생명의 문의 주인인 참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입니다. 생명의 문은 결코 단체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문제만큼은 전적으로 개인 적인 것입니다.

‘동기부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 목자였으나 오늘날은 참 목자보다는 거짓 목자들인 이단 사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양의 탈을 쓴 이리의 모습으로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어린 양들은 생명의 길, 구원의 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어린 자녀들은 혼돈된 사회와 사치 향락의 유혹의 손길이 미치기 쉬운 세상에서 무방비 상태로 팽개쳐져 있습니다. 이 어린 양들인 우리 신앙의 후배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될 것인가 생각해 보지 안을 수 없습니다.

‘방법론’ 어린 양이 생명의 문을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요1).여호와를 나의 목자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시23: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양의 문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가야 합니다.(요10: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3).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양육되고 인도되어져야 합니다(요 10: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4).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인내해야 합니다(벧전2:19)“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결과’ 생명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어린 양은 여호와를 자신의 목자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고백이 있는 자는 여호와께서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십니다. 그러므로 늘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고백으로 감사의 생활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하나님이신 선한 목자를 생각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해서 어떤 이리떼나 사단의 세력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더라도 목자의 보호하심을 받게 됩니다.

‘결론’ 자녀를 한 인격체로 대우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스스로 목자된신 하나님께 바른 신앙고백을 할 때까지 양의 문으로 인도하며, 교육하며, 바르게 채찍질해야 합니다. 부모나 자녀, 모두 바쁜 생활에 쫓기고 있지만 이것이 신앙적인 가정을 만들고 화목한 부모 자식간을 유지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 후 우리에게 교회보다는 가정을 먼저 허락하셨음을 늘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영원한 기업인 자녀들과 아름다운 가정을 허락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자녀들이 늘 양의 문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안에 들어가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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