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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동지침 자비 (롬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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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근거가 되어 우리에게 우리 몸을 하나님 앞에 산 제사를 드릴 것이 요구되고 있다. 제사는 제물 자체를 위하여 행하는 것이 아니다. 제 삼자를 위해서 필요했던 제도이다. 제물을 바침으로 인해서 죽음을 면하고 심판을 면하는제도가 제사이다. 우리더러 제사를 드리라는 데에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이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징벌을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면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신분과 축복, 장차 누리게 될 신분과 축복은 우리가 본래 받아야 할 대접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을 대속하심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12장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산 제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 ‘자비의 문제’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거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적극적으로 해야할 일과 두번째는 소극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적극적인 의미를 살펴보자.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1-2)”
‘짐을 서로 지라 그래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말씀이 앞에 나와 있는 1절 말씀에는 ‘범죄한 사람이 있거든 바로 잡아라’는 진술이 있고 ‘짐을 나눠 지라’고 한다. 여기서 바로 잡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장이 났을 때는 그것이 회복되도록 하라는 뜻이다. 짐을 나눠지는 부분에서 자비가 동원되어야 한다. 불신자들을 [감당]해야 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정당한 것으로 잘 잘못을 따져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한다’하신다. ‘너희가 너희를 산 제사로 드림으로 제물로 바쳐지는 자’에게 무슨 자랑과 자기만족이 있겠으며, 무슨 명예와 자존심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오늘 심판 자리에 있고 죽어 마당한 한 심령에게 돌이킬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의 기본자세이다. 이것은 힘든 삶이다. 그래서 사실 힘들지 않은 삶을 사는 신자들은 스스로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은 삶이 궁극적인 목표로 이렇게 산 제사로 바쳐져야 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삶이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자. 우리가 예수를 믿고 쌓은 것이 무엇인가 타인을 제물 삼아서 내가 배부른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제물이 되어 이웃을 살린 것이 얼마나 되는가를 계산해 보아야 한다. 내가 어느만큼 다른 사람을 내 목에다 걸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남을 돕고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그러나 돕는다는 것은 돕는 사람의 자존심을 위해서 돕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돕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신앙의 위인들은 남을 도울 때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주었다고 한다. 무릇 긍휼이 필요하고 자비가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한 것은 필요로 하는 자를 기준으로 도와주어야지 필요로 하는 것을 것을 도와 주는 자를 기준으로 도와주어서는 안된다. 그것의 극치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요, 성육신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죄인된 우리를 도울 수 있는데까지 오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말구유에 나셔서, 우리가 있는 자리에까지 찾아오셔서 도우시는 열심, 그가 그렇게 찾아오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얻은 구원, 축복, 그것을 근거로 권한다는 말이다. ‘내가 그를 이렇게 도왔는데 배신했다’라는 것은 ‘보람있는 기대를 걸었다는 이야기 밖에 안된다. 그것은 돕는 것이 아니다. 내가 뿌린 것으로 열매를 거두겠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 있어 개념을 고쳐야 한다.

다음에 소극적인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짐을 나눠지지 못하고 자비를 적용치 못했을 때 우리는 시험에 들게 된다.
상대방이 위선이든, 이중 인격자이든, 그 문제를 당했을 때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저 사람이 위선자가 되어서 받는 박수에 대하여 화를 내지 말고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인간이 무엇이며, 내가 누구인가를 처절하게 반성하는 시간으로 돌이켜야 한다. 이것이 자비가 서야하는 또 하나의 자리인 것이다. 교회 안에서 열심히 봉사하되 생색은 내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의 잘못을 볼 때마다 그것을 ‘나’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부름받았는가를 마음 속으로부터 깨닫고 봉사하는 자리에까지 가야 된다. 상대방이 아무리 악한 사람일지라도 부딪치면 내가 잘못하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은 이렇게 선언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5-11)”
지는 것 같아도 이것이 승리요, 패배하는 것 같아도 이것이 우리의 영광이라고 성경이 선언한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히셨다. 지고 살라. 손해보고 살라. 희생하고 헌신하고 살라. 많은 영혼들을 돌이키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삶이 억지로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약속한다. 우리는 빨리 천국에 가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도 재미있다. 매일매일 보람과 감격과 할일이 있다는 것만큼 신나는 것은 없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기억되고 오늘 우리가 한 영혼이 돌이키는 것을 보고 한 심령 앞에 보이는 것 외에 하늘나라의 원리가 강하고 힘있게 전달되는 것이 보여지고 그일을 하나님이 나의 생애와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는 것보다 감격적인 삶은 없다. 손해를 보고 피해를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살아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삶을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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