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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는 나를 좇으라 (마 08: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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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초대로부터 주어진 별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별명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크리스챤'이라고 쉽게 부릅니다만 처음에 이 이름이 주어질 때에는 예수에게 속한 사람, 혹은 예수당, 예수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종의 비난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친숙한 우리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그리스도인이 가진 별명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몇 가지만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성도'라는 이름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름이면서 또한 평범하게 지나치기 쉬운 이름입니다. 성도란 거룩한 무리, 구별된 사람들, 깨끗하게 사는 사람들이란 뜻을 가진 말입니다.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바뀌어질 때 그 당시 기독교인들의 수가 불과 9%밖에 안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자 대부분이 지체가 높은 사람들이어서 기독교 국가로 선언이 되고 또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로마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아주 문란한 가운데 있었으며 특히 여자들이 많이 타락해서 그들의 후손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의학도 발달하지 못한 때여서 갖가지 병이 만연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구자들을 낳고, 장님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있고 똑똑한 정치가들은 며느리를 구하거나 결혼을 하려면 강제로 기독교인을 붙잡아다가 아내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귀하고 깨끗한 자식을 얻기 위해서는 기독교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어머니가 아이들을 신앙으로 키우고 마침내 그 아이들이 자라서 정치가가 되고, 대 로마제국은 이 사람들에 의해 기독교 국가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초대 교인들의 깨끗한 생활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별명이 되었습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윤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무엇이든지 깨끗하게 살았기에 얻어진 별명이 '성도'였습니다. 퓨리탄(Puritan)이란 이름은 어느 특정인에게 주어진 이름만이 아닙니다. 항상 청결해야 하고, 청결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별명이었으며 성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름은 '제자'입니다. 이상하게도 성경에 보면 '신자'라든지 '믿는 사람'이라고 하는 이름은 별로 없습니다. 그 대신 '예수의 제자'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 뜻은 예수님을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본받고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한다." 이 구절을 가지고 유명한 설교가 백스터(Baxter)는 「Going Deeper」라는 책을 썼습니다. '보다 더 깊이 깊이 들어간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고, 아주 더 가까이 따라가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버리는 그러한 신비로운 제자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예수님의 부활에 이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죽고, 그리고 예수님처럼 부활하려고 했습니다. 학생과 제자는 다릅니다. 일생동안 따르는 자가 제자로서, 여기에는 졸업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그 분이 가시는 곳에 함께 가고, 죽는 데서 함께 죽고, 그 분이 누리시는 영원한 생명을 함께 누리는 자가 바로 제자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면 어디에나 있어야 하고, 바로 그 곳이 우리 마음의 고향이요, 마지막 종착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인이며 제자입니다.
세 번째 이름은 오순절 교회에 주어진 별명으로 '새 술에 취했다'라는 말입니다. 즉 알 수 없는 이상한 능력에 붙들린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가령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누가 똑똑한 사람이라는 별명을 주었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겐 똑똑하다는 것은 칭찬이 못 됩니다. 어수룩하고 미련하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예수 믿는 자에게 바로 된 이름입니다. 저는 차를 타고 다니다가 종종 주유소에 들러서 기름을 넣는데 기름을 따르는 청년들이 저보고 '사장님'이라고 불러서 기분이 가히 좋지 않았습니다. 목사 냄새가 잘 나지 않았던가 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불러 주기를 원합니까 '새 술에 취한 사람' 바로 이 이름을 원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38에 보면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생애와 순교, 즉 장엄한 신앙 생활의 종말을 주욱 나열하고 맨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이런 사람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땅에 살지만 하늘의 법을 좇고, 땅에 살면서 하늘의 축복을 받고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이 사람들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감당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핍박을 해도 좋아하고 손해를 보아도 웃고, 순교하면서 찬송하는 자들이기에 세상이 감히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영원하고 불변한 능력에 감사하고, 그 감격에 벅차서 사는 사람들이기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미친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인가에 붙들린 사람이지요. 이 정도로 이상하게 보여야 새 술에 취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에게 완전히 미쳐서 사는 사람입니다. 어차피 이 세상은 어디든지 미쳐야 살 수 있는 곳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는 예수님의 이적 기사들로 가득차 있는데 문둥병 고친 이야기, 백부장 하인 중풍병자를 고친 이야기, 베드로의 장모 열병 고친 이야기 등 많이 있습니다. 그 중 16절에 보면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나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다 고쳐 주시니라." 말씀으로 병을 다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지 모릅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구절인데 문자대로 한 번 생각해보십시다.
많은 환자, 특히 정신병자가 왔는데 '말씀'으로 다 고쳐주셨습니다.
요즘 병원에 가면 건강진단 하는 데도 무슨 절차가 그렇게 많은지요 피를 뽑고, 여러 가지 검사를 거쳐 거의 일주일이나 걸립니다. 그런 후에도 응급환자가 되고 보면 정말 보기에도 어려울 정도의 처치 사항이 많습니다. 사방에 주사 바늘을 꽂아 놓고, 호스를 집어넣고 많은 기계들을 들이대어 꼼짝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자들은 답답하여 의사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나을 수 있을까요 살 수 있을까요 완전한 사람이 될까요" 의사의 대답은 한 마디로 "글쎄요" 뿐입니다.
이것과 예수님의 상황을 비교해 보십시오. 많은 환자들이 모였는데 말씀으로 다 고쳐 주시더라. 얼마나 희귀한 일입니까 이 놀라운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지금 같으면 큰 뉴스 감입니다. 우주 중계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굉장한 사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 무한한 능력과 권세에 감탄, 감격이 충만하여 한 젊은이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서기관인 그는 예수께 나아와서 제자 되기를 자원했습니다. 아마 며칠동안 따라다니면서 자세히 보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시든지 좇으리이다." 그럴 법한 일이었습니다. 병 걸리면 고쳐주고, 배고프면 먹여주고, 죽으면 살려주니 걱정이 없을 것 같았겠지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주님 가시는 대로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라고 자원한 젊은이에게 예수님은 만류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플러너라고 하는 유명한 신학자가 예수님에 대해서 재미있는 표현을 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생 남의 집에서 살으셨다. 태어날 때도 남의 집 마구간을 빌렸고 마지막 무덤도 자기 무덤이 아닌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을 빌려 사흘 밤을 묵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평생 이렇게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서기관이 감상적으로 따라오겠다는 것을 예수님은 미리 다 아시고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고, 기적을 보았고, 인기를 보면서 따라가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6:15에 보면 5천명을 먹이실 때 모였던 무리들은 이 능력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억지로 왕을 삼으려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분이 왕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억지로라도 왕을 삼으려고 했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이나 무리들이 미처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기적은 있었으나 예수님은 평생 가난했고, 능력은 있었으나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 신비를 몰랐고 그 오묘한 뜻을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지혜는 있었으나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한 그 깊은 의미를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즉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불해야 할 대가를 생각지 못했습니다. 만사를 좋게만 보고 따르겠다는 그에게 나를 따르기 전에 먼저,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집을 떠나야 하고, 그 분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정해야 하고, 진리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거짓을 가차없이 떠나야 합니다. 자! 각오가 되어 있느냐 말입니다. 얻은 것이 있다면 반드시 잃은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얻기만 하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를 얻었습니까 둘은 잃어 버려야 합니다. 무엇을 얻으며, 어떻게 얻을 것이며, 무엇을 잃어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얻으며 무엇을 잃어버린다는 뜻인지 이 청년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옛날을 좋아하던 것, 소중히 여기던 것을 다 분토와 같이 배설물과 같이 여겼노라"고 실토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버림이 그렇게 아픈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능력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버려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안일을 버려야 하고, 허영을 버려야 하고, 쓸데없는 영화를 버리라고 했습니다. 공짜 은혜를 구하지 맙시다. 마술적 능력을 구하지 맙시다. 값싼 은혜에 사로 잡혀서는 안됩니다. 은혜는 값비싼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진실한 믿음을 찾은 분이 계십니까 그것을 위해서 상당한 대가를 지불했을 겁니다. 그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모처럼 얻은 귀중한 진실을 저버리지 맙시다. 싼 은혜는 없습니다.
같은 기도를 드려도 건강할 때와 병들었을 때 드리는 기도는 다릅니다. 같은 진실을 말해도 성공할 때와 실패할 때의 진실이 같은 것이 아닙니다. 칭찬을 들을 때와 진실과 비난받을 때의 겸손이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은혜가 값비싼 것인데 젊은 서기관은 너무 쉽게 결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분히 감상적이었기에 예수께서 말리신 것입니다. 돌짝 밭에 떨어지는 씨와 같아서 쉽게 자라는가 하면 쉽게 말라버리고 맙니다. 쉽게 결심하는 것이 쉽게 변절합니다. 좀더 깊이, 좀더 절실하게 생각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이상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이렇데 따르겠다는 청년은 거절하시고, 묵묵히 서 있는 다른 청년에게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눅 9장). 이 사람은 아마 조용히 혼자 결심하고 있은 것 같습니다. 그는 좁은 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말없이 조용히 결심하면서 또한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그 마음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가시밭이요, 외길이요,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실 때에 "먼저 내 부모를 장사 지내게 해주세요"라고 답했습니다. 부모에 대한 도리, 가정에 대한 도리부터 다 하고 그 다음에 죽어도 상관없을 때에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우리 식구에게 인사하고 오겠다(눅 9장)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것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에서 아프리카 청년에게 장학금을 줘서 공부하러 오라고 불렀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의 대답이 부모님 장례를 지내고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연락하기를 부모님의 나이가 어떻게 되셨냐고 물었더니 이제 40세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면 언제 부모님 장례를 지내고, 언제 공부하겠다는 이야기입니까
우리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꼭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믿는 일입니다. 절대 우선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못해도 이것 한가지만은 꼭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결정하고 나갑니까 돈을 쓰든지, 마음을 쓰든지, 시간을 쓰든지 어떻게 하든지 이 절대 우선만은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돈이 있고 없고 하다가도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고 나면 빚을 얻어서라도 병원비를 치러야 합니다. 절대 우선이니까요. 이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이 상황에서는 없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14세 때 처음으로 어머님의 손에 이끌리어 새벽 기도회에 갔었습니다. 그 때 생각한 것이 내가 잘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으며,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할 수 없는 일도 있는데, 새벽시간 한 시간만은 꼭 하나님께 바치리라 결심하고 그 때부터 귀중하게 이것만은 지켜오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이 어떻게 곧을 수만 있겠습니까 좀 나을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고, 부지런할 때도 있고 게으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보하지 못하는 오직 하나, 첫 시간은 하나님께 꼭 바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 나가노라면 나머지 일은 하나님께서 돌보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절대 우선을 정한 것이지요. 이것 때문에 건강이 나빠진다면 그만 살겠습니다. 이것 때문에 다른 문제가 생긴다면 다른 것 다 안 할 생각입니다.
무엇이든 여러분 스스로 정하십시다. 절대 우선은 누가 말려도 말릴 수 없는 것이며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고 빼앗겨서도 안 되는 절대 우선입니다. 바로 이 자리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미루는 것처럼 미련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오늘만큼 산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오늘까지만 이렇게 살고 내일부터, 아니 내년부터 다르게 살리라고 자꾸 미루다가 세월을 다 보냅니다. 지금 이 시간 바로 이 자리에서 결단해야 합니다. 다음 시간부터가 아닌,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입니다. 그래서 젊은이가 집에 가서 인사하고 오겠다는 것을 말리셨던 것입니다.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다보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기셨습니다. "네"하고 대답하면 다음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절대 우선을 찾고 계십니다.
야고보서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가 아니냐 내일 일은 알지 못하도다." 그러므로 내일은 없습니다. 다만 현재, 오늘 여기에서 바른 진실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직선적인 관계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나를 좇으면 나를 볼 것이지 뒤나 옆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직선적인 관계를 원하십니다. 사랑은 직선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충분합니다. 일 대 일입니다. 아무 것도 돌아볼 것 없이 그에게만 구하고 그가 주시는 은혜만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자 주시는 행복만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마태복음 16:24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형제 자매나 친구나 그 누구든지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나를 사랑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어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또 목사가 되겠소. 그러나 결혼은 하지 않겠소. 왜냐하면 순교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처자식 때문에 순교를 못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답니다. 사실입니다. 내 생명까지도 바쳐야 할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드리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전체를 바치고 그리스도로부터 그에 관계된 영생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나를 버리면 그때서야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것이 내 것으로 될 것입니다. "너는 나를 좇으리."

기도:아버지 하나님, 주를 따른다고 하면서 주의 기쁨이 없고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항상 마음이 비어 있는 어리석고 신통치 못한 제자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기도하옵는 것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정말로 주를 우선하고 주의 확실한 제자들이 되어서 주의 기쁨에 참여하며 주의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귀한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끝까지 주를 따르고, 온전하게 따르고, 확실하게 따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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