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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택받은 자의 감사 (살전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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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Talmud)」는 율법학자들의 구전(口傳) 및 해설을 집대성한 책으로, 유대인에게 성서 다음가는 정신문화의 원천으로 높이 평가됩니다. 이「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 처한다 해도 배울 줄을 아는 사람이다.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족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제일 부자다'참으로 지혜로운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다 다음과 같은 말을 더 보태고 싶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가장 건강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예수 잘 믿는 사람이다' 이것입니다.
독일의 한 외과의사가 참으로 마음 아픈 수술을 집도하게 되었습니다. 한 여인이 설암(舌癌)으로 혀를 잘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혀를 자르지 않으면 목숨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괴롭지만 그 수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혀를 자르고 나면 앞으로는 영영 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십시오." 의사는 집도 전에 환자보고 말했습니다. 여인은 눈이 젖고 입술이 떨립니다. 젖은 눈을 감고 떨리는 입술로 하나님 앞에 조용히 기도합니다. 이윽고 고개를 들더니 "주님 감사합니다"하고는 의사한테 결연히 말합니다. "됐습니다. 이제 혀를 자르세요."
감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만족해서 기쁨으로 하는 감사와 눈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내가 비록 가진 것이 없고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다 해도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눈물로 드리는 감사야말로 가장 값진 감사입니다. 기쁨의 감사, 눈물의 감사--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행복은 감사에 달려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말, 감사하는 행위 그 자체가 곧 행복입니다. 종이 울려야 소리가 나듯이 행복은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와야 행복입니다. 내가 지금 아무리 많이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족한 줄 모르고 더 못 가진 것으로 불평하고 원망하고 싸운다면 행복을 맛보지 못합니다. 누리지 못합니다. 가지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제아무리 모든 일에 형통하다 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여기고 불만 가운데 있다면 행복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고 감사하는 말이 입밖에 절로 흘러나와야 행복일 수 있습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원망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감사할 때에 행복이 들어오고 원망할 때에 행복은 나가버립니다. 감사는 참 좋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면 지나가는 말처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30절)"그렇지 않습니까 웃는 낯에 침 뱉을 사람 없습니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제아무리 시기가 많은 세상이라지만, 제아무리 제 앞만 챙기는 세상이라지 만 그 누구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을 깐죽거리지는 못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나한테도 좋고 남한테도 좋은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더없이 좋은 말이 "감사합니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사하다는 말에 퍽 인색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소리하기가 왜 그토록 힘이 들까요 어쩌다가 못된 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다고 하면 내가 밑지는 것 같고, 빌어먹는 것 같고,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소리를 차마 입밖에 못 내고 꿀꺽 삼켜버리는 병이 몹쓸 병 때문입니다. '나는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다' '나는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는다. 남들이 나한테 신세를 입고 있다'오만불손한 마음입니다.
이 때문에 평생을 두고 감사하다는 말을 한번도 할 줄 모르는 채 숨쉬고 삽니다. 당연히 행복도 모릅니다. 그런 마음이 행복을 알 턱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에 너무도 인색합니다. 마치 해서는 안 되는 말처럼 되어 있습니다. 헛기침 잘하는 봉건 악습의 영향일까요 잘나고 점잖아서들 그럴까요 감사는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레 우러나와야 합니다.
감사의 마음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요, 감사의 말도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바탕은 신앙적인 문제와 결부됩니다. 억지로 될 수도 할 수도 없습니다.
감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철학적인 감사입니다. 생각에서 오는 감사입니다. 이를테면 '어제보다 오늘이 낫다'고 해서 감사합니다.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여 생각해본 연후에 보이는 감사입니다. 제가 늘 하는 이야기올시다마는 625를 겪은 사람은 무슨 일에고 불평할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워낙 못살았으니까 그때보다 나은 지금을 감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생각합니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비교하여 생각해본 나머지 상대적인 감사를 그로부터 유출해내는 것입니다. 기원전 640년으로 546년까지 살았던 헬라의 철학자 탈레스는 세 가지의 상대적인 감사를 한 바 있다고 합니다. 금수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천대받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야만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헬라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이렇게 말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의 유형 그 둘은 충족하는 데서 오는 감사입니다. 배가 고팠다가 그득하게 먹으면 만족합니다. 평안감사가 부럽지 않습니다. 먹게 된 것이 참 고맙습니다. 어렵게 살다가 좀 나아지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바로 욕망 충족에서 오는 감사입니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순간적이요 일시적인 것입니다. 지금은 배불리 잘 먹었지만 내일이면 다시 배가 고픕니다. 그때가 지나면 효용이 없어집니다.
감사의 유형 그 셋은 은총적 감사입니다. 이것은 절대적 감사입니다. 본질과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찬송가 405장의 가사처럼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구제불능의 나, 하나님과 원수 된 나를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그의 사랑을 확증해주심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이래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죄 사함 받은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는 영원한 것이요 절대적인 것입니다. 바로 은총적 감사요 그리스도인의 감사입니다.
감사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언제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에 조건을 따지는 자는 비록 그 조건이 충족되었다 해도 감사하는 마음은 그때뿐입니다. 한시간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이내 원망과 불평으로 다시 돌아가고 맙니다. 성경말씀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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