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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 상 의 빛 (요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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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 세상의 가치기준에 비쳐볼때 아무리 아름답고 세상사람이 찬사를 보낸다 할지라도,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내재되어 있지 아니하면 그것은 초라하고, 값싸고,어색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게 된다면, 우리는 이 말씀으로 부터 비쳐지는 찬란한 빛을 얻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의 삶을 그리스도께 헌신한 사람에게 확신의 말씀이 되며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단하고 그자리 즉 발걸음을 움직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음성은 들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이말씀은 감히 어떤 사람이 주장할수 있는 말입니까 이러한 주장을 할수 있는 사람은 틀림이 없이 하나님이거나 아니면 미친 사람일 것입니다.
나는 가정의 빛이요 우리 동네의 빛이요 우리 회사의 빛이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의 우리민족의 빛이요 하는 말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나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빛을 보게 될것 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약 세상의 빛이신 이분에게 헌신한다면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최상의 것이 되고 말것입니다. 이세상에는 도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게 된다면, 이사람은 최선의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좋은 가정이 있습니다. 이 가정의 머리가 그리스도가 되신다면, 그 가정은 최선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좋은 의사가 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의사가 된다면 그는 최선의 의사가 될것입니다. 여기 회사의 선한사장이 있습니다.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가 아주 좋은 사장이 될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많은 빛이 있습니다. 이 모든 빛이 다 필요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빛들은 마치 떠오르는 태양빛에 촛불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어떤 선도 예수그리스도 앞에서는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사람은 아주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장님의 행복과 같습니다. 그들은 떠오르는 태양의 찬란함을 모릅니다.석양의 아름다움을 볼수 없습니다. 꽃들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모름니다.
어떤 아이가 어려서 부터 보지를 못했는데 개안 수술을 통하여 눈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보았습니다. 나무와 꽃들을 보았습니다. 노래하며 날아드는 새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다고 진작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왜 이야기 안했겠습니까 설명을 해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상상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밖에서의 행복이라는 것이 다 이와같은 것입니다.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어제 토요일에 무슨 방송인지 모르나 어떤 사람이 모자를 살해하고 도망을 했는데 중으로 가장하여 주로 절간에 숨어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늘 쫒기는 몸이라 불안하여 사람이 오면 산속으로 도망을 한다고 합니다. 자기를 나타낼수 없는 죄인의 모습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빛앞에 서면 죄가 들어나며 자기의 부끄러운 모습이 나타나게 될수 밖에 없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빛에 들어나는 것만을 감추려고 하는데 그렇다고 영원히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티브에서 중으로 가장한 범인이 자기를 쫒지 말라고 ,이제8년만 지나면 공소시효가 지나간다면서 형사를 협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공소시효 기간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앞에서는 그런것이 없습니다. 다 드러나야 하고 결국은 심판을 받고야 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빛은 우리의 추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뿐 아니라, 회개하는 자들에게 그빛으로 모든 죄악을 도말하시는 것입니다. 말라기4장2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빛은 죄를 들어내고 태우고 다시 살리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은 우리와 가까운 관계를 맺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는자는...’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이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고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지만, 오직 따르는자는, 궁극적 관심은 한사람의 개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나를 따른다는 것은 어떤 관계를 말하는 것같습니까
예를 들어서 제가 목회를 약13년간을 했습니다.물론 저하고 처음 시작부터 한분은 저희 식구들입니다. 그외는 지금 몇분이 계십니다. 이들을 가르켜 따르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마음속의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사람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울때 도움이 되어줄수 있는 사람입니다. 기쁨을 함께 나눌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밀접한 관계, 가까운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기를 원합니다. 만나고 싶어 합니다. 대화하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것이 어떻게 만나는 것입니까 예배를 통해서 찬송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일을 통해서 만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배드리기가 싫다면 여러분은 이유가 어떻든간에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기쁘지 않다는 것이지요. 무슨 이유가 있던지 예배를 싫아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 인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는 무슨 이유가 있을 지라도 어떻하던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전에 남자는 사귀는 처녀가 있으면 집안 망신이라고 엄격한 부모는 대단했습니다. 심지어는 머리를 깎는 사람까지도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결사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예전에 신앙인들은 박해에도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지금은 자발적으로 누가 막지 않아도 고의적으로 예배드리러 안갑니다. 교인은 될런지 몰라도 신자라는 이름은 가질수 있는지 몰라도 결코 하나님을 사랑하는 관계는 아닙니다.
그다음에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그분께 순종하는 것은 복이 됩니다. 그분께 순종하는 것은 행복이 됩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하면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분을 멸시하는 것이 됩니다. 기만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분께서 준비하신 모든 은혜를 거부하는것 그분이 성령을 통해서 감동하시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불순종에 해당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기도 합니다. 여러분을 이끄는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모든 은혜를 거부한다면, 은혜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헀으니 우리 모두 순종으로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고 하나님으로 부터 인정받는 신앙인으로서 주님을 따르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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