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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기 제어의 비결 (엡 0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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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헬라 철학의 비조(鼻祖)라고 하는 탈레스에게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하기를 "자기를 아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쉬운 일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남을 충고하는 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지식 중에서 가장 귀한 지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아마도 자기를 아는 지식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많이 배우고 많이 가르칩니다. 특히 우리 한민족은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 살든 그 교육열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자기를 아는 지식이 점점 희박해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이치를 잘 알고 모든 지혜에 통달했다 하더라도 자기를 모르면 그 사람은 바보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를 아는 지식--이것이 가장 귀중한 지식인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 중에서 가장 귀한 능력은 자기를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천하를 제패(制覇)했다 하더라도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나 자신을 다스리는 데 실패한다면, 그는 마침내 패자입니다. 또한 진실 중에 가장 귀한 진실은 자기에 대한 진실입니다. 법을 잘 지키고 약속을 잘 지키며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내가 나와 더불어 약속한 것,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그는 진실치 못한 사람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자주 암송하는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참으로 자기 마음과 인격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용사보다도 더 위대하다고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먼저 자기를 알고, 자기를 다스리며, 자기 진실을 찾아서 자기 평가에 진실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자기 능력에 대해서 바르고 공정한 평가를 내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위대한 사도입니다. 명성 높은 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가 높은 인격자로 추앙되고 있습니다. 그는 나의 나됨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나됨이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는 사실--나의 나됨의 진실을 알고, 또한 자기 진실에 충실했습니다.
로마서를 읽어가느라면 그의 진실과 솔직함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로마교인들, 그를 위대한 사도로만 알고 있는 로마인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1장으로 16장까지 구원의 복음을 열거해가다가 한가운데인 7장에서 그는 자기 고백을 합니다. 나는 원하는 선을 행할 수 없고, 원치 않는 죄만 짓는 사람이다, 내 속에 두 마음이 있다, 원하는 일은 행할 수 없고 원치 않는 일만 저지른다--"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그 누가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하게 나를 평가함으로써 오는 불명예,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남들이 나를 업신여기든 말든 사도 바울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진실했습니다. 실로 그의 자기됨을 아는 그 지혜가 놀랍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쳐서 복종케 한다-헬라어로는 '둘라고게오'라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노예를 길들인다는 뜻입니다. 인도주의적 차원의 이야기는 잠깐 접어두기로 하고, 이제부터 노예를 한 명 데려다 길들인다고 생각해보십시다. 우락부락한 청년, 자유롭게 살던 청년을 노예로 만들었는데 어디 처음부터 말을 들어주겠습니까 때리고 굶기고 해서 마침내 "주인님"하고 고분고분 순종하는 노예로 만들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길들이는 사람이나 길들리는 자나 참으로 못할 노릇일 것입니다. 그 힘든 일을 사도 바울은 스스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고전 15:8)"와 같다고도 말합니다.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고도 어긋나고, 그렇게 간절히 소원하면서도 못하는 자기 자신을 각성하며 마침내 그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아무래도 배냇병신이지, 날 때부터 뭔가 잘못된 게지'하고 만삭되지 못하여 나온 신통치 못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좀더 깊이 들어가, 신령한 면에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육체의 가시'가 그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자기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육체의 가시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제 개인적 의견으로는 간질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는 '너희 믿음을 시험할만한 것이 내게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추측컨대 그는 설교 도중에 쓰러진 적도 있고, 여행하다가 발작을 일으켜서 여행을 중단해야 했던 적도 더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도 했겠지요.
아시다시피 그는 돈 없이 전도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에게 안식처가 될만한 가정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마지막 밑천이라 할 수 있는 건강 하나만큼은 있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특별히 이 문제를 놓고 세 번 간구했다고 합니다. 얼마동안 기도했는지, 또 어떤 내용으로 기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는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네가 지금 받고 있는 은혜만으로도 족하다, 충분하다 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나 같은 사람한테는 가시가 있어야 한다. 가시가 없으면 교만하고, 가시가 없으면 방종하니까, 이렇게 쿡쿡 찌르는 것이 있어야 내가 겸손할 수 있고 진실할 수 있고 부지런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느 순간에라도 이 가시가 빠져나가는 날에는 내가 아마도 나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때로 내가 원치 않는 고통도 있고 질병도 있습니다. 실패도 있습니다. 정말 답답하고 괴로운 사정도 있습니다. 자,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입니까 바울은 생각합니다. '이것이 내게 필요하다. 이것이 있어야 내가 은혜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그렇게 자기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옛사람은 여전히 살아서 들먹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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