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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를 구하는 지혜 (왕상 0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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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선택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계속적으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선택의 기회가 없다면 그 인생은 감옥에 갇힌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선택의 능력이 없다면 그는 이미 죽은 존재입니다. 선택의 지혜가 없다면 그 인격은 파산한 인격입니다. 우리는 늘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에덴동산을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다음에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하십니다. 인간에게 선택권을 주신 것입니다. 운명의 선택권, 자기의 생에 대한 선택의 권리--엄청난 특권을 인간에 주셨습니다. 모든 행위에 스스로 선택권을 행사하도록 인간의 값어치를 높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디부터 인간의 삶 자체가 일련의 선택의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그런즉 여기에 중요한 문제가 따릅니다. 반드시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강제성을 띱니다. 선택은 일시적이요 순간적일 수 있으나 선택의 결과는 일평생입니다. 그 결과가 생애에 걸쳐 이어집니다.
선택을 내 마음대로 했습니다.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큰 책임입니다. 평생토록 나를 따르는 책임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생각해보십시오. 심는 것은 자유입니다. 무엇을 심든지 내 마음대로 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두어들일 때에는 내 마음대로 선택해서 거두어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심은 대로 거두어야 합니다. 심은 것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고 그대로 거두어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생을 사는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심는 것은 자유로되 거두는 데는 강제성이 깃듭니다. 심판적입니다. 심을 때는 마음대로 심어놓고 거두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참으로 비인격적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거둘 것까지 생각하고 심습니다. 후속 하는 결과를 요량하고 심습니다. 봄이면 가을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씨를 뿌릴 때에는 추수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멍텅구리인 수라에 없습니다.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뒤따르는 결과에 책임을 지면서 원인을 제공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는 것이 바로 책임 있는 인격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말한 것도 책임을 지고 행동한 것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인격자가 설 곳은 거기입니다. 후회라고 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배고픈 고통이 아닙니다. 추운 고통이 아닙니다. 병약해서 아픈 고통이 아닙니다. 후회란 지극히 인간적인 의식을 가진 지성인의 고통입니다. 지난날에 있었던 일을 후회합니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하고 가슴아파합니다. '그 때 이 사람하고 결혼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스스로 선택해놓고 평생토록 심신이 고달픕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그 옛날 중매해주었던 사람을 탓하겠습니까, 부모를 탓하겠습니까 나의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후회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통입니다. 알고 보면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부득이하게 받게 되는 심판의 고통입니다. 이토록 애당초의 잘못된 선택으로 해서 사람들은 저마다 끊임없이 마음의 아픔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에서 솔로몬의 바른 선택을 보게 됩니다. 일순간의 바른 선택으로 솔로몬은 저의 일생을 아름답고 복된 삶으로 이끌어갑니다. 이 한번의 바른 선택이 솔로몬으로 솔로몬되게 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의 역사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스물 한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그가 왕위에 올라 처음으로 한 일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되었다고 으스대면서 축제나 벌이는 그러한 권력형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그 순간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요즘도 보면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하나님 앞에 울부짖습니다 마는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일이 잘 풀려나갈 때, 사업에 성공했을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참으로 보기 힘듭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 권좌에 앉게 되면서 그는 맨 먼저 산당(山堂)에 가서 일천 번제를 드리고 기도를 합니다. 무엇보다 앞서, 그리고 으뜸으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기도를 선택합니다. 이 행위 자체가 결과적으로 바른 선택이 되었습니다. 지혜의 근본이 된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처럼 형통한 날에, 영광된 순간에 하나님을 찾아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바른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를 어여삐 여기시어 응답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5절)."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나 바라왔던 순간입니까 지금이야말로 소중한 순간입니다. 그의 앞날은 이제 무엇을 구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 순간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바른 선택을 합니다. 그 소중한 순간에 하나님 앞에 바른 소원을 구하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바른 선택이 과연 솔로몬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겠습니까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보십시다.
우선 솔로몬의 기본적인 지혜부터 생각해보십시다. 본문말씀을 보면 그는 '이것을 주십시오' '저것을 주십시오'하고 이것저것 잡다하게 구하지 않습니다. 6절 이하를 보면 그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에게는 은혜를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6절)." 입은바 은혜를 구구절절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솔로몬은 밧세바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다윗이 불륜의 관계를 맺었던 밧세바, 그 여인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은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공짜라는 것입니다. 거저, 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공로, 나의 의, 나의 능력으로써가 아닙니다. 오직 거저 주시는 은혜, 그로 말미암아 내가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생각하면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나의 나된 것 자체가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만큼 인정하고 계십니까 나의 행동, 나의 의, 나의 도덕성, 나의 부족함, 나의 허물, 나의 게으름…… 그럴진대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혜를 생각하면 엄청납니다. 할말이 없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요새 정치인들의 행태란 가위 꼴불견입니다. 정치경제사회의 어떤 분야를 보아도 복 받을만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온 세상이 전쟁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안정을 누리며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불쌍히 여겨주신 그 은혜로 오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입을만한 그 무엇이 있기나 합니까 복 받을만한 것이 어느 구석에 있습니까 죄 아닌 것이 없습니다. 불의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 이만큼의 평화를 누리며 오늘도 하나님 앞에 무릎꿇어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인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사람이 아닙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지혜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가 왕이 된 것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배경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모습입니다. 7절에서는 "종은 작은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일상 출입하는 길도 모르는 작은아이라고 스스로를 낮추고 있습니다. 연령이나 경험, 지식, 또 사회적 위치로나 인격적으로도 그러하겠습니다마는 여기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십시다. 대체로 인생을 거진 다 살아버린 사람들은 뒤늦게야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그저 부족합니다'라고 쉽게 말합니다마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더구나 스물 한 살의 나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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