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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시대의 진정한 가치 (삼상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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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이라면 누구나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선생님이나 주변 사람들은 나를 두고 항상 ‘명랑하다’ 또는 ‘귀엽다’고만 말하지 ‘예쁘다’고는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늘 섭섭해 누구라도 내게 ‘예쁘다’고 해 주면 그 사람이 무척 고마울 것 같았다. 심지어 남녀공학인 중학교에 다닐 때 혼자 짝사랑했던 동창 남학생이 있었는데 그 아이를 내가 좋아했던 이유도 그 남학생이 내게 “너 참 예쁘게 생겼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내게 예쁘다는 말을 해준 그 남학생이 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게 보였다. ‘예쁘다’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는지 나는 통장에 저금한 돈을 빼거나 엄마에게 받은 잔심부름 값을 조금씩 떼어 내 그 남학생에게 줄 선물을 사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쁘다는 말을 들은 것이 여전히 기쁘다. 확실히 우리 또래의 여학생들은 외모에 참 민감한 것 같다. 우리끼리 만나면 누가 예쁘니 안 예쁘니 하는 말을 가장 많이 하게 된다. 선생님께서는 얼굴보다는 마음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실 어른들도 예쁜 것 따지기는 우리와 비슷한 것 같다. 어른들도 주위의 여자들 예기를 할 때, 제일 먼저 예쁜지부터 물어 보신다 또, 여자는 똑똑한 것도 좋지만 우선 예뻐야 시집도 잘 가고 취직도 잘 된다는 말씀도 하신다. 얼마 전 뉴스에서 여상 학생들도 공부를 잘한 애보다 키 크고 예쁜 애들이 취직이 잘되, 방학 때면 살 빼고 성형 수술도 한다고 들었다 그런 예기를 들을 때마다 거울을 꺼내 ‘귀엽긴 해도 예쁘지는 않은’ 내 얼굴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김아연 계○여고 1년-

위의 글에서 나타난 것처럼 요즘 청소년들은 내면적인 아름다움 보다 외적인 조건들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키 크고 잘생기고 돈 많고 인기만 있으면 삶이야 어떠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사고 방식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우리들이 추구하는 그 무엇 보다 우선 되어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의미를 알게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사울 왕의 경우가 우리에게 이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행운아 사울이란 소년만큼 좋은 외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 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라고 그의 완벽한 외적 조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돈 많고 좋은 가문 출신의 최고의 지위, 명석한 두뇌, 잘생긴 얼굴과 롱다리 까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환상적인 ‘킹카’였음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그의 일생에서 일어납니다. 그렇게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면 마땅히 행복해야 할 그의 삶이 불행으로 얼룩졌고 마침내 자신의 칼에 엎드러져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도 불행하게 만들었을까요
첫째, 그의 교만함이 불행의 원인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스타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를 우러러보았고 그는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성공이 그를 교만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행동을 서슴없이 일삼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만의 극치에 이른 그에게는 선지자도, 제사장도, 심지어는 하나님도 안중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후에 사무엘 선지는 그의 교만을 책망하며 탄식했습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의 우두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삼상 15:17)
둘째, 그의 욕심이 그를 멸망시켰습니다.
잘난 그는 욕심도 많았습니다. 그 욕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스스로를 위해 갈취하는 대만 급급하게 했으며 말년에는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기 원하는 욕심이 다윗에 대한 질투심으로 변해 정신 착란의 증세까지 일으키게 됩니다. 얼마나 슬픈 종말입니까 사무엘은 슬퍼했습니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삼상 15:19)
셋째, 무엇보다 하나님을 저버림이 그의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동안 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인지 그의 생에를 통해 그가 한번도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진실 되게 찾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높여 드렸다’ 거나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말은 찾아 볼 수조차 없습니다. 그런 그의 태도는 하나님의 선택적인 은혜와 축복으로 성공한 그에게는 곧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최후통첩을 하셨습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랑하는 벧엘의 청소년들이여! 저는 얼마 전 ‘아이돌’이라는 청소년 스타들의 예고된 최후를 보며 씁씁할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떠나는 조작된 그들의 인기 뒤에는 다음과 같은 슬픈 고백이 메아리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는 노래하지 않을꺼예요. 열심히 공부만 할래요. 우리를 이렇게 바보로 만들어 놓고 이제 쓸모 없다고 버리는 사람들이 미워요…!” 아름다움, 성공, 행복 이 모든 것은 외적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람다워지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부디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나’에게 만족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997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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