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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에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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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위기에 처한 자기 민족을 목숨을 걸고 구해 내려는 왕후 에스더의 애절한 몸부림이 잘 나타나 있는 말씀입니다. 멸족의 위기에서 그 민족을 살려냈던 에스더의 애국심, 그녀의 어떠한 자세가 자기 민족을 구하는 힘이 되었을까요 본문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나라 사랑의 자세는 무엇일까요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자신만의 안락한 삶을 추구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생각해 보면 왕후 에스더는 얼마 남지 않은 자기 민족을 위해 굳이 생명을 걸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페르시아 왕국의 국모가 되어 있었고 따라서 그녀의 출생과는 관계없이 페르시아의 국적을 소유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왕후로써 이미 부귀와 영화를 값없이 누리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의 반이라도 주겠노라고 제안하는 왕 앞에서 그녀는 자기 민족을 살려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희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안락한 생활을 민족을 살리는 일에 바쳤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나라가 왜 이렇게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이익과 안락함만을 추구해 온 우리 백성들의 이기심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이 나라를 다시 살리는 길은 자신의 안락함보다는 나라의 장래와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에스더와 같은 희생정신이 아닐까요
둘째, 자신의 목숨보다 민족을 더 사랑하는 자세입니다.
어떻게 얻은 부귀이며 어떻게 얻은 영광입니까 포로된 나라에서 고아로 자라나 수많은 경쟁을 물리치고 기적적으로 왕후의 자리에 오른 에스더, 그녀의 왕후로써의 자리는 목숨보다도 더 귀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민족을 더 사랑했기에 실패하면 왕후에 자리에 물러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목숨까지 빼앗길지도 모르는 모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에스더와 같은 애국심이 필요합니다. 50여년전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선열들과 같은 피끓는 나라 사랑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은 오히려 나라뿐 아니라 나를 망치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사랑을 받는 삶의 자세입니다.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라는 에스더의 무모한 간청이 왕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었던 것은 에스더가 왕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이 나라를 살리고 이 백성을 구원하는 힘을 가진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이 하나님께 나라를 위한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거절치 않으시고 들어주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사랑하는 벧엘의 성도들이여! 오늘 우리는 이 땅에 해방의 기쁨을 주신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 앞에 부끄러움을 금할 길 없는 52주년 광복절을 맞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조국 통일의 과업과 민족 중흥의 사명을 이루고 나아가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나라를 이루는 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한마음으로 에스더처럼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의인의 기도는 역사 하는 힘이 있습니다!

1997년 8월 17일 52주년 광복절 기념 주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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