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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혼의 부요 (요삼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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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1. 영혼의 부요함이 그 어떤 부요함보다 우선해야 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하 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놀라우신 부요함을 우리 안에 이루시기 위해, 사랑하는 자에서 이를 방해하는 것들이 있을 때, 이것들을 빼앗아 가십니다.
 예) 황량한 암석으로 가득찬 산이 있었습니다. 풀밭이라고는 옹달샘 부근의 손바닥만한 땅으로 마치 망망한 바다가운데 있는 한 섬같아 보였습니다. 이 황량한 산에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옹달샘 옆의 손바닥만한 풀밭이 유일한 먹이였습니다. 가뭄이 오자 그나마 말라붙고 풀도 말라버렸습니다. 이 토끼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산을 넘고 산을 넘어 사흘 밤낮을 지나서야 풀이 있는 산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굽이굽이 개울 물이 흐르고 있었고 푸른 풀밭천지였습니다. 이 토끼는 생각합니다. 지난 날의 그 가뭄은 나에게 새로운 부요함을 가져다 준 가뭄이었다고…......
약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세속적인 부요함이 결코 부요함이 될 수 없다. 눅6: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눅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 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 영혼의 부요를 이루게 한 가이오의 생활상을 보라! 1)세속을 좇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3) 요삼1: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2)주는 삶을 살았습니다.(5-6) 요삼1: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요삼1:6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곧 그는 은혜를 베풀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주는 자에게 항상 넣어 주신다. 미국의 기독실업인 잭 하트만의 체험적인 간증이 "성경은 경영학 교과서입 니다." 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1974년에 경영하던 회사가 망하고 이를 다시 일으킨 사람이 있습니다. 들어오는 소득보다 나가는 채무가 더 많았던 그는 도무지 일어설 길이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에게 신경쇠약증까지 찾아야 괴롭혔습니다. 그는 말씀에서 그 일어나는 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해 나갔습니다. 그는 회사를 다시 건강하게 일으키는 것과 자신의 신경쇠약증 모두를 고쳤습니다. 맨 처음 3명의 사업가와 시작했던 성경공부 모임을 이제는 주일 아침마다 1000명 정도가 모이는 대 교회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하나의 분명한 원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는 빚으로 난감해 있을 때에, 도리어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쫄딱 망했을 때에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 많은 선교사들이 가난으로 찌든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주는 법칙을 가르쳤을 때 하나님께서 그 나라 사람들을 풍성하게 축복하신 것을 간증한다." 그는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부정한다. 그는 드릴 수 없는 상황에도 드리는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그는 드림으로서 빚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국가적인 불경기에서도 그의 사업은 매년 신장되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보라! 예수께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죄인들 앞에 바친 것을 보라!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 영혼의 부요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계2:9,3:17 (서머나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견주어 보라)
계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영혼의 부요를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는 이미 주께서 주시는 부요함에 들어선 것입니다..........♣♧

 제 목:성도의 강건한 복을 위하여
 본 문:요삼 1:2-4

사람이 먹고 살기가 어려울 때는 다른 겨를이 없지만 조금 생활 수준이 오르면 너도 나도 건강 문제에 마음을 쓰게 됩니다. 모일간지가 한국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쏟는 문제를 조사해보니 단연 건강문제라고 말한것을 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년초에 적어내주신 한해의 기도내용 조항들을 봐도 가족과 본인의 건강을 위한 기도가 많이 있음을 볼 수 있어 신.불신이 다를바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축복하셨을 때 당연히 건강을 복으로 주셔야 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약한 육체와 정신으로 땅을 정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세계 기독교 의사회가 세미나를 하면서 "인간이 건강하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완전한 안녕이 유지되는 상태"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이 말은 세계보건기구 W.H.O의 건강 정의에 영적 안녕상태를 추가한 것입니다. 참으로 사람의 건강은 고차원적이고 복합적이어서 어느 것 하나만 튼튼하다고해서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영적인 피조물이다 보니 영적 건강이 결여되면 다른 모든 건강에 손상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에도 장로 요한은 "성도의 영혼이 강건하여 신앙생활이 복된 것을 바탕으로 그 사업이나 하는 일도 잘되고 그 몸도 강건하기를 빈다"고 말씀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중요관심은 사람의 영혼의 구원이다 보니 그의 사업문제 나 건강문제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고 또 분야에 전문가들이 담당하도록 합니다 즉 사업문제는 그 분야에 권위있는 경험자들과 학자들이 자문해 주어야 합니다. 건강문제는 의사들이 진찰, 치료, 예방의학 등으로 잘 자문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건강의 복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 사람의 건강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물 속에 살고있는 물고기가 물 밖에 나와 보지 않고는 물의 고마움을 모른다는 것처럼 사람도 평소에 늘 건강하게 지내는 사람은 건강을 잃고 나서야 그 건강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말씀할 때 한편으로는 인간의 질병은 모두 마귀가 주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마귀역사에 휘말릴 때 건강을 잃고 질병에 고통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말씀에도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귀신을 추방해줌으로 건강하게 해주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5장에 38년된 환자를 일으키신 뒤 성전에서 만나셔서 "너에게 더 심한 증세가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고 하심으로 그 병이 죄와 관계가 있음을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단편적인 주장은 많은 그리스도인을 큰 혼란에 빠지게 만듭니다. 자기는 누구보다 열심으로 주를 섬기며 믿음을 지켜 살려 애쓰는데 질병이 덮쳐왔으니 죄값인가 사탄의 역사인가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셨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고 많은 병자를 일으키며 성령이 충만하셨던 바울 사도도 자기몸에 찌르는 가시 같은 질병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했습니다. 동방의 의인이라고 하는 욥 같은 사람도 죄없이 시련에 놓임으로 건강과 재산을 다 잃게도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특별하신 뜻과 목적을 가지고 사람에게 질병을 주시기도 했는데 그런때에는 그 질병까지도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건강의 축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인간은 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잘 간수해야할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건강의 복을 주셔도 인간이 무책임하게 되면 그 건강을 주신 복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건강의 복을 잘 지켜가도록 충분히 일러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건강을 말하면 우선 무엇을 먹어야 건강하냐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기상천외한 건강식품이 날개 돋힌듯 팔리는 기현상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성경말씀은 매우 간략하면서도 원리적인 건강식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9절에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신 양식이 있습니다.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건강을 위해 아무 것이나 먹지 못하게 식물을 한정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3장 18-19절에도 타락이후 인간에게 다시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게 되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후 범죄한 인간을 물로 심판하신 뒤에 노아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9장 3-4절에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되는 피채 먹지 말지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복된 식물로 주신 것이 씨 맺는 채소, 과실나무 열매였음을 봅니다. 그 다음이 밭의 채소요 그 다음이 동물의 살고기 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꾸로 알아서 육식을 최고로 삼은 백성이나 개인마다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독일 빌헤르 벤네르박사는 채소야말로 태양으로부터 받은 광양지를 에너지로 저축함으로 사람이 이를 먹을때 태양에너지를 흡수케 되는 유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채소의 섬유질이 우리 건강과 미용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때에 감사히 받게 될 것입니다. 또 씨 맺는 곡식들도 그 곡식의 생명인 눈을 벗겨버리지 말고 먹으면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은 종교적인 의미로만 해석하려 했는데 요즈음에는 죽은 짐승의 피가 얼마나 건강에 해로운가를 연구한 이론들이 나왔습니다. 짐승을 죽일 때 제일 먼저 뇌신경같은 고급 부분이 먼저 죽고 다른 부분은 차차 죽게 됩니다. 그동안에 체내에서 발생하는 유독한 노폐물이 피로 몰려 맹독성의 푸토마인이란 물질이 핏속에 부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를 금하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이 먹도록 한것을 감사히 먹고, 금하신 것을 금하면 건강의 복을 받습니다.

다음으로 건강을 말하면 무엇을 해야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하느냐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조깅, 등산, 테니스, 볼링 그 밖에도 나름대로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해보려고 합니다.
성경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이든 부지런해야 합니다. 비를 들고 길을 청소하는 일이나 다른 사람의 힘든 일을 도와주는 일이 얼마나 좋습니까 일은 않고 먹기는 많이하니 결국 성경대로 순종하지 못해 질병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일을 하되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휴식을 취하는 제도도 주셨습 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가장 좋은 건강비결을 주신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건강 축복이 이 안식일 제도에 있다고도 합니다. 일을 함으로 건강을 해치는 사람 대부분이 하나님이 말씀한 휴식을 무시한 탓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 주남선목사가 임종시에 "나는 지금까지 휴식하는 것은 주의 일이 아닌 줄 알았다. 이제야 휴식도 주의 일인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성경말씀은 건강한 삶을 주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3대 진리를 주셨습니다. 늘 얼굴에 미소를 지닌 사람이 건강합니다.
옛날 사람들도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한번 화를 내면 그만큼 늙어진다는 일소 일소요, 일노 일노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 안에서 기쁨을 간직하고 살때 스트레스에서 오는 모든 질병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며 사는 영적 건강을 지니면 죄와 사탄의 혼잡한 정신을 극복하고 심신이 거룩함을 좇게되어 강건한 복을 받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는 탐욕으로 인한 불평, 불만을 품지않아 건강하게 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할 때 사망을 낳는 것처럼 탐욕이 죽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물욕, 명예욕, 식욕, 소유욕, 권세욕 이 모든 욕심을 조절하지 못하면 결국 병이 들게 됩니다.

우리는 때로 건강을 잃고 고생을 하게 됐을 때 그렇게된 원인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쁨은 커녕 짜증만 내며 분노를 품고 살지 않았나 기도가 없이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고 살아온 영적 빈공증에 걸리지 않았나 감사는 사라지고 탐욕의 노예가 되어 불평불만을 늘어 놓으며 살지 않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정신 건강을 통해 몸의 건강을 조절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적건강 기준인 성경말씀을 가지고 정신적 건강, 육체적 건강을 모두 조절해 가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신이 거하실 성전이 된 몸을 내 마음대로 혹사하고 괴롭히고 더럽히는 것은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성령을 모시고 그분께 순종하는 생활로 몸을 드려야 건강의 복도 주십니다. 내 기분과 내 욕망, 내 영광의 도구로 몸을 마구 혹사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건강을 망치는 어리석음을 생각없이 저지르고 있습니까 건강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감사히 알고 잘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먹고 생활해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바로 되므로 우리 건강도 은혜로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구원받는 가정

요한삼서 2-4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이야말로 우리 삶의 기본적인 터전이요 보금자리이며 여기서부터 우리의 삶이 시작되고 여기를 바탕으로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며, 또 여기서 우리의 삶이 끝이 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가정이 복음으로 꾸며지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매우 공허하며 안정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이 복음을 바탕으로 세워질 때 이것은 마치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아서 어떤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바탕인 것입니다. 가정이 파괴될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사실상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가장 중요한 선교의 장이며 복음이 전승되어가는 기본적인 인자인 것입니다.

도시 교회의 여러 가지 선교 전략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략은 가정을 복음화시키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한국의 교회가 성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건전한 가정이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구의 교회들이 텅텅 비어가는 까닭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중요한 요인은 가정의 파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나라도 산업의 발달과 함께 전통적인 가족 제도가 무너져 가면서 핵가족으로 변천되어감과 동시에 많은 농촌의 젊은이들이 가정을 떠나 도시로 흘러들어옴으로 농촌의 가정들이 대부분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정의 위기가 있는 동시에 교회의 위기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도시 교회들이 급성장하는 까닭은 농촌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는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농촌에서 자라면서 신앙을 배운 사람들이 도시로 올라오기 때문에 도시 교회는 덕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가정들이 무너져 가므로 농촌이나 도시나 교회들은 점차 서구 교회들같이 텅텅 비어버릴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들은 가정을 복음으로 세워나가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서구 교회의 전철을 밟기 쉬울 것입니다. 이제 교회들이 가정을 재건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1. 가정과 구원의 역사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이 가정을 통해서 어떻게 전승되어 왔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옛날에는 문서로 어떤 사실이 기록되어 후세에 전하여진 것이 아니라 구두로 전하여지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식에게 옛 이야기를 하듯이 그들의 조상들의 업적을 전하여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받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삭에게 전하여 주었고, 이삭은 에서와 야곱에게 전하였고, 그 중에서도 전승에 관심을 가진 야곱이 그 사실을 아들들에게 이야기 해 주었고, 이 이야기들은 모든 가정에서 기억되어 그들 후손들에게 전하여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의 역사는 이와 같이 구전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특히 선택된 민족이란 의식이 할례라는 표와 함께 대대손손이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신명기 말씀에 보면 여러 곳에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 4:9)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 즉 구원의 역사를 어려서부터 가르치는 것을 부모의 가장 중요한 의무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열의는 대단한
것이며, 이것은 곧 그들의 신앙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옛날에 모세 당시 여호와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을 주러 왔노라." 모세는 대단히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냥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선물 대신 무엇이건 여호와께 바쳐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지도자들과 의논하였습니다. 대부분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값진 보석을 바치자고 하였습니다.이 말을 들은 여호와께서는 "그것은 보잘 것 없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황한 지도자들은 숙의에 숙의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현자가 제안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중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장래이다. 한데 우리의 장래를 형태로 나타내면 그것은 우리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모세는 우리의 자녀를 여호와께 모두 바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을 내게 바친 너희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율법을 주노라. 그리고 어린이들을 너희에게 맡길 터인즉 열심히 율법을 가르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라."

이 이야기의 교훈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곧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의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의무를 철저히 지켜왔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의 어머니는 자기 아이가 세살만 되면 잠자리에 들 때 반드시 책을 읽어준다는 것입니다. 하루도 빼지 않고 창조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와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들에게는 이야기 거리가 풍부합니다.
"탈무드"라는 지혜를 가르치는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 책이 있기 때문에 읽을 거리는 무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몇 번씩 반복해 가면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유익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뿐 아니라 동시에 생활의 지혜를 배우게 하며, 그리고 강한 민족 의식을 갖게 하고, 또 어려서부터 시킨 조기 교육은 천재들을 배출하여 온 것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 중의 32%가 유대인이고 미국을 움직이는 30인의 인물 중에는 5명의 유대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2천년 동안이나 나라없는 민족으로 지나왔으면서도 다른 민족속에 흡수되어 버리
지 않고 그 민족의 전통과 신앙을 굳게 지켜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와 같은 가정을 중심한 교육에 힘입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가정에서의 신앙교육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정 교육에서 배울 바가 많습니다. 특히 신앙 교육을 위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도를 많이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한 전도는 바로 가정에서 자녀들을 신앙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사실상 집집이 문을 두드리며 전도를 하거나 빌리그래함처럼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전도를 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그것은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자녀를 신앙으로 성장시킨다는 것은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고 십 수년 동안 한결같이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든 만큼 그 일은 보람있는 일이요 또 확실한 일이기도 합니다. 몇 만명씩 모인 대중 집회에서 설교 한 번에 수 백명의 결신자를 얻게 되는 것은 결코 그 설교에 끌린 것이 아니고 어렸을 적부터 뿌려진 씨와 다져진 마음 바탕에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
서의 어머니의 신앙 교육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전도요 가장 분명하게 교인을 얻는 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신앙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의 부모들처럼 자녀에 대한 신앙 교육을 하나님에 대한 의무로 생각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4에 기록된 대로 우리 부모된 이들은 생각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출세하여 돈을 많이 벌어오는 것이나, 공부를 많이 하여 박사가 되는 일이나, 권력을 잡은 정치인이 되는 것보다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철저하지 못하고서는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신앙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리가 자기 새끼를 보고 아무리 양과 같이 되라고 해도 이리 새끼가 양처럼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철저한 신앙을 가진 부모 밑에서 훌륭한 자녀들이 나오기 마련인 것입니다.

자녀들의 공부를 위해서 지성껏 뒷바라지하는 그 정성의 몇 분의 일만이라도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하여 쏟는다면 놀라운 신앙의 자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철저하게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바치고 성경을 보며, 기도를 하는 부모에게서 축복받은 신앙의 자녀들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둘째로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위하여 그들을 주일학교에 보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주일학교를 거친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전체 교인의 85%가 주일학교 출신이라고 합니다. 김득렬박사가 1968년에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서울 시내 공립국민학교 5학년 아동중 교회에 나가봤거나 나가고 있는 아동이 전체의 80%라고 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오늘의 교회들이 추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뉴욕의 어느 판사가 말하길 "법정에 기소된 십대청소년 2,700명 가운데 주일학교 출신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주일학교 교육이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놀라운 신앙교육입니다.

오늘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교회에서보다 TV에서 더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좀처럼 교회에 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어른들보다 어린이 수가 두배 이상이었는데 요즈음은 교회마다 어린이 수가 어른들의 수의 반으로 줄고 있는 형편입니다.

앞으로의 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위기에 봉착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주일학교 교육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또 부모들은 철저하게 자녀들을 교회에 같이 데리고 나오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내 자식은 교회에 빠지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가 없이는 후회하게 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철저하게 훈련받은 자녀들은 결코 그들 삶의 길에서 실패하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새마을 운동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누굽니까 새마을 운동이 있기전부터 예수를 믿고 새마을 운동을 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새로운 분야를 언제나 개척하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적으로 철저하게 훈련받은 사람들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주일에 공부 한 시간 덜 시키고 주일학교에 보낸다면 공부시간에 얻지 못하는 삶의 용기와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유대인들 속담에 "한 마리의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고기 잡는 법, 즉 생을 바르게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 그것이 신앙교육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의 교회들은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지금 당장은 교회가 성장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심은 것을 거두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산업화 이전에 가정들이 온전했고, 주일학교 교육이 활발했던 결과를 지금 우리가 얻고 있으나 오늘 가정들이 분산되고 주일학교 교육이 침체되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교회의 선교의 전망을 흐리게 하고 있는 요인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내다보고 보다 철저하게 가정을 구원하고 신앙 교육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지금은 과거와 같이 쉽게 전도할 수 있는 때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이 난관을 타개하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 가정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며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개 목을 잡아매어 끌듯이 서둘러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 말로만 가지고 할 수 없습니다. 내 자신이 먼저 신앙에 철저하게 서서 생활하면서 본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가정을 구원받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전도인 것입니다. 가정이 구원받아 온전한 가정이 될 때 교회도 성장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도 성취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철저한 어버이들에 의해서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받은 신앙의 유산을 우리 자손들에게 바로 전달하여 줄 때 우리가 담당한 구원의 역사는 성취될 것입니다. 자녀들을 진리안에서 올바로 양육하여 훌륭한 구원의 가정을 이루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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