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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요 0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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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례주일에 여러분들과 함께 은혜받기를 원하는 설교의 제목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고 새 생명을 얻읍시다 라는 내용입니다.

1. 그것은 인간의 운명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보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보았읍니다. 보니 먹음직도하고 보암직도 하였다고 했읍니다. 그래서 따 먹었고 여기서 인간의 원죄가 시작됩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런 사건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광야에서 있을 때에 에돔족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이땅을 피하여 둘러서 가려고하였는데 아주 길이 험하고 나빴읍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마음이 상하여 모세를원망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저는 남에게서 싫은 소리들을 때 가장 괴로워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읍니다. 70년에 초에 총신으로부터 교수로 초청을 받아서 귀국을 했는데 시간표만 짜고 이북에는 가본적도 없는 저를 충현교회 교인이니 이북파라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물러나고 또 충현교회 에서도 여러동료 목사들에게서 박사면 최고냐 하는 모함을 받고 괴로워혹 있을 때 바로 본문이제게 큰 위로가 되었읍니다. 모세같은 위대한 사람도 원망과 불평을 받았다고 하면 나같은 부족한 사람이 남에게 오해를 받고 원망을 받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가당연하지 않는가 하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원에서 기도하면서이 고난은 다 내게 그릇준비 하라는 하나님의 훈련이라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이렇게 이 말씀에서 큰 은혜를 받고 하산한 적이 있읍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자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백성들을 물게하셔서 이들을 많이 죽게하였읍니다. 이 때 백성들이 모세에게 와서간구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할 때에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달고 백성들로 하여금 쳐다보게 하였읍니다. 그것은 미신이야, 보기는 뭘봐 하고안본 사람들은 다 죽었읍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본 사람들은 다 고침을 받고 살아났읍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 3:14-15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 믿습니까 다시 말하면 모세가 만든 놋뱀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형이란말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놋뱀을 바라보았을때 저들이 구원을 받은 것처럼 지금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면 영생을 얻는다는말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읍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있읍니까
[1]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보고 있읍니다. 출 32장을 보면 모세가시내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참지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반지, 금고리 등을 거두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신으로 섬긴 기록이 나옵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읍니다. 돈이면 모든것이 된다는 사고방식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읍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수단과 방법을 안가리는 세상이 되었읍니다. 요즈음 정경유착이란 말이 유행하고있읍니다만 돈을 벌기위해서는 창녀처럼 권력앞에 아부하는 세상이 되었읍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돈이 도는것이 아니라 마음이 돌고 생각이 돌고 그래서 모두가 돈사람이 되고 있읍니다.

[2] 또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보고 있읍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있읍니다만 권력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자연히 권력을 추구하기를 원하고 있읍니다. 육사를 지원하는 어떤 청년에게 물었읍니다. 가정도 좋고대학에 갈 충분한 배경이 되는데 왜 육사에 가려고 하느냐 그랬더니 그 청년이하는말이 대통령이 될려구요 하고 대답했읍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공의가 이 사회를 지배해야지 권력이면 다 되는 풍토는 없어져야 합니다.
[3] 또 나머지 사람들은 땅(밑)을 보고있읍니다. 본래 사람은 위를 보고살라고 직립동물로 창조하셨는데 개나 돼지처럼 자꾸만 밑을 보고 살려고 합니다. 세상에서의 쾌락,세상에서의 인기, 세상에서의 편안함 만을 바라봅니다. 동물적 중간 존재이기 때문에 위를 보고 살면 천사처럼 되지만 밑을보고 살면 동물처럼 변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를보고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우리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근본문제는 구원의 문제입니다. 눌림을 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참으로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에 있읍니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이 해방, 이 자유를 찾아 지금까지 왔읍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치적 자유의 획득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경제적 자유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우리의 영혼이 죄에서 자유함을 받고,하나님의 백성이 되는데 있읍니다.

3. 그러면 우리가 구원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1] 먼저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본다는 말은 첫째로주목한다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Behold라고 번역한대로 주목할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보라는 말은 믿는다는 말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놋뱀을 본 것은 단순히 사물을 보듯이 보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보는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믿음이란 말로 해석하셨읍니다. 주님이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 지셨다. 이제 이 주님을 영접하면 다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세째는 소망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항상 소망과 연결되어있읍니다. 아이삭 왓트의 그림가운데 소망이란 이름의 그림이 있읍니다. 한번은어떤 청년이 자살을 하려고 테임즈 강으로 가다가 이 그림을 보았읍니다. 그림의내용은 어떤 소경이 비파를 켜고 있는데 모든 줄이 다 끊어지고 오직 한줄만 남아있었읍니다. 이것이 바로 소망의 줄이란 말입니다. 인간은 모든 줄이 다 끊어져도 오직 소망의 한줄만 붙어있으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가만히 생각해보았읍니다. 직장도 없고 아내도 없고 재산도 없고, 집도 없고 무엇하나 가진것이 없지만 자기에게는 자녀가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렇다 내게도 하나는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살을 포기했다는 얘기입니다. 네째는 보라는 말을 귀하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돈을 보는 사람은 돈을 귀하게 생각하고 권력을 보는 사람은권력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읍니까 그 사람에게는십자가가 귀한 것입니다. 주님이 귀한 것입니다. 끝으로 사랑한다는 뜻이 있읍니다. 보라는 것은 귀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랑하는데 까지 이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는 사람은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다음주일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이날은 구약의 삼대절기중에 하나로서 일년동안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우리가 농부는 아니지만 그러나 여러가지의 직장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생업에종사하여 왔읍니다. 금년에는 태풍이 많았지만 다 비켜갔읍니다. 가뭄도 없었읍니다. 그래서 대풍이 들었읍니다. 어디 농사뿐입니까 무역도 국가적으로 130억달러의 흑자를 내었읍니다. 또 앞으로 받을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는 감사할 것이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는 다음주일에 감사하는 절기로 지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정성을 다해서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셔서 하나님이 준비한 축복을남김없이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2] 조금전에는 보라는 말의 뜻을 살펴보았읍니다만 이제는 우리가 해야할것을 살펴보겠읍니다. 먼저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는 사람은 구약의 백성들이 문지방과 안방에 양의피를 바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 영혼의 문지방과안방에 바릅니다. 그래서 깨끗이 씻김을 받습니다. 이점이 중요합니다. 지금 여기서 유월절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역사가 일어나는것을 말합니다. 나의 옛 사람은 죽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부활해야 합니다.
[3] 다음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만으로는부족합니다. 또 물 세례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걸어다니는 것도 아니고 또 일을 하는것도 아닙니다. 약 20년동안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아야 겨우 무엇을 할 수 있읍니다. 세상의 일은 건강하고 지식이 있으면 누구나 다 일을 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누구가 다 할 수 있는것이아니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아서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이 되고 성령에 매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학습받고 세례받는 모든 분들에게 성령의 세례도 함께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과거에 물세례 받으신분들 중에서도 아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못한 명목상의 교인들도 이 시간을 통하여 놀라운 성령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그냥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충만해야 성령이 충만합니다. 기도가 충만해야 성령이 충만합니다. 지금 여기에는 타다만 장작개비처럼 연기만 나고 성령의 불이 타오르지 않은 사람들이 있읍니다. 교회의 직분이 높다고 천국가는 것 아니고 돈 많다고 행복해지는 것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흔자처럼 영혼이 약한 성도들은 이 시간을 통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환자처럼 영혼이 약한 성도들은 이 시간을 통하여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구하는 자에게 아버지께서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읍니다. 지금 믿고 성령 받으세요. 달라고간구하세요. 눈물로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지금 바로 이 시간에 주실줄로 믿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기도하고 구한것은 받은줄로 믿으라고 했으니 기도한후에는 받았다고 믿고 그 성령을 의지해보시기 바랍니다.
[4] 끝으로 34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증인의 생활을 해야합니다. 그것은 증거를 안하면 마음에 의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중요한 것은 증거를 할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죽는 날까지 주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증거하는 동안은 의심이 없읍니다. 증거하는 동안은 확신이 생깁니다. 증거하는동안은 기도합니다. 증거하는 동안은 성경을 연구합니다. 증거하는 동안은 교회에서 기쁨으로 봉사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것은 증거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증거한다는 것은 바로 신자의 보증수표요 뺏지와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성도들은 금년이 가기전에 다 한사람씩 증거하셔서 영적 자녀를 낳는 기쁨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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