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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녀여, 오직 네 부모를 위하여! (전 03: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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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자 국민일보 신문에 「두 어버이, 슬픈 죽음」이란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첫 번째 기사는 83세의 박원규 할머니가 병들어 자식 고생시키기 전에 편히 죽어야 한다며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한 내용이었습니다. 두 번째 기사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던 75세의 전영식 할아버지가 아파트에서 죽은 지 20여 일이 지나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두 기사를 읽으면서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자식의 무관심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일평생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이제는 자식에게 누가 될까봐 스스로 생명을 끊은 할머니에게서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생각할 수 있었고, 죽은지 20일이 지나서야 아버지가 죽은 사실을 깨닫는 현실에서 우리 사회의 부모에 대한 자식의 무관심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심각하게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자식이 부모님을 사랑한다 해도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에 비할 바는 못됩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의 상실된 효의 실상을 깨닫게 됩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매스컴과 신문지상에서는 연일 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효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 되는 것입니다.
“네 보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첫 계명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효도를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게 가장 부모님에게 가장 큰 효도가 효도가 되겠는가를 신앙인의 입장에서 냉철하게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신문에 보도된 이 두 사건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으로 연결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두가 다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도 아버지요, 내 아버지에게도 아버지요, 내 자녀들에게도 아버지입니다. 육신의 부모님에게 내가 효도를 다하는 것이 마땅한 본분이라면 나와 더불어 내 육신의 아버지도 영적 아버지인 하나님께 효도를 다하는 것은 육신적인 효도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육신의 부모님에게 효도를 다해야 합니다. 자식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으로 나는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육신의 아버지도 영이신 하나님께 효도를 다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부모님에게 자식이 효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습니다.
그러나 영적 아버지에게 내 육신의 아버지도 효를 다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강조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부모님께 최고의 효성스런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동시에, 아니 그 이전에 내가 내 육신의 아버지를 위한 최선의 길은 그가 영이신 아버지에게 최고의 사랑을 기울일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말로 다할 수 없는데 우리 부모님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육신이 죽어 20일이 지나도록 무관심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이처럼’ 사랑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처럼’이란 얼마만큼의 사랑입니까
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실 만큼의 사랑입니다.
②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기까지의 사랑입니다.
③ 이 세상에서 예수 믿은 시간부터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까지 책임지시는 사랑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인간의 무관심은 어느 정도입니까
① 예수님을 영접지 않았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1:10-11)
② 하나님을 깨닫는 자가 없었습니다.(롬3:11)
③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었습니다.(롬3:11)
④ 다 한 가지로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었습니다.(롬3:12)
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롬3:12)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어버이 주일에 어떤 말씀을 전할까 고민을 맞이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부모님에 대하여 무관심한 죄를 짓지 말고 항상 기억하며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그 이상의 더 큰 효도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가운데 오늘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가 높고 귀한 것이라면 그 부모님에 대한 우리의 헌신과 사랑과 희생도 당연히 커야만 하겠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다양하게 많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일은 무엇이 될까요 말씀을 통해 몇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인간의 실존을 깨닫게 해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길게 오래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이 드신 어른 앞에서 인생을 논하는 것 자체가 시건방진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누구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는 성경만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모르면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인생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동물과 짐승도 지으셨고, 인간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동물과 인간은 창조 때부터 이미 다른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3:19-21)
이 사실들을 사람들이 압니까 모릅니다. 오직 성경에서 하나님만이 이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모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동물과 인간이 이 세상을 일정 기간 살다가 죽는 것은 동일합니다. 육신이 살고, 육신이 죽는 것은 똑같습니다. 육신은 흙으로 말미암았기에 다같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동물은 그 혼이 육신과 함께 소멸하지만 인간의 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위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인간은 동물, 나아가 만물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모든 만물은 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으셨지만 인간만큼은 흙으로 그 육신을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축복된 신분, 하나님과 함께 해야만 살 수 있는 구별된 신분으로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오직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했기에 영혼을 지닌 영적존재가 되었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인간이 받게 되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하라는 말씀은 단순하게 들으면 명령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축복의 결과였습니다. 처음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능력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신분과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바로 창세기 2:17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범죄 했습니다. 그 결과 창세기 3:1-6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로마서 3:23 죄에 빠졌고, 요한복음 8:44 사단에게 소속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2. 구원의 길을 가르쳐 드려야 합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실존 속에 살아갈지라도 인간에는 신을 찾는 본능이 있습니다. 엄마 잃은 아이가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신을 찾는데 그 때 만나는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 가지 근본문제에 빠진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보이는 형상을 섬기는 것이 우상입니다. 문제가 크고 심각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우상에 빠지게 되는 우상을 섬기면 섬길수록 정신문제가 크게 찾아옵니다.
늘 마음의 고통과 근심, 불안, 염려가 끊이지 않습니다. 마음의 고통은 육신의 병과 육신에 관련된 모든 부분에 문제를 가져오게 됩니다. 결국은 죽어서 지옥에 가고 죽은 뒤에는 제사와 우상숭배라는 영적 유산을 후손에게 남겨 주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여기에서 빠져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빠져 나오는 길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이 왜 죄와 저주와 실패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하는 인간의 실존을 우리는 부모님들에게 정확하게 가르쳐 드려야 하겠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서 생겨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다시 만나기까지는 절대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사단은 아담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함으로 죄 없으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를 분리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① 인간을 장악하고 있는 사단의 권세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하였나니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
②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③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신 유일하신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이십니다. 가장 큰 효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만나고 영생을 얻도록 해 드리는 일입니다.

3. 장래의 소망의 드려야 합니다.
믿는 성도의 효의 개념은 불신자들과는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옵니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세상에서는 질서의 차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동일하게 섭니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육신적으로 잘 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 이전에, 그것 이상으로 내 부모가 영적인 문제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는 사실을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4:20)
우리는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다만 그 부모님에게 어떤 효도를 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육신적으로 부모님께 잘해 드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살다가 심판대 앞에 선다면 그것보다 큰 불효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효도는 하나님 앞에 그분들이 자녀된 신분으로, 구원받은 자의 신분으로 설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저희는 지금 시골에 집을 새로 짓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도 그 일이 기쁘지 않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아직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일평생 우상에 빠져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로 인하여 그분이 어떤 고통의 삶을 살아오셨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12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결혼해서는 26살의 젊은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분은 일평생 근심과 염려 속에 살아오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구원을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아버지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되는 일 외에 다른 어떤 일도 기쁜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일은 구원 이후의 일입니다.
사람이 어떤 집에 사는 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소유를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저희 아버지는 한껏 마음이 들떠 계십니다. 집을 새로 잘 짓고, 가재도구 새롭게 다 구입하고 동네 사람들 불러 잔치하는 것이 그분의 부푼 기대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서글퍼집니다.
그분에게 자랑할 게 잘 지은 집과 새로 구입하는 가재도구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해 얻는 기쁨이 과연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아이들이 장난감 가지고 며칠 잘 놓다가 팽개쳐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천국을 소망하지 못하는 인생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에 빠져 버리는가 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아버지의 생활하시는 모습을 떨어져 있으니까 자주는 뵈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서 뵈올 때는 유심히는 봅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저는 여러분 부모님들이 나이가 드시면 경로당 같은 데는 안 가시도록 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거기서 오가는 대화는 하나도 긍정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소망이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 연세가 그렇게 많은 연세가 아니니 경로당 같은 데는 가시지 않지만 거의 같은 또래의 연세 되시는 분들과 늘 모여서 하시는 일이 고작 고스톱입니다. 참 서글퍼집니다.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분들에게는 그 일이 전부입니다. 그것마저 없으면 아무런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는 어떻게 사람이 달라집니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행2:17-18)
하나님이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면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 했습니다. 노인은 인간적으로, 육신적으로 보면 장래 소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주의 성령이 함께 하면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어떤 꿈입니까 죽어도 좋은 꿈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 있는 꿈입니다. 천국에 대한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날이 속히 오기를 오히려 기다릴 수 있는 꿈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0-24)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 부모님들의 고백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저희 육신의 아버지에게 굉장한 불효 자식이 될 것을 각오하고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에게는 효자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게 목사의 본분이고 그게 궁극적으로는 아버지를 위한 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로 지은 집이 화려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가슴 아픕니다. 본질에서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 서 있는 저와 여러분이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때가 옵니다. 그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는 부모님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3:20-22)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흘러갑니다.(전1:5-7)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 참담하지 않도록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길을 정확하게 제시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원받은 자 속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 권세를 깨닫고 축복 속에 살아가시도록 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부모님에게 사실 날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남은 여생,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다가 소망 중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에서 서로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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