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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이 누린 그리스도 Ⅰ (창 27: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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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서로 어울려 의존하고 협조하며 함께 어울려 살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 인간관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상호 협조관계가 있습니다. 둘째는 절대 의존적 관계입니다.
친구 사이는 상호 협조적 관계입니다. 직장의 사장과 사원과의 관계, 학교의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도 상호 협조적 관계입니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 부부 사이도 사실은 절대 의존관계가 아닌 협조관계입니다. 그러면 어떤 관계가 절대 의존관계입니까 엄마와 어린 아기의 관계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입니다.
이 둘의 관계는 떨어지면 안 되는 관계입니다. 이 둘이 분리되었을 때 누가 더 문제입니까 후자입니다. 엄마와 아기가 헤어지면 엄마는 마음이 아프지만 아이는 고생 고생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목자와 양이 분리되면 목자는 가슴이 아플 뿐이지만 양은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포도나무에서 가지가 떨어져 나가면 말라죽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계를 통해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이가 하나님입니다. 어린 아기가 자기를 낳은 엄마를 잃어버리면 안 되듯이 인간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만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반드시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한다는 필연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존재요, 반드시 하나님과 함께 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특별한 신분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 하나님께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절대 의존적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한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권세를 다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축복 받은 존재로 인간은 지음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말을 듣고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범죄 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죄와 저주, 사단의 지배 가운데 매여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문제의 심각성은 대등한 관계에서의 분리가 아니라 절대 의존적 관계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아담 하와가 불순종하여 범죄함으로 죄의 결과인 영원한 심판에 이르는 것이 당연한 결과였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분리된 인간과 후손들을 위해 하나님 만나는 길과 방법을 준비하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할 그리스도가 창세기 3:15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가 와서 창세기 3:21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에서 구원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7:14에 그는 처녀를 통해 이 땅에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마태복음 1:21에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비밀을 하나님은 장자에게 숨겨 두셨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통해 요셉의 가정에 장자로 태어나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믿음의 혈통적 족보는 장자를 통해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계보는 육신적 혈통을 절대시 한 것은 아닙니다. 장자가 언약을 놓치거나 결격사유가 발생하면 곧바로 다음 사람으로 혈통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장자 속에 그리스도의 비밀을 숨겨 두셨지만 오히려 반대로 성경은 장자 아닌 사람이 언약의 혈통을 이어가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가장 먼저 아브라함이 장자가 아닙니다. 그에게 형 하란이 있었습니다. 이삭이 장자가 아닙니다. 그 위에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야곱이 장자가 아닙니다. 에서가 장자입니다. 유다가 장자가 아닙니다. 르우벤이 장자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장자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장자는 그 계보 가운데 언약 붙잡은 자가 장자입니다.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장자의 반열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고, 언약 붙잡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어려서부터 그리스도의 언약을 깨달은 사람
① 야곱은 어머니의 모태에서 나올 때에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야곱은 태중에서부터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악한 마귀는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하도록 아담과 하와를 부추켰습니다. 결국 그들은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에 넘어가 범죄하고야 말았습니다. 사단은 죄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을 분리시키고, 분리된 인간을 장악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 죄와 저주와 사망의 운명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여기서 빠져 나오는 것이 뭡니까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 누구에게 기름을 부었습니까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 하사 사단의 사망권세를 철폐하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구원의 피를 흘린 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어 오신 선지자입니다. 그분이 후일에 여인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시는데 그 구원의 비밀을 하나님은 장자에게 숨겨 두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태중에서부터 이 숨겨진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장자로 태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으나 에서에게 밀리자 절박감을 느끼며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발뒤꿈치를 잡은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온 사건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인간에게 가장 시급한 최우선의 과제는 구원의 문제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인생 최대의 과제라는 것입니다.
②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기어코 빼앗고야 말았습니다.(창25:23)
야곱은 비록 장자로 태어나지는 못했을지라도 장자가 될 것을 약속 받은 사람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25:23)
야곱은 호시탐탐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으로 장자의 기업을 얻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그것을 자기가 소유하기 전까지 야곱은 아직은 장자의 언약 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에서가 사냥에 실패하고 돌아온 그 때 형의 배고픈 허기를 인하여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얻게 됩니다. 장자의 명분, 그리스도의 비밀, 하나님의 구원, 이게 얼마나 큰 것인데 팥죽 한 그릇에 팔 수 있습니까 왜 팔았습니까 무엇 때문에 팔았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창25:34)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라 야곱이 제안했을 때 “내가 죽게 되었는데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했습니다. 그는 분명히 아침을 먹고 사냥을 나갔을 것입니다. 저녁까지 사냥을 했다 해도 결국 한끼 굶은 것입니다. 한끼 굶었다고 사람이 죽지 않습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판 것은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언약을 경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가치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도 신앙생활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상황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경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팥죽은 붉은 색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고 난 뒤에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 되었습니다. 붉다는 뜻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도 몸이 붉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붉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팥죽 한 그릇에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아 버릴 만큼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무가치한 인생이었습니다.

2.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이라는 제도를 만드셔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아버지에게 자녀를 축복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형 에서에게 축복하려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의 말대로 짐승을 잡아 별미를 만들기 위해 사냥하러 나갔습니다. 야곱이 태어날 때부터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리브가는 야곱을 설득하여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야곱이 축복 받은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 야곱은 가죽옷을 입고 나갔습니다.
에서는 온몸이 붉고 털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야곱은 매끈매끈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아버지에게 나아갔습니다.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창27:11-12)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는 장면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아버지에게 나아갔다가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털사람으로 변장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3:21에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해 입히셨습니다. 그래야 그들의 부끄러운 수치가 가리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조건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가죽옷을 입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냥 나가면 저주를 받고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② 야곱은 가죽옷의 향취 때문에 축복 받았습니다.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창27:26-27)
이삭이 들어보니 분명히 야곱의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냄새는 에서의 냄새입니다. 이삭은 그 냄새 때문에 축복 받았습니다. 어떤 축복입니까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27:28-29)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축복을 다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다 지배하고 정복할 수 있는 축복입니다. 이에 반하여 에서는 어떻습니까 사냥하고 돌아와보니 축복은 야곱이 이미 아버지를 속여 받아 버린 이후였습니다. 그는 방성대곡합니다. 야곱에 대하여 이를 갑니다. 장자권을 빼앗더니 이제는 축복권까지 가로챈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가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면 이때 하나님의 구원을 경홀히 여긴 죄를 회개했어야 할 것입니다. 통분히 여기며 애걸복걸하므로 아버지가 축복합니다. 어떤 축복입니까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 하였더라”(창27:39-40)
그러나 이게 무슨 축복입니까 여기서 뜬다는 말은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너는 땅의 기름진 축복에서 멀어지고, 이슬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축복도 상실할 것이다. 너는 밤낮으로 전쟁을 해야 할 것이며, 아무리 노력해도 네 아우만 못하여 그를 섬길 것이며, 네게 죽을 때까지 이 멍에를 벗지 못하리라.” 이 말입니다.
원래 이것이 누구 것이었습니까 야곱의 것이었습니다. 깨닫지 못하니까, 경홀히 여기니까 손에 쥐어 준 밥도 다 빼앗긴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 구원의 축복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경홀히 여기지 마세요. 빼앗기지 마세요. 깨달으시고 야곱과 같은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시기 바랍니다.

3. 야곱을 통해서 본 그리스도 언약의 소중성
사랑의 풍성함은 넘치는 주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은혜가 넘치기에 오히려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넘어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말과 마리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축복과 은혜의 소중함을 깨달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은 다말
야곱은 네 명의 아내를 통해 열두 명의 아들과 외동딸 디나를 두었습니다. 첫 번째 아내 레아를 통해서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여섯 아들을 낳았고, 디나라는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 르우벤은 열두 아들 중에 장자입니다. 그런데 르우벤도 장자의 권리를 놓친 사람입니다. 서모 빌하와 통간함으로 장자의 권리를 놓쳤습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둘째 아들인 시므온에게 권리가 넘어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디나가 세겜 족장에게 부끄러운 수치를 당하자 시므온과 레위가 그 족속으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한 연후에 쳐들어가 그들을 멸족을 시켜 버렸습니다. 물론 세겜 족속이 잘못을 행했지만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하여 시므온과 레위도 장자의 명분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넷째 아들 유다가 그리스도 구원의 혈통을 이어가게 됩니다. 유다에게는 엘, 오난, 셀라라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엘의 아내는 다말이었습니다.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이 그를 죽이셨습니다. 엘의 장자의 혈통은 오난에게 이어집니다. 이제 오난이 자기 형수 다말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은 장자 엘의 아들로 자라 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못 마땅했던 오난은 일부러 자식 낳는 일을 회피합니다. 이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 되어 그도 죽었습니다.
셋째 아들 아직 셀라는 어린 나이였기에 그가 장성할 때까지 다말은 친정에 가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여러 해를 기다려 셀라가 장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말과 짝을 지어 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주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다말은 창기로 변장하여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언약의 씨를 직접 받아 버립니다. 절대로 성적인 자기 욕정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언약의 혈통이 유다에게 이어지고 자식들에게 이어지는데 짝을 지어 주지 않으니까 시아버지의 씨를 직접 받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언약의 성취가 자신을 통과하여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비윤리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언약은 윤리, 도덕, 사회인식을 초월할 만큼 중요합니다. 다말이 행한 행동은 이 사실을 강하게 말해 줄뿐입니다.
②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를 받아들인 마리아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 이름을 임마누엘, 예수라 하라”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낳는 자손은 남자의 자손이며, 아담으로부터 이어지는 원죄를 물려받게 됩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은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 몸에 잉태되어 태어나게 됩니다. 죄 없는 그만이 인간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는 대속제물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오심의 비밀을 마리아는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언약의 성취를 바로 “마리아 너를 통해서 하겠다”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마리아의 이 순종과 결단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가를 우리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리아의 무죄함을 누가 믿어 주겠습니까 당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던 시대였습니다. 요한복음 8장 상황이 마리아의 입장이 될 수 있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순종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그 엄청난 역사가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섭리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③ 야곱이 붙잡은 그리스도
야곱을 향하여 우리는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 간교한 성품의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 있는 20년 장구한 동안 하나님만 바라보고 일했습니다.
“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38-40)
아시겠습니까 야곱은 본시부터 형이나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무도 속이지 못하는 성품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속입니다. 누구 때문에 그리스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그 구원의 엄청난 계획이 바로 나 자신을 통과하여 성취되기를 소망했기 때문에 속입니다. 야곱은 에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같은 날 한 뱃속에서 나왔고, 같이 자랐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과 축복권을 빼앗기고 방성대곡했습니다. 기회를 엿보아 야곱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걸 야곱이 예상 못했을 리 없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다가 잘못하면 복은커녕 저주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양심에는 도저히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걸 각오하고라도 야곱은 그리스도, 메시야의 비밀을 붙잡아야 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야곱과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를 붙잡은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야곱처럼 그리스도에 대하여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하겠습니다. 모든 걸 다 잃어도 그리스도를 잃으면 안 다른 사람에게 다 인정받아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안이 열리도록 기도하시고, 야곱같이 승리하는 생애를 열어 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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