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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해야 할 이유 (눅 15: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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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간에 어떤 교회를 방문해서 사모님과 대화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무남독녀 딸 아이 하나가 있는데 자식 기르기가 얼마나 어려운 모르겠다 하시면서 최근에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초등 학교 5학년인 아이가 어느 날 심술이 나서 아빠가 목사님인 것과 엄마가 사모님인 것이 너무너무 싫다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말하기에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우는 아이를 달래서 물으니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얼굴이 검고 조금 통통한 편입니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갔는데 남자 애들이 같은 방 여자 애들을 불러내서 선물을 주고 서로 사귀고 하는데 이 아이는 아무도 불러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었습니다. 자기를 까만 얼굴로 낳아준 엄마 아빠가 미웠습니다. 며칠 후에 학교에서 수영장을 가기로 했는데 이 아이는 벌써부터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고 합니다. 이 아이가 아이돌이라는 그룹이 있는데 목사님 딸로서 연예인 사진을 방에 붙여 놓을 수가 없습니다. 화가 난다고 마음대로 욕을 할 수도 없고, 남자 아이들은 자기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자기가 마음속으로나마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방에 붙여 놓을 수도 없고 이 모든 불만이 쌓여서 드디어 엄마 아빠에게 폭발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그 아이만의 문제는 아니겠구나. 우리 교회 여러분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장래 우리 아이들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아이들은 대단한 축복은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부모 밑에 태어나고 언약으로 자라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축복이 얼마나 큰지를 모르면 충분히 그런 생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건 나이가 많고 적고의 차이가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그렇게 내가 하나님 자녀 되었다는 사실이 어떤 이유로든 부담이 되고 싫어진 사람들이 있습니까 이게 나쁜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신앙의 회의입니다. 믿음 안에서 잘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성도들이 가운데 자꾸 이런 시험에 빠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시험에 빠지는 사람들이 갖는 불만은 신앙을 갖고 보니 마음대로 죄짓는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짓는 것은 결코 자유가 아닙니다. 성도는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조금 죄짓고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가 주는 유혹은 그렇게 쉽게 끝을 내주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생각할 때 결과를 크게 확대해 놓고 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와 버립니다.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술을 많이 마시고, 일평생 마셨을 때의 결과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럼 간단하게 결론이 나고 내가 어떤 길에 서야 할 것인가 분별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안에서 그런 신앙의 갈등들이 해결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아버지와 함께 사는 자의 축복을 깨달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① 신분-아들
아버지 집에 내가 살 때는 자녀된 신분으로 삽니다. 아버지 집에 종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든지 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자녀의 신분입니다. 아버지 앞에 자녀의 신분은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특별히 시집간 여자 분들은 그걸 실감하실 것입니다. 시댁에서는 시어른들이 아무리 잘해 줘도 뭔가 불편합니다. 그런데 친정 집에서는 내맘대로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보다 스스럼없는 관계가 어디 있습니까 부모만큼 내 걱정해 주고 나를 책임져 주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자녀된 신분은 얼마나 축복된 신분인지 모릅니다.
범죄하고 난 뒤에 아담은 자기의 잘못을 아내 탓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자식의 잘못을 부모는 자신들의 잘못인양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은 나의 잘잘못이 모두 하나님의 보호의 그늘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② 권세-아버지의 모든 것이 내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나는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신분과 권세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2. 아버지를 잃어버린 인생의 비참함을 깨달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① 먼 나라로 떠남(눅15:12-13)
어느 날 작은아들은 아버지에게 자기 소유의 분깃을 나눠 달라고 졸랐습니다. 누군가 와서 이 아들에게 바람을 집어넣었겠지요. 마귀는 에덴 동산을 찾아와 하나님의 자녀로 무한히 행복하기만 한 그들을 찾아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도록 종용했습니다.
② 허랑 방탕(13)-죄
아버지를 떠나는 것 자체가 아들에게는 큰 죄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아들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⑴ 그는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가급적이면 아버지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가면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⑵ 허랑 방탕했습니다.
자기가 주인된 인생은 허랑 방탕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스스로 자기가 하나님인양 착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특징은 허랑 방탕입니다.
⑶ 모든 소유를 다 허비합니다.
아들은 아버지 집을 떠날 때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떠났습니다. 결국 아들은 그 재산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허비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인생을 허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육신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육신이 있을 때만이 구원의 기회가 됩니다. 육신이 있을 때만 하늘에 상급을 쌓을 수 있습니다. 육신이 있을 때만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면 건강도, 물질도, 인생도 다 허비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낭비하는 것만을 허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곳에 사용하는 것까지를 통틀어서 말합니다.
③ 소속이 달라짐(눅15:15-16)
⑴ 신분 문제
⑵ 우상 문제
⑶ 정신 문제
⑷ 육신 문제
⑸ 내세 문제
⑹ 후손 문제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축복이 회복되었음을 깨달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① 깨달음(성령의 감동)
아들은 가장 비참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모든 사실들을 깨달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의 축복을 잠시나마 누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축복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처절하고 그 사실들을 깨달았습니다. 범죄 이전에는 에덴 동산에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대리권자로 살았는데 이제는 살기 위해 비지땀을 흘려야 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삶의 고통이 더하면 더할수록 그 깨달음은 더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아들은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⑴ 자기 신분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아들이었는데 집을 떠나자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의 종이 되었고, 쾌락의 종이 되었습니다. 영혼과 육신이 완전히 마귀에게 붙잡힌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⑵ 자기의 비참함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집에 있으면 품꾼도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떠나면 아들이었던 자도 돼지만도 못한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뱀 다음으로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취급합니다. 돼지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이 돼지를 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더 이상 비참해질 수 없을 만큼 처참한 사람이 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여자로 말하면 몸을 파는 거리의 여인처럼 타락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신분과 처지를 바로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깨달을 때 비로소 돌이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아들은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죄인의 심정으로 아버지의 사랑에 의지해서 돌아갑니다. 불신자가 돌아올 때 하나님 앞에 죄인의 심정, 주님 나를 받아 주옵소서 하는 마음 하나면 구원받습니다. 어떤 죄인이 와도 괜찮습니다.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어도 괜찮습니다. 아무리 추한 몰골로 와도 아버지는 물리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지은 죄 용서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 말하면 그렇게 쉬운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오히려 너무 쉬워서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조건을 자기 자신이 구비해서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 자신을 놓고 볼 때에 구원의 능력은 전무합니다. 우리는 영접함으로 쉽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구원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만날 수 없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되셨습니다. 죄 없는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습니다. 생명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피를 흘려야 인간이 죄를 용서받는데 그 의로운 피가 인간에게는 없어서 하나님이 자신이 육신을 입고 피를 흘려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사망의 권세를 깨뜨린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었고, 또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사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선지자,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친히 감당하신 제사장, 사단의 머리를 부활로 깨뜨리신 만 왕의 왕,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 저와 여러분의 구세주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비천한 신분과 참담한 형편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나는 하나님께 돌아가리라. 깨닫고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은 넓은 가슴으로 안아 주시고 맞아 주시는 것입니다.

4. 누림의 축복을 깨달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① 신분 회복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목욕을 시키고 제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상징합니다. 결혼식장에서 드레스를 입고 있으면 그는 신부입니다. 교회에서 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목사입니다. 이 아버지는 기쁨에 겨워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 버금가는 옷을 아들에게 입혔습니다. 누더기를 벗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힌 것은 이 사람의 신분이 종에서 아들로 바뀌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 다음으로 존귀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해서 아들이 되고, 제일 좋은 옷을 입은 게 아닙니다. 아버지를 떠나 온갖 나쁜 짓만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가장 비참한 몰골로 돌아왔습니다.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조롱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에 의지해서 돌아왔다는 단 한 가지 사실만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신분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는 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눈과 같이 씻겨졌습니다. 아버지가 용서하셨으니 죄책감에 매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름이 하늘 나라 생명록에 기록된 자입니다. 영적으로 가장 좋은 옷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전적인 은혜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② 권세 회복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의 손에 가락지를 끼웠습니다. 반지는 권세를 말합니다.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면서 바로는 그에게 인장 반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인장 반지는 지금으로 말하면 결재 도장과 같습니다. 모든 애굽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넘겨준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올 때 아들은 감히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고 품꾼의 하나로 써 주소서 했지만 그는 품꾼이 아닙니다. 당당한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집에 있는 모든 소유가 다 아들의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 있는 종들을 다 부릴 수 있습니다. 잘못하는 이들은 징계하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 집에 와서 종처럼 살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은혜, 용서받은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합니까 감사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는 어떤 권세가 있습니까 기도할 때마다 눈에 안 보이게 천사가 동원됩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여 악한 마귀를 결박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비록 육신은 이 땅에 살아도 영적인 신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요, 하늘 시민권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신 여러분들이여, 모든 사람 앞에서 당당하시기 바랍니다. 그 권세를 깨닫고 매일 매 사건마다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③ 사명
아버지는 아들의 더러운 신발을 벗기셨습니다. 좋은 옷에 그 귀한 가락지를 끼고 있는데 신발이 더러우면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제일 먼저 발에서 신을 벗기십니다. 둘째는 씻겨 주시고, 셋째는 다시 신발을 신겨 주십니다. 이 때 신는 신은 평안의 예비한 복음의 신발입니다. 복음의 신발은 평안합니다. 이제부터 이 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구원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는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께 돌아온 아들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아버지 집밖으로 나가려는 자들을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게 돌아온 아들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집을 나갔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다시 세상으로 나가려고 합니까 나가 봤자 인생을 허비하고 눈물을 삼킬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미 그 결론을 내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죄의 유혹을 받고 자꾸만 넘어집니다.
어렵고 힘들 때 죄의 유혹이 밀려올 때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험을 이길 힘을 다시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고난과 고통의 순간도 감사함으로 이기시기 바립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사람이 어떻게 삽니까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삽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만큼 우리에게서 나가는 것은 감사입니다. 우리에게 감사가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범사에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시험을 통해 더욱 크게 당신을 축복하실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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