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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주인인가?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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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엘리야, 예레미야, 세례 요한 아니면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번에는 제자들을 향하여 물으셨습니다. 모두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습니다. 주님을 좇아 지금까지 지내었지만 막상 물으시니까 달리 할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한참 후에야 시몬 베드로가 입을 열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는 세 가지로 자기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① 주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②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습니다.
③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실로 엄청난 고백이었습니다. 모두가 놀랐습니다. 제자들이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예수님도 놀랐습니다. 그 고백을 하고 있는 베드로 자신도 놀랐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고백을 자신이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고백이었으나 정확한 고백이었습니다. 신앙고백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인가가를 우리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그 분 앞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세 가지로 고백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내 삶의 중심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내가 누구로 인정하느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역사 이래로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따른다는 사실 이전에 그를 누구로 고백하느냐 하는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앞으로 3주간에 걸쳐 베드로의 세 가지 신앙고백을 살펴 보면서 우리가 드려야 하는 신앙의 고백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누가 주인인가 하는 제목으로 주 되신 예수님을 살펴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은 창조의 주인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3)
물건은 만든 사람이 주인입니다. 만물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아무도 내가 만들었다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몇몇 사람들이 저절로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고집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의 주님이십니다. 만물과 우리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결코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이라면 내 마음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하고, 만물이 우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머리 카락 하나로 희고 검게 할 수 없습니다.(마5:36) 그러나 주님은 어떻습니까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2:36)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라는 증거에서 만물이 주님 앞에 복종했습니다. 그 증거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① 자연이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했습니다.
㈎ 거센 풍랑을 향하여 명령하자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자 뿌리채 말라 버렸습니다.
② 귀신도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했습니다.
㈎ 거라사 광인을 찾아갔을 때 귀신이 이미 보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령했더니 일시에 빠져나와 돼지떼에게로 들어갔습니다.
㈏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명령하시자 귀신이 떠났습니다.
③ 병마도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했습니다.
㈎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쳤습니다.
㈏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의 병을 고쳤습니다.
㈐ 문둥병자를 고쳤습니다.
㈑ 소경 바디매오를 고쳤습니다.
㈒ 앉은뱅이, 중풍병자를 고쳤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마8:16)
④ 사망 권세도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했습니다.
㈎ 죽은 나사로를 살렸습니다.
㈏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셨습니다.
㈐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와 같은 초월적인 능력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만물의 창조주요 섭리자인 것을 알면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입장에서 모든 이치를 살피는 것입니다.

2. 구원자와 주인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이유는 기적을 통해 자신을 믿고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려고만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왕을 삼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알고 피하여 다른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없어진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사흘을 수소문하여 다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때 주님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
예수님은 당연히 우리의 왕과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왕은 그 분의 뜻과 목적와 내가 전적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는 의미로서의 왕입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알라딘 램프 속에 나오는 거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인에게는 주인의 어떤 요구도 다 들어줄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 거인은 능력은 대단히 많으나 우리의 종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그 엄청난 능력으로 주님이 우리의 종이 되어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시지 않을 때 토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우리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가지고 설명하면 쉽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자식의 종은 아닙니다. 모든 위험에서 막아주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보호자일 뿐입니다. 어느 부모도 종으로 자식을 대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어제 저희 아이들이 갑자기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강아지를 기를 만한 형편이 아니니까 나중에 이사를 가면 사주겠다고 하니까 강아지 안 사준다고 나쁜 아빠라는 것입니다. 저희 아이들이 어제 많이 혼났습니다. 강아지를 사주면 좋은 아빠가 되고 안 사주면 나쁜 아빠가 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신앙 생활도 그런 식이 아닙니까 내 소원을 들어주시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 우리들은 아닙니까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본래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와 저주와 사망 가운데 죽어가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므로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 이후의 삶은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원자로만 여길 뿐 주인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종의 요구대로 움직이는 종이 어디 있습니까 구원자 되신 예수님이 여러분에게는 얼마나 주인으로 자리하고 계십니까

3. 당신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사람은 누군가를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마다 자기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우상 뒤에 사단이 숨어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보좌에 예수님을 앉히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식 위에 군림하기를 원하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함께 있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그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① 마리아-주의 계집종이오니 그 뜻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② 나귀 주인-주께서 쓰시겠다 하자 두 말 없이 나귀를 보내었습니다.

만물은 다 주님의 명령에 복종했습니다. 오직 인간만 불순종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그럴 때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입니다. 내가 100%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만 있으면 주님도 나의 소원을 100% 들어주실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면 나의 모든 것은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나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내가 이기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원죄, 자범죄를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가인은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명령하십니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말은 네 죄를 네가 책임지라는 말씀입니다. 그 때 가인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면 죄와 저주와 사망의 문제를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면 주님의 뜻대로 사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 참석하는 하는 일이 고역이 아닙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나를 내가 가진 인격과 수준 이하로 평가할 때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자존심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됨을 우리로 인정받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심정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모든 명령을 믿고 듣고 순종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분의 모든 사역을 위하여 내가 움직일 때 예수님의 그 엄청난 능력은 나의 것이 됩니다. 그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잘못된 두 가지 경향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종으로 부리려는 태도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귀빈으로 모시려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편안히 모셔 놓고 내가 그분을 위해 무엇인가 해볼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태도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있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①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② 예수님은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③ 예수님은 우리 민족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④ 예수님은 세계 모든 사람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녀된 신분을 회복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방향입니다. 누가 우리로 자꾸 스스로의 주인 되게 합니까 누가 우리로 너는 네 인생의 하나님이 되라고 속삭입니까 자기 스스로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태도는 교만의 극치요, 철저하게 사단이 가져다 주는 생각입니다. 구원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십시다. 그 분과 함께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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