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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백성으로 알게 하옵소서 (왕상 18: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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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누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언제나 진리로 존재합니다. 다만 그 진리가 무시되고 인정되는 시대와 상황이 있을 뿐입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에 속한 사람들이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진리를 사수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왜곡되고 외면 당하는 시대일수록 그 사명은 더욱 절실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무시되고 어둠이 빛을 가리는 시대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의 능력을 증거해 보인 사람입니다. 본문 36,37절 말씀에 엘리야의 세 가지 기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37절에 ‘이 백성으로’ 하는 구절과 ‘알게 하옵소서’라는 말이 나옵니다. 복음은 전파될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백성으로’, ‘이 민족으로’, ‘이 세계 만민으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도록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엘리야가 드렸던 세 가지 기도의 제목은 우리는 가는 모든 현장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야 할 언약입니다.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으로 귀한 영적 생명과 능력을 얻는 축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여호와가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 하옵소서!
오늘 본문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하나님이 영광 받으셔야 할 온 땅에 우상이 세워지고 백성들의 마음마저 혼미해져 있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잔혹한 범죄와 우상숭배를 인하여 이스라엘 땅에는 삼 년 반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나 음성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가 정말 하나님일까 백성들의 마음의 약해져만 갔습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하나님인가 백성들의 마음의 상할 대로 상하고 혼미해져 있습니다. 이렇듯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엘리야는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임을 온 땅에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때 가장 위대한 신앙고백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왕상18:21-22)
엘리야의 심정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심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만 하나님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 떠난 인간으로 생명과 능력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천하 인간에게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예수 외에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이게 분명한 사실이라면 그 유일하신 이름을 힘써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인 것을 나타내시고 싶어하십니다. 그것이 사랑이요, 우리가 여호와가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는 것이 전도와 선교입니다. 온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자신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바로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 인생을 지으신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처음부터 죄인이 되었습니다.
인류는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쓸어버리셔야 할만큼 부패했습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로 다시 번성한 인류는 다시 하나님을 불신앙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시날 평지에 구름 위까지 높은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간의 불신앙과 관계없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이 땅에 보내시고 지금도 여호와가 하나님 되심을,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 되심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하나님이 직접 하시되 모세를 통하여 하셨습니다. 오늘날 그 증거의 방법은 하나님이 하시되 구원받은 우리를 통하여 하십니다.
우리가 그러면 어떻게 여호와가 하나님 되심을 증거해야 하겠습니까
① 인종적으로는 모든 족속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② 지역적으로는 온 천하와 땅 끝까지 전해야 합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③ 시간적으로 주님 재림하시는 때까지 전해야 합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다윗은 골리앗을 앞에서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선언하고 또 증거했습니다. 날마다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이며, 오직 예수만이 구원자이며, 오직 성령만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임을 확인하고 증거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내가 하나님의 종임을 알게 하옵소서!
어린 시절, 이웃 어른들이 너는 너의 엄마, 아빠 아들이 아니라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이의 기쁨, 엄마의 기쁨이 무엇이겠습니까 나의 엄마됨과 나의 아이임이 가슴 깊이 전해 올 때입니다.
저는 꼭 우리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간 어느 날, 많은 비가 쏟아져 집에 올 수 없을 때 제가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학교에 가고 싶습니다. 그 날에는 우산을 두 개를 가져가지 않고 하나만 갖고 갈 것입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 나는 아이를 등에 업고, 그 아이는 우산을 나에게 씌워 주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우산 밖으로는 많은 비가 쏟아지는데 그 좁은 우산 속에서 내가 아버지임을 그 아이가 확인하고, 그가 내 아이임을 내가 확인할 때 서로는 눈물겹도록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인간의 최대의 행복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내가 그의 자녀가 됨을 확인할 때입니다. 열왕기상 18:17에 아합 왕은 엘리야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자기가 하나님의 종됨을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미갈은 왕이 채신없이 바지가 내려오는 것도 모르고 춤추는 것이 못 마땅했지만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의 종이 되고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춤추었던 것입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정말 진실되게 주님을 만난 자들은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① 사도 바울이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1:1)
② 주의 형제 야고보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약1:1)
③ 주의 제자 베드로도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후1:1)
④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도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여러분, 왕이 되면 행복한 줄 압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나의 모든 것 드려 감사하고 헌신할 수 있는 올바른 주인을 만날 때 행복합니다. 종이 되어 주인에게 충성을 다할 때 행복합니다. 낮은 데 마음을 두고 종의 신분으로 내려설 때 행복합니다. 내가 낮아질수록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수록 나는 행복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낮음을 자랑했습니다. 오늘 본문 속의 엘리야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종임을 만백성에게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언행심사로써 하나님이 앞에 여러분이 종이 되었음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자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합니다. 참된 만족과 인생의 행복이 있습니다.

3.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고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는 우리의 가정과 모든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삶이 불신자들에게 어리석은 삶으로 오해받고,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는 신앙의 길을 가면서 그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하나님, 어리석어 보이고, 무모하게 보이는 이 길이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길임을 저들로 알게 하여 주옵소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함께 이 길을 가지 않아도 나는 이 길을 가겠습니다. 주님, 나와 함께 하여 주시고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좋은 일도 혼자만 당하면 외로울 수 있고 오히려 슬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 저미는 슬픔도 많은 사람과 함께 할 때는 오히려 행복일 수 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가장 힘든 길을 가면서 혼자 그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만일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좇으라 할 때에 단 한 사람도 엘리야의 편에 서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직 엘리야 한 사람만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왕상18:22)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자들이 아침부터 오정을 지나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부르짖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 때 다시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내게로 나아오라 말할 때에 백성들이 나아 왔습니다.
우리는 홀로 가든 함께 가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시하신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36절에 나타난 엘리야의 마지막 기도가 무엇입니까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엘리야는 아합 왕 앞에서 주의 일을 했습니다. 우상 숭배자 앞에서 주의 일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했습니다. 모두가 알아주기를 원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리야는 이상의 세 가지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850명의 우상 숭배자들 앞에서,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핍박하는 저 간사한 아합 앞에서 증거하기를 원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유일하신 그분만 의지하면 가능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 하나님이 나를 주님의 종임을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일임을 증거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날마다 모든 범사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쁘실까요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자녀로, 종으로 인정해 주시면 얼마나 기쁠까요 여호와가 우리로부터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셔야 할 오직 한 분 하나님으로 인정받으실 때 그분은 얼마나 기쁘실까요 우리는 신분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사역적인 면에서는 종입니다. 내가 주님의 도구가 되어 주님의 일을 해 드리면 주님은 우리의 일을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일을 해주시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깨닫고 감당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라고 인정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렇지 못할 때가 허다하게 많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을 때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파 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와 종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내가 힘써 충성하는 일이 주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남이 아니라 우리 자신 스스로가 얼마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살아왔는가를 한 번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밖에서 가해 오는 핍박이 아니라 모든 범사에 내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자부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힘써 왔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주님의 일이 나에게 주어질 때 그것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외면하지 않고 감당해 왔는가를 또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타인으로부터가 아니라 믿는 우리들로부터 먼저 무시를 당하지는 않았는가요 되돌아보면 저는 목사라는 축복된 신분의 사람임에도 여호와만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일에 충실치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주권성을 인정치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불신자, 하나님의 자녀 아닌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은 참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인 나로부터 무시당하셨을 때 그는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나는 실수와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남이 나를 목사로 인정치 않았을 때 가장 속이 상했지만 나 스스로 언행심사에서 목사이기를 포기했던 적도 적지 않았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기까지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의 소원이지만 때로는 주의 일을 하면서도 재물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목사의 본연의 임무인 말씀 연구와 기도 생활에도 심히 게을렀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엘리야는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세 가지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실천에 옮깁니다. 엘리야는 이 세 가지 일을 증명함에 있어 몇 가지 준비를 합니다.
①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무너진 단을 수축했습니다.
②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숫자대로 돌을 취하였습니다.
③ 제단 주위에 도랑을 팠습니다.
④ 제단에 네 통씩 세 번 열두 통의 물을 부었습니다.
우상 앞에 허물어진 여호와의 제단을 볼 때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그는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가슴 속에 주 하나님 여호와의 신앙이 되살아나기를 소원하며 열두 돌을 취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불사르기를 기도해야 하는데 그는 반대로 제단 주위에 도랑을 파고 열두 통의 물을 부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호와가 하나님임을 믿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종임을 하나님이 보고 인정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남이 보기에 어리석고 무모해 보이는 그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확신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들은 온종일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우상은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온몸을 자해하며 난리를 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엘리야의 비아냥이 그들의 비위를 거슬려 더욱 크게 소리쳐 바알과 아세라를 찾았지만 그들의 신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큰소리로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18:37-38)
하나님이 엘리야의 간구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까지도 핥았습니다. 이 때에 가서야 모두가 인정합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왕상18:39)
모든 백성이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외쳤습니다. 내가 세 가지 사실을 확신하고 증거할 때 모두가 사실임이 밝혀졌습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게 넘쳤습니다. 엘리야의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오늘 엘리야의 간구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엘리야가 받은 응답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이 응답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엘리야의 승리가 여러분의 승리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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