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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준비 되어야 할 가치 (창 48: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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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가치의 척도는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삼상16:7)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또한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자세도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 합니다.
(롬2: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롬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 에게서 니라
이 말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느냐 하면 우리의 신앙 생활의 가치를 거룩한 영적인 면에 가치 를 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믿음이 성숙한 성도는 영적이고 내세적인 면에 더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교회의 예배에 참여 할 때에 내면의 가치와 영적인 가치 그리고 래세에 대한 확신있는 가치를 두고 다니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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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스투버는 신앙에 있어서 성숙도를 구약의 성막에 비유하여 세 종류의 신앙 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①성막의 뜰만 밟고 다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오랜 동안 신앙 생활을 하지만 성전의 뜰만을 밟는 식의 구경꾼 정도의 저급한 수준의 신앙입니다.
②해당하는 신앙으로 영적 예배와 성령안에서 거하는 수준 급의 신앙 차원 입니다.
예배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교회의 여러 가지 훈련 프로그램에 참석 하기도 하는 신앙입니다.
③지성소에 해당하는 차원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차원입니다.
세상의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주님의 말씀과 기도와 찬송으로 날마다 깊은 영적인 교제를 유지하며 기쁨의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나의 신앙은 어떤 차원에 해당됩니까 또 여러분은 어떤 수준에 이르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 나타난 야곱과 요셉의 짤막한 이야기를 통하여 귀한 교훈을 얻기를 원합니다.

1.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는 요셉의 가치관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때가 되면 반드시 늙고 병이 들어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 유한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물론 오래 살 수는 있지요 그러나 늙지 않고 죽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 야곱도 마찬 가지 였습니다.
야곱이 어떤 사람 이였느냐 하면
욕심이 많고, 흠이 많은 사람 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일생 변함없이 인정하고 믿음으로 살아 온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말년에 (130세) 이집트에 내려가서 17년 동안은 이집트의 국무총리였던 아들 요셉의 덕분에 편안한 삶을 살았지만 그도 때가 되니 늙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생의 가는 길입니다.
(전3:1)‘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전3:2)‘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라는 말씀이 있듯이 말 입니다.
야곱이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의 실권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그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땅위에서 다 소유할 수 있는 권세가 있었음에도 그것으로 만족하나 거기에 희망을 두고 살지 아니하고 항상 그 보다 더 가치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며 살아간 사람입니다.
요셉은 부친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단순히 효도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사랑하는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도 함께 데리고 갔는데 그 것은 그의 부친 야곱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축복의 기도를 받게 하기 위해서였습니 다.
흔히 축복이라고 하면 그것이 세상의 명예와 부귀와 권세 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일 요셉이 하나님의 축복을 그 정도로 생각 하였다면 그것은 야곱 보다 요셉이 더 많은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구태어 자기 자식들을 위한 기도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그의 부친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아들들에게 부여 받고자 하는 받고자 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왜 두 아들에게 할아버지로부터 축복의 안수 기도를 받도록 하였습니까
요셉은 바로 기도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축복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야곱이 두 손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가시적으로는 어떤 현상이 임하거나 나타났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야곱이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서 두 손을 들어 손자들의 머리위에 손을 얹고 안수 기도하는 정도의 단순한 것이지만 바로 그 기도 속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부친 야곱에게 축복의 줄기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무엇이라는 사실을 바로 아는 자만이 하나님께 그 복을 사모하고 구하게 되며 또한 그것을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지만 그 복의 진수가 무엇 인지를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복에 대해서 관심이나 사모함이 없으며 또한 받고서도 좋은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축복의 가치를 바로 아는 사람은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는 말씀처럼 그동안 자신이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았던 것을 미련없이 다 팔아서 그것을 사는 가치관의 전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왕자의 위치에서 부귀 권세를 다 누리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는 대신
하나님으로 부터오는 래세의 상급을 더욱 소중히 여겼습니다.
(히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가치와 세상 가치와 비교할때 1)무신론자들은 영적인 것 보다 세상의 것에 더욱 비중을 둡니다.
2)또한 소극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가치를 세상의 가치 중에 하나로 보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소극적이며 때로는 세상의 것들 때문에 신앙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하거나 배교 합니다.
3)그러나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에다 삶의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하게되며 때때로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 하면서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이 바로 이러한 사람 이었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주는데 앞장을 선 모세가 그런 사람 이었습니다. 또 신약에 와서는 기독교를 대적하던 핍박자 사울이 그것을 다 포기하고 기 독교로 개종하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바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요
(빌3: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2.축복을 비는 야곱의 자세
야곱은 나이가 147세로 기력이 매우 쇠하여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절망적인 상태 였지만 요셉이 두 아들에게 축복을 구할 때에 자신은 아무것도 그 아이들에게 줄 것이 없었음에 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축복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1)육안이 아닌 영안으로
여기서 야곱은 자신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된 섭리를 영안으로 밝히 알고 축복의 전달자의 사명을 다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창48:14)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창48:18) 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창48:19)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자기의 이름이 아닌 하나님에게 호소함
사람의 것은 유한하며 일시적인 것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축복은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비는 축복의 기도였습니다.
(창48: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창48: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3)지속적인 복으로 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거쳐 흘러 온 하나님의 은총의 물줄기의 방향을 자손 만대에 지속적으로 임하기를 비는 기도 입니다.
야곱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불안이나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창48: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라고 한 것처럼 자신은 죽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자손들을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4)죽음이 오기전 살아있는 동안에 비는 축복
기독교의 축복은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께 구하는 것으로 죽은 조상들에게 제사 드려 자손들이 잘되게 하는 조상 숭배가 아닙니다. 비록 늙고 병들어 죽음 직전에 있을 지라도 죽음이 오기 전에 마음껏 자손을 위해 하나님의 축복을 비는 기도에 하나님의 축복은 임하는 것입니다.
(창48: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여 위로하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생의 위기는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 범죄한 아담의 자손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세상은 천국이 아니며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육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때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여 질고나 실패와 같은 고난을 맞게 될 때가 있지만 문제는 그 위기의 때를 어떤 자세로 맞이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육신적으로 보면 옛날의 귀족보다 더 안락한 생활을 누리지만 정신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병을 가지고 씨름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마음의 고통, 정신적인 병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처방은 오직 하나 기도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도 새벽기도의 사람 이었습니다.
존 웨슬레도 새벽기도의 거장 이었습니다.
새벽기도 덕분에 88세까지 건강하게 살면서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큰일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 하십니다(마21:22 막11:24).
만약 주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한다면 주님으로부터 그 어떤 것도 받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약1:5-8).
그러나 믿고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새벽은 구약 시대부터 주목을받 던 시간으로 보통 오전3-6사이의 시간을 말하는데 새날의 시작과 함께 하나님을 먼저 찾는 경건한 삶의 자세를 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새벽은 신성한 시간이요 새역사의 시간이요 하나님께 바쳐져야 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57: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119:147)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시119:148)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결 론
여러분의 삶의 가치를 늘 영적인 것에 두시기 바랍니다.
늘 하나님을 섬기는것에 우선 두시기 바랍니다.
내면적인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두시기 바랍니다.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늘 하나님의 복을 빌고 기도 하는데 삶의 가치의 비중을 두시기 바랍니다.
미국 풀러 신학대학교 교수인 ‘피터 와그너’ 박사는 말하기를 "악의 우두머리인 사탄이 귀신이나 귀신의 집단들을 세계곳곳에 지역별로 배치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악한 일을 행하도록 한다"는 발표를 한적이 있습니다 귀신들이 각 지역을 맡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영과 육,혼을 오염시킴으로써 살인 강도 전쟁 폭행 강간등 범죄와 재난을 발생케 한다는 것이다.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와그너 박사는 한 지역의 기독인이 뜨겁게 기도한 결과 큰 회심 운동이 일어나 귀신들이 쫓겨나고 그 지역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온 놀라운 사례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 하며 깨어 있으라"
(눅21:36).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우리의 기도를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실되게 기도하기를 원하시고 정말로 우리의 심중에 있는 말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시145:18)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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