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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기쁨을 너희 안에 주리라 (요 1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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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크리투스’라는 사람은 "기쁨이 없는 인생은 쉴곳이 없는 기나긴 여행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부륵스’ 라는 분은’ "사람을 병자처럼 보이게 하는 종교는 세상를 치료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기독교는 기쁨과 희락(喜樂) 희열(喜悅)의 종교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의 생활을 약속 하셨고 또 그렇게 살라고 분부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은 이렇게 말 했습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기쁨은 믿는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의 중요한 한 부분 입니다.
(갈5:22-23)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기쁨이란 말 에는 어떤 뜻이 들어 있습니까1)히브리어
하페쯔-(상징적으로) 좋게 여기다, 갈망하다, 기뻐하다, 즐겨하다, 원하다, 좋아하다, 동하다,
마음에 들다, 즐거워하다, 가까이 원하다.
헤페쯔-기쁨, 소원, `가치 있는 것', `심사' 받을만한, 반김, 소원하는 것, 사건, 기쁨.
2)헬라어
카이로-기본동사 `유쾌하게 되다' 즉 은은히 `행복하다', 유복하다, 인사하다, 환영하다, 축하하다
카라-유쾌함, 즉 은은한 `기쁨'

오늘 본문의 11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기쁘게 사는 사람은 진실로 행복한 사람 입니다.
(요14:27)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속에 있는 물질이나 명예 그리고 출세나 권세가 참 기쁨을 주지는 못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건너간 우리나라의 교포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서 천신만고의 노력킅에 물질적인 풍요를 얻었고 잘 발달된 현대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는 있지만 왠지 마음 한 구석에 별로 만족이 없고 기쁨을 얻지를 못해서 오히려 고국의 향수 속에 마음과 정신적 갈등을 겪고있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문명의 발달이 우리의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가르침 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근본적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세계적인 기업을 이루었던 코닥(KODAK)사의 사장은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 놓고도 마침내 우울증에 빠져서 자살하고 말았답니다. 왜 그랬을 까요 그것은 참 행복과 기쁨 그리고 자기를 지켜줄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무신론주의 철학자이며 시인인 니체(Friedrick Willhelm Nietzsche)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적 배경속에서 성장 했는데 무신론 주의자로 전락을 해 버리고 말았답니다. 그 이유가 무였느냐 하면 니체 왈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그리스도인들 에게서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비판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기독교를 떠났습니다만 40세를 넘기지 못하고 정신병자가 되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장 지성적인 사람인 것 같았지만 믿음과 기쁨의 뿌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끝을 맺고 말았던 것 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특별한 기쁨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사랑을 나누어 주므로 얻는 기쁨입니다.
주님께서는 (요15:1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하셨습니다.
바울선생은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시면서 그 이유를 예수님의 기쁨이 충만하기 위하여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받는 기쁨은 짧고 주는 기쁨은 깁니다.
고로 늘 기쁘게 사는 사람은 주는 기쁨을 가진 사람 입니다.
서로 사랑 할 때에 주님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내가 먼저 주는데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하면 주님의 기쁨이 그 안에 충만하게 되는 것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로 그런 모습이 보여 질 적에 복음의 전도가 되고 주님에게 영광이 나타나는 것 입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여행자가 마침 주일이 되어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 순경에게 은혜로운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순경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여행자가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순경에게 "왜 가까운 교회도 있는데, 저렇게 먼 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순경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 보다도 저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아직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우리 교인들의 얼굴 표정과 생활이 얼마나 중요 한가를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슬픔이 있고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까
왜 걱정 하십니까
근심이 왜 옵니까/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은행에 많은 돈을 예금해 놓고도 자신은 겨우 생활비만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하루의 일과는 은행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내 돈이 그냥 있나 얼마나 남아있지" 하며 확인해 보고는 만족하며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 사람의 기쁨의 대상은 돈 이었습니다. 바로 돈이 그에게는 삶의 힘의 원천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돈은 그에게 영원한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누가 몰래 빼 가지는 않을까 혹시 은행원이 실수 해서 없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과 걱정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다운 기쁨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지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환경과 물질의 지배를 받지 않는 기쁨이요, 언제 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기쁨이요, 영원한 기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 더욱 가까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수고하고 근심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2.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10절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기쁨이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에 복종 하셨습니다.
(빌2:8)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순종이라는 것은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아래 두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은 불순종 하면서 제사를 드리는 것 보다 낫습니다.
(삼상15:22)“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욥은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치 아니하였음이니라"(욥 6:10-11)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계명에 순종한 후에는 어떠한 일에도 기쁨의 일들이 따라옵니다.
영혼을 사랑 하라는 주님의 말씀에는 어떤 뜻이 들어 있습니까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무엇 입니까
복음을 즉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랑을 이웃 사람에게 전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한다 할 지라도 꺽이지 말아야 합니다.

구세군 창시자 윌리암 뿌드는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봉사하기 위함이요 전도하기 위하여 구원 받았다고 했습니다.
바로 영혼구원 운동이야 말로 주님의 계명에 순종 하는 것이요 이웃 사랑의 실천인 것 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전도 하다가 완악한 유대인들에게 의해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그때 스데반은 온몸이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5,56)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영원한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분부에 순종하기 위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 순교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 보면 전도하는 것을 기뻐 하셨습니다.
(마18: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마18: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눅10:17)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눅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3.구원의 감격과 성령의 충만한 자에게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로마서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성령이 충만한 자의 기쁨은 환경에 지배되지 않습니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어떤 집사님의 이야기 입니다.
이 집사님은 남편하고 사별을 한 후에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주면서 돈 벌이를 하며,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어렵게 살아가는 분 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인데도 매일 기쁨과 은혜로 살아가는데 그 분을 보면 곧 감동이 될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년에 수십명씩 그 집사님에게 감동되어 교회롤 오는 분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같은 환경에서 그렇게 기쁨과 감사로 살 수 있느냐고 감동하여 교회로 인도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녀에게서 나타난 기쁨은 물질로 채워지는 기쁨도 아니며,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그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쁨과 찬송으로 살아가며 뭇 영혼들을 하나님에게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이 주는 능력이요, 성령이 주는 기쁨입니다.
슈바이쳐 박사는 일생동안 기독교적 정신으로 아프리카에서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기쁨으로 돌 보았던 분 입니다. 그런데 그는 당대의 크리스찬들의 모습을 이렇게 비유 하였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는 물없는 강이 많다. 모래 언덕 사이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만큼 초라하고 비참하다. 오늘날 크리스찬들도 이 아프리카의 물없는 강처럼 억지로 흘러가는 신앙생활, 메마른 정신, 형식과 전통만 겨우 유지하는 교회와 교인들을 많이 본다." 라고 개탄을 했다고 합니다.
심령이 가물어 매말라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아픔의 호소 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뭐라고 했습니까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의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로다"(합 3:17-18)고 하였습니다.
이느 어떤 환경에 구애를 받지 않는 뜨거운 신앙적 기쁨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 하여짐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후로는 자신의 육체적인 약함을 도리어 크게 기뻐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사도 바울 안에 머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5:41에 보면 사도들이 핍박을 받을 때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 하였다고 했습니다.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기쁨이 그들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쁨은 그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됩니다 (요 16:20-22).
(요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요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요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어떤 부자집 노인이 말을 타고 행차하다가 앞길에서 다리를 절둑 거리는 거지와 같이 보이는 사람이 기뻐 춤을 추는 것을 보고는 여보시요! 나는 돈이 많아도 춤을 출일이 없는데 당신은 도대체 무엇이 기뻐서 그렇게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가 그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 거지는 대답하기를 "나는 기뻐서 춤을 추는 이유가 세가지 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나를 만물 중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지어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기쁘지 않을 수 없고요,
둘째, 나는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 불구자이나 이 세상에는 나보다 더 불구자가 많고요
셋째, 세상에서는 날 부러워할 사람이 없을 것이나 나는 죽으면 하나님 품안에 있을 것을 생각해서 너무기뻐 춤을 춥니다." 하였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렇게 기뻐뛰며 춤을추는 주님의 은혜가 있으시길 축원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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