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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러므로 이제부터 (엡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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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장을 읽어 내려가다보면 "그때에"라는 말과 "이제는"이라 는 말이 반복되어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에"라는 말은 2 절, 11절, 12절에 나오며, 3절에 나오는 "전에는"라는 말은 "그때에" 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13절에 나오는 "이제는"이라는 말은 19절에 나오는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이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때에" 와"이제는"의 상태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은 "기억하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사람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자꾸 잊어 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것은 기억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기분을 상하게 하면 두고보자고 하면서 잊지 않고 기억을 합니다.그러나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다른 사 람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생각하라고 하면서 두 상태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때에"라는 상태는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상태이고 "이제는"이라는 상태는 주님을 믿은 이후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과 이후로 역사가 나누어집니다.인류의 역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생 애도 예수님을 믿기 이전과 믿고 난 이후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문 제는 우리들의 생활에 차이가 별고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을 믿기 전이나 믿은 후에나 나아지는 것 없이 똑같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삶에 변화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 예수 님을 믿었을 때의 기쁨이나 뜨거움과 같은 감격이 지속되지 못하고 예 수님을 믿기 이전과 별고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 문은 우리들에게 "생각하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기 이전과 믿고 난 이후의 생활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을 강조하 고 있습니다.

 1. 예수 믿기 이전의 상태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 라"(엡2:11).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들의 과거 신분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이 라는 말은 외인이라는 말로 한 가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 내가 너 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이 주겠다.너로 하 여금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약속 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만 유효한 축복이지 이방인들에게는 관 계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방인인 우리들과는 하나님의 약속의 축 복이 관계 없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때에 우리들은 무할례당이란 칭함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무 할례당이란 이방인들의 별명이었습니다. 할례란 오늘날의 세례와 같은 것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표시입니다.

 "그때에 너희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에 사람이 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2).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리스도밖에 있는 사람과 안에 있는 사람이 나뉘어집니다. 또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는 것은 택함받 은 선민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 다. 우리들은 바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들도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 나님도 없는 자"였습니다. 이는 과거에는 우리들에게 소망이 없었따는 것입니다. 혹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배운 것이 많으니 앞날이 순 탄할 것이다. 자녀들 교육도 잘 시켜놓았고 사업이 잘 되어 돈도 벌 만큼 벌어놓았으니 걱정할 것 없다."라며 희망에 부풀어 있을수 있습 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돈이 많고 지식 이 많고 권력이 많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 나님이 없는 지옥의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 는 다른 사람들의 상태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비참한 과거의 상태였 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비참하고 불행했던 과거를 "생각하라"는 말 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그런 불행했던 상태에 있던 우리들을 하 나님께서 사랑해주셔서 구원해주시고 축복해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예수 믿은 후의 상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 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3).

 세상에서 제일 먼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웃 사촌이라는 말도 있듯이 거리상으로 이웃에 살면 가깝고 외국에 살면 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 나 그것도 일리가 있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에 그렇지 않습니다. 지리 적인 거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화평이 되셔서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와 제일 가까운 곳은 북한입니다. 북한에 부모님과 친척을 두고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휴전선이라는 높은 담이 있어 서로 왕래를 하지 못하고 한번 가려면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 가 야 합니다. 중간에 막힌 담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 들이 북한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제일 멀리 있는 사람들입 니다. 중간에 막힌 담은 비단 우리 나라와 북한과의 관계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종족의 담, 관습의 담, 그밖에도 여러 가지 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 아 그 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 성소의 휘장이 둘러 찢어졌습 니다. 성소에 있는 휘장은 수달가죽과 염소가죽과 세마포로 만들어져 서 세 마라의 소가 이쪽과 저쪽에서 잡아당겨도 찢어지지 않는 아주 질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휘장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다 이루어졌다" 라고 하는 순간에 찢어졌던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아무나 지성소에 감히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단 일년에 한번 속죄의 날에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후에는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죄로 인해 중간에 막힌 담을 헐어버리셨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들이 하 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남북의 담이 하루속히 무너져 모란봉에 수 양관을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지금은 남북이 휴전선 때문에 갈라져 있지만 우리 세대에 하나가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를 위하여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로 인한 화목 예수님이 피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나 의 이웃 사이에,그리고 나와 나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전 에는 인격이 분열되어 있었으나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한 권속이 되었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6).

 십자가는 더하기 표시입니다. 이 십자가는 하나님과 나를, 나와 이웃 을, 나와 나를 더해줍니다. 죄악의 담 때문에 분리되었으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웃 과 나는 한몸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한 분 하나님, 한분 예수님, 한분 성령님을 믿으니 자연히 가까워진 것입니다.

 우리들의 몸을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몸 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4.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 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9).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한 권속이 된 것입니 다. 또한 우리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이 며" 우리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습니다 (엡2:20). 집을 지을 때 제일 중요한 주춧돌이 건물의 한 귀퉁이에 있 는데,이것을 모퉁이돌이라고 합니다. 이 모통이돌의 크기에 따라서 쓰 이는 돌들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모퉁이돌은 표준입니다. 우리 드에게 있어서 모퉁이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퉁이돌이시고, 선지자나 사도나 우리들은 성전의 벽돌과 같은 존재 들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 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2).

 과거에는 우리들 안에 사탄이 거하였습니다.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 서 거하실 성전이 되기 위하여 성령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성령 안에 서 산다는말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산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가 되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비참했던 과거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기 위하여 날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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