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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반복된 실수와 하나님의 도우심 (창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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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는 말

아무리 큰소리치는 사람이라도 실수하게 마련이고,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실상 인간이란 유한한 피조물이므로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교만해서도 안 되고, 그 반면에 자신의 실수나 실패 때문에 자학하거나 자괴지심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한 번 걸려 넘어진 돌에 두 번 다시 넘어지지 않도록 유념해야 합니다.

한 번 걸려 넘어진 돌에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이와 같이어리석은 사람들 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격분을 잘하는 바람에 낭패를당한 사람은 번 번히 그 격분 때문에 점점 더 큰 낭패를 당합니다. 잘난 척하는 바람에 망신당한 사람은 번번히 그 잘난 척 때문에 망신을 당하곤합니다. 그러 나, 지혜로운 사람은 남이 걸려 넘어진 돌을 보고, 그 돌을 피하든지 뛰어넘어 버립니다.

 2. 아브라함의 실수

아브라함은 오랫동안 살던 마므레를 떠나 그랄에 거주하면서 자기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해 오던 아브라함은, 이제 새로운 환경과 주변 정세에 관심을 빼앗기게 되면서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자기만이라도 살아야 되겠다는 비열한 생각 때문에, 낯선 이방인들에게 아내를 가리켜 누이라고 한 것입니다. 일단 믿음의 생각 대신에 자기 위주의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까, 지금까지 없어서는 안 될 사랑스러운 반려자가 가장 큰 위기의 조건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면 나머지 단추도 다 잘못 끼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자기 본위의 생각은 계속해서 잘못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아주 논리적인 사고요 합리적인 생각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브라함에게는 위기도 없었고, 아내 사라가 변심한 것도 아닙니다. 또, 이방인들이 아내 사라를 빼앗아 가겠다고 무기를 들고 쳐들어 온 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해 지레 겁을 먹은 것과 자기만 살아야 되겠다는 비열하고도 이기적인 생각이 심각한 불행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생각했어야만 하였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의 누이라는 말을 들은 그랄 왕은, 아무 거리낌없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가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빼앗긴 아내를 생각하나, 일껏 머리를 쓴 자신을 생각하나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자기만의 안전과 이익을 위한 생각이란 남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번민과 자기 모멸감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아브라함의 이런 실수와 그것으로 말미암은 고통은 두 번째입니다. 창세기 12:10 이하에 보면, 기근을 만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대신에, 애굽을 의지하고자 거기에 들어가면서 아내 사라에게는 누이라고 하라. 라고 시켰습니다. 결국 아내를 애굽 왕에게 빼앗겼다가 아슬아슬한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되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같은 돌에 두 번이나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돌은 자신만의 안전을 위한 거짓된 행동이었습니다. 즉, 믿음의 생각과 행동이 아니라, 이기적 생각과 행동이었습니다.

근래에 우리 나라에 대형 사고가 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끔찍한 사고가 하늘과 땅, 강과 바다, 그리고 땅 속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습니다. 그것도 천재가 아닌 인재였다는 데에 더욱 애도와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든 대형 사고는 대충주의와 황금만능주의, 인명 경시 풍조와 무책임이라는 같은 돌에 번번히 넘어진 것입니다.

 3. 변함없이 도우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두 번씩이나 같은 돌에 넘어지는 잘못을 범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몹시 참담해하는 아브라함을 즉시 돕지 않으셨습니다. 처절한 고통을 통해서 불신앙적 생각과 비열한 이기적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심통이 극에 달한 밤에,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데려간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그러자 아직 사라를 가까이 하지 않은 아비멜렉은,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아비멜렉은 자신의 순수한 동기와 무죄함을 변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남에게 죄 된 감정과 죄 된 유혹에 빠지게 한 책임이 있습니다. 남에게 죄와 타락의 동기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노와 절망과 불신의 동기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증오와 살인의 동기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항상 남에게 기쁨과 소망의 동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3:17에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의 변명을 들은 하나님께서는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중 은혜는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죄를 막아 주시는 은혜 또한 그에 못지 않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죄인들로 온갖 죄를 저지르도록 내버려두시지만, 그러나 의인들의 범죄는 반드시 막아 주십니다.

아비멜렉의 범죄를 막아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 선지자인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가 너를 위해 기도할텐데,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만일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에 보면, 혼비백산한 아비멜렉은 아침 일찍 일어나 모든 신하를 불러 자초지종을 털어놓았고, 모든 신하들이 두려워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인 아브라함의 실수에도 불구하시고, 그를 깨닫게 한 뒤에 도와주시고, 여전히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주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4. 맺음말

아브라함처럼 신앙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도 실수할 때가 있고,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실상 인간이란 유한한 피조물이므로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교만해서도 안 되고, 그 반면에 자신의 실수나 실패 때문에 자학하거나 자괴지심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한 번 걸려 넘어진 돌에 두 번 다시 넘어지지 않도록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설령 반복해서 넘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일으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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