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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손들어 주실 때까지 (사 50:4-9, 빌 0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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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사리분별이 정확해서, 조금이라도 틀린 부분이 있으면 꼭 짚고 넘어가는 분이, 자기 자신의 문제나 가족의 일, 아니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관계에 있는 사람이 문제를 일으킬 때에는 아주 너그럽게 넘어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찬 기운이 돌 정도로 냉정하던 사람도 자기와 무슨 관련이 있 으면, 그가 아무리 엉터리 같은 주장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도 쉽게 용서하고 이해합니다.

신문마다 사설이나 칼럼으로 얼마나 그럴 듯한 말로 주장을 하고, 세상일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언론 스스로가 고쳐 할 점이나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습니다. 특히 정치인을 향하여 정직해 야 한다고 그토록 질타를 하면서도, 정작 신문 스스로는 신문 발행 부수를 속이 고 있습니다.

고난주일인 오늘의 말씀은, 우리 자신의 마음 자세를 잘 비춰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빌라도와 헤롯 왕, 그리고 군중들과 종교지도자들 이 취한 태도를 통해서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정직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과는 말하기조차 싫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상대에게서 잘못된 점이 드러나면 가차없이 공 격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겉에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점까지 깊이 파헤쳐서 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자신의 이해문제(利害問題)에 걸리게 되 면, 그 날카롭던 비판력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슬그머니 불의와 타협을 하 고 맙니다.

빌라도나 헤롯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확실하게 '예수는 죄가 없다'라고 선언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군 중들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군중들이 '예수는 로마정부를 반 대한다'고 하면서 고발을 하고 있는데, 예수를 감싸고 돌 경우 자기들의 지위 가 위태롭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에 대한 심판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빌라도나 헤롯은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라고 하는 한 생명보다 자기들의 지위나 신분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양심을 속 이는 행위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해롭게 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끝내는 멸 망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군중들은 또 어떻습니까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하면서 예수를 임금으로 영접했던 그들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마음이 변해 서 "예수를 죽여라!"고 외쳐대고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하고 마중을 나 왔던 사람이 날도 새기도 전에 "당장 나가라"고 내쫓는 격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뻔한 일입니다. 그 당시 상당한 권력을 틀어쥐고 있던 제사 장들이 조종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양심상 예수는 분명히 훌륭한 선생님 인 것을 알면서도, 먹고살자니 제사장들이나 율법학자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양심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들의 입과 손 은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주먹질을 하며 외쳤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인간이 양심을 지키며 정직하게 산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깨닫게 됩니다. 신앙 양심의 지시를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이해득실 을 고려하면서 현실 상황에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에, 정 직이나 양심은 휴지통에 집어던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 문에 나오는 빌라도는 헤롯왕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는 정직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끝내 악의 세력에 굴복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는 십자가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전 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할 우리가 거짓되어서, 지금도 진실을 십자가에 계속 못박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있다고 뒤집어씌움으로 말미암아, 죄인 아닌 죄인으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세 상 권력이나 재물의 힘을 가지고 그렇게 합니다. 군중들은 세상 권력이 무섭고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 저항 없이 불의의 세력과 한편이 되어 진실을 잡아죽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여겨집니다. 세상을 떠날 생각이라면 몰라도,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지 않느냐고 변명할 수 도 있는 일입니다. 어제 자유당이 최고라고 했다가, 오늘은 공화당이 최고라고 말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뭇 욕을 바가지로 퍼붓던 당(黨)에 오늘은 얼굴 에 웃음을 가득히 한 채 입당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신이 능숙한 처세술인 양 떠들어대기도 합니다. 그렇게 못하는 것이 등신이요, 세상을 잘못 사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정직이나 진실은 어디까지나 인사치레에 불과한 것이지, 실질적 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융통성과 적당한 타협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밖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진리를 찾아서, 그 진리를 따라 살겠노라고 교회에 들어와 사는 분들까지도 이런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오늘 이 시간 다시 한 번 확인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진실입니다. 진리가 되시는 하나 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라고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서도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이 진리이신 것을 믿는다면, 진실을 외면하게 될 경우 이 세상에 존 재할 수 없는 우리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진실을 부정하게 되면 마치 자기 부모를 부정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근본을 부인하게 되기 때문입니 다.

아주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가 진실을 감추고 거짓되이 행함으로 진리이신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양심에 못을 박는 행 위가 되는 것입니다. 곧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결과가 된다는 말입니다.

결국 오늘 우리가, 거짓을 물리치고 진리가 되는 말씀을 따르자고 하는 것 은, 이 세상에서만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영원 히 살아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의 기업이 오래도록 번영하기 위해서는, 잠시 그 기업이 손해를 보더라 도 소비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성실하게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당장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소비자를 속이게 된다면, 그 기업은 얼마 가지 못해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띠고 태어난 우리 인간이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뻔한 이치 아닙니 까 불의와 거짓을 버리고, 진리 말씀 따라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말씀보다는 세상 권력이나 재물을 더 의지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따름으로써 영존 하려 하지 않고, 권력이나 재물을 의지함으로써 이 세상만을 살아가려 한다는 말입니다.

빌라도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예수를 죽였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2절 말씀에서 빌라도는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단 말이요 나는 그를 사형시킬 만한 죄를 찾지 못했소」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 를 풀어주지 못하고 헤롯 왕에게 떠넘깁니다. 로마 정부와 군중이 무서웠던 것 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빌라도가 예수를 죽였다고 사도신경을 외움으로써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양심을 속였던 그가, 지금 이 세상에 있습니까 그는 지금 이 세상 어느 곳 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메시아를 죽인 자로 영원히 낙인찍히고 말았습니다.

헤롯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면 서도, 군중들이 떠드는 소리에 그만 기가 죽어서, 함께 예수를 모욕하고 조롱했 습니다.

①이처럼 사람들은 진실을 지키려는 의지가 부족합니다.

그것은 말씀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따라야 영생함을 얻을 수 있 다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ㄱ.'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한다'고 했습니다.

ㄴ.그래서, 들은 그 말씀을 입으로 전하고 글로 적어 전파하되, 옥에 갇히 고 고문을 당해도 그 사명 감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이사야 50장 5 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속담이 일반화되 어 있는 듯싶습니다. 괜스레 직접 뛰어들었다가 욕먹지 말고, 가만히 관망을 하고 있는 편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빌라도의 형편이 되고 만다 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만, 우선 자신의 양심이 진실이라 판단하면, 그 진실을 지키기 위하여 진리 편에 서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죽여 야 한다고 했을 때, 한 사람만이라도 그렇지 않다고 외쳤더라면, 우리는 성경 을 읽으면서 서글픔을 덜 느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진실을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나요 내 가족의 일이라고, 내 교회 문제라고, 나와 같은 신분의 사람이라고 해서, 불의와 거짓을 눈감아 죽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엉뚱한 사람이 억울하게 손해를 보고 고통당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②정직하게 삶으로써 겪는 고난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진리 말씀 안에서 정직하게 살려고 할 때에는 틀림없이 고난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그 고난을 달게 지고 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의례히 예수님이니까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 은 잘못된 신앙 태도입니다.

성경 말씀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벌써 죽었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 당시 권력자들이 너무 나 엉터리 없이 예수님께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죽을 일이었습니다. 자기들보다 예수님이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게 되자, 자신들 의 권력과 지위를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모함하여 빌라도에게 끌고 갔던 것입 니다.

예수님과 자신들의 관계를 솔직히 털어놓고 말하기가 부끄러우니까, 그들 은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몰아 빌라도에게 끌고 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 상태와 그 행위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 서 예수님은 그들과 싸우기보다는 그들에게 져주기로 했습니다. 아니, 져주기 로 했다기보다는 하나님께 심판을 맡겼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따져봤 자, 죄인된 인간들끼리의 심판은 공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고난 당한다고 해 서 영원히 죽지는 않습니다. 우리를 영원히 죽이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불의 와의 타협입니다. 죄짓는 일입니다. 고난이 싫어서 정직한 삶을 피하고 이 세 상과 타협하여 죄를 짓게 되면 영원히 죽게 되는 것입니다.

또하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라 는 사실입니다. 한 여름 밤의 날파리와 부나비들이 활개를 치지만, 밤이 지나 면 그들은 사라지고 맙니다. 이 세상에서 악한 세력들이 지금은 자랑하고 떠들 며 판치고 있지만, 머지않아 그들은 사라지고 말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들, 곧 재물이나 권력, 술과 도박, 섹 스와 향락들도 그들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오직 영원히 살아남게 되는 것은 진리와 함께 산 사람들입니다.

 2.진리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을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거짓되고 악한 세력이 예수를 죽여 없애고자 했으나, 하나님은 예수를 다 시 살리심으로써, 하나님은 진리 편에 서 계심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50장 6-8절의 말씀을 보면, 「불의의 세력이 정직한 자를 못살게 굴고 괴롭힐 때, 그래서 심한 고통을 안겨주게 되면, 사람들은 정직한 자가 패 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주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의 편에 서서 도와주 심을 믿게 되면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궁극 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의 무죄를 증명해 주시고, 죄를 뒤집어 씌운 자들을 모두 멸망하게 하신다」고, 이사야 50장 9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정직한 길을 가고 있다면, '내가 정직하다'고 떠들어댈 필 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손들어 주실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문제는, 자신 이 불의한 길을 가고 있는데도 정의로운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처럼 불행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길고 짧은 것은 하늘나라에 가야만 판명이 납니다. 다만 오늘 우리가 취할 태도 는

3.항상 말씀을 사모하는 가운데 새로운 말씀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겸손하기를 배우는 일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부정직한 태도는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 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 다.

빌립보서 2장 5-11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 인간이 취할 바람직한 태도가 무 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ㄱ.하나님께서는 하나님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거나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 셨다고 했습니다(6).

ㄴ.오히려 큰 능력과 영광을 버리고, 종의 모습을 하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 이 되셨습니다(7) ㄷ.아니 그보다 더 훨씬 낮아지셔서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8).

사람들은 그 권력을 유지하거나 더 높아지려고 죄없는 자를 죽이며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웠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반대로 스스로가 낮아지셔서 남 의 죄까지 뒤집어 쓰시고 희생당하셨습니다.

사실상 우리에게 무슨 진리가 더 필요하겠 습니까 이 말씀이면 족하리라 믿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높아지고자 하면 점점 깊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 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주님께 의지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실 것이고, 그 러면 그 영광도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영화로울 것입니다.

정말 자신이 정직하고 의롭다면 하나님께서 손들어 주실 때까지 기다릴 일이 고,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부족을 깨달아 자기를 낮추는 일이 현명한 성도의 자 세입니다.

진실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손을 들어주실 때까지 ①겸손히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자기를 낮추면 떠들어댈 이유도 없고 불평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게 됩니다.

자신을 높이면서 의례히 훌륭한 대접을 받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그렇지 못할 때 불평과 짜증을 내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면 열심히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교만한 자가 귀를 막고 듣 지 않으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의 자리에까지 낮아지셨으 니, 우리는 정말 할 말 없습니다. 만입이 있어도 할 말 없습니다. 우리는 오 로지 계속 자기를 낮춤으로써, 어떤 경우에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②진리 편에 서서 싸워야 합니다.

물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첫째 관문입니다. 자신의 불의는 눈감아 주면서 타인의 잘못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바로 서기를 힘써 하면서 세상의 잘못도 고쳐 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 편에 서서 살기 가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안다면, 믿는 이가 좀 잘못을 해도 크게 야단칠 일 이 아닙니다. 오히려 힘과 용기를 주어서 다시 한 번 진리 편에 설 수 있도록 권면해야 할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지금 이 세상에서 그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도 흔들리지 말고 진리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③깊은 신앙심을 갖고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면서 정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용감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했 습니다. 「그는 깊은 신앙심을 갖고 하나님 나라 올 것을 고대하던 자라(눅23:5 2)」고 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곁을 떠나 갔지만, 아리마대 요셉은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를 자기 무덤에 장사지내고 있습니다. 오 늘 우리는 다른 말이 필요없습니다. 겸손히 자기 것을 희생하면서 주님을 섬김 으로써 정의를 이루어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 손을 들어주실 때까지, 말씀을 사모하는 가운데 더욱 말씀을 더 가까이 함으로써 겸손을 배워 실천하고 정의롭게 사시 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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