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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본질 (요 06: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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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본질적 의미를 찾는데 적적한 때에 살고 있다 하겠습니다. 연 일 계속되는 더위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연출시키고 있습니다. 남부지방 으로부터 농토는 갈라지고 작물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가축이 더위를 이기 지 못하고 떼죽으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그런가 하면 사람들도 밤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작업장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돈도 싫다고 시원한 오전 근무 만 하고 오훈 근무는 포기해 버린다고 합니다.

 르완다에 내전으로 삶을 찾아 떠난 난민들이 먹을 물이 없어 하루에도 수 천명씩 그냥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냥 길가에 버려진 시체를 바라보며 죽음 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 들은 본질을 떠난 현실적인 상황만으로 생명을 이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예 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은 그래서 물질적인 떡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믿음의 떡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태인들의 신앙은 의식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합니다. 당시 그리스의 문 화는 철학적 명상을 통해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가르침은 인 간의 몸을 빌려 이 당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에 참예함으로서 본 질적인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오늘 기독교의 믿음이란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먹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이 주님의 말씀에 반발하고 있습 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였습니다. 결국 수십년 지난 다음 교회에 서 행해지고 있는 성만찬을 가리켜 이방세계에서 들여온 이단사상으로 흡혈 귀의 단체라고 몰아 세우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53절에 나타난 인자의 삶이라는 말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다니 엘 7:13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이신 인자에 대해 유태인들은 분명히 기다 리는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인자로 오신 예수에 대해서는 하나님 의 아들로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요 5:18) 그리스도의 극단적 이원론에 세계관을 가진 이방인들도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추악한 세상에 인간으로 오실 수 있느냐고 불신했던 것입니다.

 그뿐아니라 기독교 내에서도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주님의 육 체는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당시의 상황에 주 님께서는 당당히 내 살을 먹어야 영생을 얻는다고 하심으로 자신이 육체로 오신 하나님으로 믿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거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강조하신 것일 뿐만 아니 라 생명의 본질을 이해케 하는 중대한 선언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윤리적 대상이나 모범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 들어오신 절대자 하나님의 요구에 생명을 걸고 믿음으 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앙의 본질적 내용이요 영생을 얻 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피에 대한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우 리가 교제하는 관계를 맺는 것이라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는 조건이 있 어야 합니다. 그것이 피의 제사였습니다. 죄를 속죄하는 방법으로 동물의 피로 제사드림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온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종교의 의식이었습니다. 당시 이방인들도 신이 흘린 피에 흠뻑 젖으면 깨끗해 지고 신의 부활에 참여하여 생명을 얻는 의식도 성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수 께서도 내 피를 마시라고 하신 것입니다.

 동물의 피로드린 의식제사가 아니라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보혈로 죄씻음을 받고 중생의 은총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6:6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 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종노릇하려 함이 아니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유일한 속죄자이신 그리스도의 대속하심에 매일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옛사람은 죽고 하나님의 자녀인 새생명으 로 거듭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만이 영원한 하나님과 의 괄계를 맺고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의 삶에 생기가 넘쳐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도의 삶의 방편이요 생명의 양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54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신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 에 내가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고 하 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는 말 씀입니다 (카고 아나스테소 아텔 에스카테 헤메라)예수를 생명의 양식으로 영접한 자들의 최후를 묘사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그리고 마지막 날에 그는 영생을 얻게 되는 예수께서 그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 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증거로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산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살것이라는 것입 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통해 얻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본질적 의미는 예수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죽으나 사나 주의 것이라고 했습 니다.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았다고 고백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생명은 예수님과 연합함으로만이 참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그리스도와 연합된 참 생명의 자녀임을 분명히 하는 자랑스러운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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