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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옥에서 들려온 꾸지람 (눅 16: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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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타오르는 불은 끄지 않고 오히려 방문을 단단히 잠그고 방 안에서 불을 부추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빌리선데이) 성경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믿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진리의 내용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는 진리대로 있고 믿지 아니하는 그 사람의 책임만이 문제가 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 네 좋은 것을 다 받았고 ,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눅16:23-35)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세상과 재물만 사랑하는, 나쁜 길로 빠진 바리새인들에게 뉘우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기회있을 때마다 꾸중하셨는데, 그 강도를 점점 높이셨습니다.

 처음에는, 누가복음 6:24에서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의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고 꾸짖었습니다. 다음에는, 누가복음 12:16-22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아무리 세상에서 재물을 쌓아도 죽으면 모두 헛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끝으로, 누가복음 16:19-31에서 그래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사람은 무시무시한 지옥에서 고통당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물질에만 매달리고 반성할 줄 몰랐습니다. 오늘은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주님의 비유에서 함께 은혜를 나눕시다.

 1. 부자가 지옥에 간 까닭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에 나오는 부자는 핏줄로 따지면 유대인으로 아브라함을 아버지 라고 불렀습니다. 아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유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신분이 영생의 삶을 보장하여 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끔찍한 죄를 지었다든가, 꾸중들을 만한 특별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만 판단한다면 부자가 음부에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이 부자를 지옥에 떨어지게 한 죄가 무엇일까요 그 죄는 근본적으로 '불신앙'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모든 가치 기준을 세상적인 것에만 둔다면, 그런 결과는 당연히 자기 만족을 위해 살 뿐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사건에 대하여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잘 이해가 안 갑니다. 무너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다 가치의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을, 삶의 마지막까지 간직하다가 영혼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이것이 불신앙이 주는 뜻입니다. 결국은 `이기심의 씨'가 그를 꺼지지 않는 저 무서운 지옥에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술'은 있어도 믿음의 최소 분량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술'이란 참 신앙은 버리고 거짓 신앙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상 숭배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사실은 자신의 종교적, 도덕적 공로와 능력을 믿을 뿐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에 나오는 부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김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2. 나사로가 천당에 간 까닭을 아십니까

나사로는, 거지된 것도 서러운데 딱하게도 앓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표준으로 보면 실패한 사람이고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가 천국에 갈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나사로'라는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에서 그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사로'는 헬라 말로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순간에, 한 인간의 영원한 삶이 시작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 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재물에만 매달리던 세속적 삶보다는, 비록 가난하고 불쌍하지만 미래에 소망을 둔 삶이 훨씬 값집니다.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는 가망이 없는 버림받은 사람, 그러기에 하나님만 의지하였고, 하늘나라를 소망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천국과 지옥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늘과 땅이 있는 것을 구태여 증명할 필요가 없듯이, 천국과 지옥에 대해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믿는 자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교훈하셨습니다.

적어도 있는 자는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합니다. 사회 지도자들이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저 세상에서 심판 받은 영혼의 고통이 얼마나 지독한가를 말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심판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모질고 악한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나무람입니다.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장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삶의 자리에 적용) 예수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와 견주어 보면, 지금 우리는 상상도 못할 물질의 부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냉장고와 텔레비젼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 넉넉함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이익을 꾀하는 데만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선한 일에 사용하여야 합니다. 외롭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재물을 받은 청지기로서 올바른 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지옥에 가는 것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종교적 이기주의자가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선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인도의 유명한 수녀 테레사는 매일 아침마다 이러한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주여, 당신께서는 이 비참한 세상에서 사시는 33년 동안 충분히 우셨어요. 그러나 오늘은 쉬셔요. 제가 대신해서 고통받고, 가서 울고 오겠습니다!" 누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길 사람들입니까" 이 땅에서 힘다하여 섬기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의 손이 되어 주고 대신 예수님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낮은 자리 편에 서서 작은 아픔도 등 돌리지 않고 언제나 없는 자에게 달려가 입맞추며 안아 주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천한 자리가 없습니다. 주님 보시기에는 왕의 자리와 거지의 자리의 구별이 없습니다. 오직 섬김의 자리가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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