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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년에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눅 0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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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몬산 북쪽기슭에 자리잡고있는 나인이란 마을이있었읍니다.나인이란 목장이란 뜻인데 그 이름대로 평화롭고 푸른초원에 하얀 양떼들이 놀고 냇가가 흐르고 숲속에서 아름다은 새들이 노래하는 한폭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마을이였읍니다.이 마을에서 부자는 아니지만 행복하게 살고있는 모자가 있었읍니다.그렇지만 성숙해 가는 아들 하나에 전생애의 소망을 걸고 양들이나 치면서 신앙생활 열심히하는 단란한 가정이였읍니다. 그런데 무슨병인지는 알수없으나 이 외아들이 죽어버리고 말았읍니다.
어머니에게는 이보다 더큰 바극이 이 세상에서는 있을수가 없읍니다.
온 동리 사람들이 모두 슬픈 얼굴들을하고 초상집으로 모여들었읍니다. 평온한 동리가 슬품의 회오리 바람속에 휘말리게 돼버렸읍니다.
온 동리사람들의 애도와 홀어머니의 울부짖음속에 청년의 시체는 베로 쌓여 관속에 넣어졌고 상여에실려 구슬푼 장송곡과함께 북망산을 향해 가고있었읍니다.
이때에 마침 우리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따르는 수많은 군중들과 함께 나인성을 향하여
오시는 중에 성문 가까이서 슬픈 상여행렬과 극적으로 만나게 되였읍니다.
예수님은 모든걸 알고 계셨읍니다.
이 눈물없이는 볼수없는 슬픈 광경을 보시던 주님께서는 홀어머니를 불쌍히 여기사 “울지말라”고 위로하셨읍니다.그리고는 청년을 향하여 “청년아,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하시니 죽었던자가 벌덕일어났읍니다. 이 놀라운 기적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큰 은혜가 넘쳐흘렀읍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일신교회 청년들에게도 이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사건의 발생지 나인성

나인성은 매우 경치좋은 아름다운 마을이였다고 했읍니다.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웠을가요
한없이 펼쳐진 푸른 초장에 하얀 양떼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목자들이 풀피리불며, 시냇물 소리,새소리하며 정말 평온한 동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어머니의 전소망이자 이동리의 소망인 한청년의 죽음으로 슬픔과 탄식의 마을이 되고 말았읍니다.

청년은 소망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청년이 죽었다는 것은 소망이 끊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나인성은 주인과 소망을 잃은 비극과 절망의 도성이 돼버린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의 주인,내일의 소망 청년이 없을때 아무리 아름다운 강산도,아무리 아름다운 교회도 그 아름다움은 아름다음이 될수가 없읍니다.

현대는 분명 청년을 잃고 있읍니다.
“아담아,네가 어디 있느냐” 부르시던 하나님의 음성은 오늘 나인성과 같은 아름다운 동산인 가정,사회,교회에 청년들이 없을때 “청년들아,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고 계십니다.

아름답던 나인성이 왜 온통 슬픔의 눈물바다가 되였읍니까
이 비극이 웬말입니까
있어야 할 청년이 죽어 없어 졌기때문입니다.
청년이 있어야할 나인성,그 가정에 청년의 부재로 말미암아 못내 슬픔과 절망이오게 되였읍니다.
성가대,교회학교사,청년회에 젊은 일꾼들이 있어야할 자리에 청년이 없을때 주님은 슬프신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사랑하시는 일신교회 청년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의 우리교회의 주인이요
소망입니다.우리의 아름다움을 아릅다웁게하는 장본인들입니다.
아름다운 교회를 더 아름다웁게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청년들 되시기 바랍니다.

2. 관속의 청년

본문의 관속에 들어있는 청년을 생각해 보세요
집안에,동네에,학교혹은 직장에,그리고 교회에 있어야할 청년이 관속에 있었읍니다.
한 어머니의 소망이 절망의 시체덩이가되여 관속에 들어가 있었읍니다.
그는 호흡과 활동이 정지되고 감각이없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능이 없어져 버렸고
썩어지고 없어질 존재로 관속에 갇히여 있읍니다.

그가 관속에 들어가 있는 시체라면
아무리 잘 생기고 세상지식이 많고 학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면 무엇합니까
헛것일 뿐입니다.

계3:1에 보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란 말씀이있읍니다.
예수 만나지 못한 청년은 관속의 시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주님,이 관속에서 저를 일으켜 주소서! 무기력한 자리에서,죽엄의 계곡에서,저를 손잡아 일으켜 주소서.세상소리로 막혀진 내 귀를 열어주시사 주님의 권능의 소리를 듣게 하옵소서.그리고 관속에서 호흡이 끊어진 자리에서 부모형제자매,동리,사회에 슬픔과 염려와 통곡할수밖에 없는 관속에서 뛰쳐나오게 하옵소서”
기도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되살아나는 청년이 됩시다.
여기에 생명과 생산과 창조의 삶이있읍니다.잃었던 기쁨을 되찾는 생명이있읍니다.
참생명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자는 관속의 사람입니다.

나인성 관속의 청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영원히 관속에서 뛰쳐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참생명을 만났는가 자신을 돌아봅시다.
참생명되시는 주님을 만나 참생명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새롭게 펼쳐나갈수있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의 말씀의 역사

주님의 말씀이있어야 살아날수가 있읍니다.
일찍이 ” 빛이있으라“ 하니 빛이 생기던 창조의 말씀-태초의 말씀이 있어야 살아나는 역사가 있읍니다.
“청년아,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거룩하신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관속의 송장이 벌떡일어나 앉아 말을 했읍니다.

말씀을 듣는 귀를 가진 청년들이 됩시다.
말씀이 있어야 관속의 인생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읍니다.
말씀이 있어야 창조가 가능합니다. 승리가 가능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난 청년이야말로 부모형제자매 교회 동리에 기쁨과 소망을 되돌려 주는자요 참삶의 맛을 느끼며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청년들이 이상한 옷차림과 이상한 춤바람이나고 술집 밤거리나 비틀거리고 돌아 다닌다면 그들도 관속의 시체와 다를바 없읍니다.따라서 우리의 가정도 국가의 운명도 관속의 시체가 돼 갈것입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받고 일어나 새생명의 청년이되여 받은바 사명을 다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젊은 일꾼들 되기를 바랍니다.

청년이 있어야할 자리는 관속이 아닙니다.
더 살아야하고 할 사명이있기에 “일어나라”하셨읍니다.
청년은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이 있읍니다.
결코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기위해서라도 촌음을 아껴서 사명에 살아야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반항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내 가정,내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했는가생각하며 일거리를 찾아 충성하는 청년들 됩시다.
이런 청년에게 반듯이 아름답고 밝은 내일이 있읍니다.
“청년의 때 곤고한 날이 이르기전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잘듣고 생명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5. 마지막으로 어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까요

1 슬픔을 주는 관속-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분위기 흐리지말고 가정,교회,동리에 기쁨을 돌려주는 생명의 청년이 됩시다.

2 활동이 없고 정지상태의 관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청년다운 기백을 가지고 기쁨을 돌려주는 활동의 청년이 됩시다.

3 썩고 부패해가는 관속에서 일어나야합니다.
살아나서 동리의 어두움을 밝혀야 합니다.썩어가지 않도록 소금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4 소망없는자가 되여 절망을 주던 관속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부르심의 소명과 사명감에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청년의 죽음으로 나인성의 홀어머니로 부터 온동리 사람들이 함께 슬퍼했읍니다.
우리도 오늘 나인성 청년과 같이 죽어가고 있는 청년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시는 일신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금년은 우리 청년회가 새롭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청년각자가 자기위치를 찾기 바랍니다.
주님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여 관속과 같은 영적인 죽움의 자리에있는 청년들을 주의 제단으로 이끌어내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사는 역사,기쁨과 소망을 선사하는 청년들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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