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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무엘의 가계 (삼상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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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은 이스라엘이 언약 백성으로 태동한 때, 즉 모세 때 부터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신정체제가 끝나고 이스라엘에 왕정 체제가 수립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신정체제란 이스라엘에 통치자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정체제라는 것은 왕이 통치하는 것을 말하는데,여기서 말하는 왕정체제는 단순한 전제 군주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 세움받은 왕이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하는 형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신정주의적 왕정 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절에...에브라임 산지 라고 한것은 이곳이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에브라임 자손이 아닌것은, 대상6:16-28,33-38에 기록하고 있듯이 레위 자손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엘가나가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엘가나가 에브라
임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2절...엘가나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일부다처의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성경의 제도로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성경적인 결혼관에 위배가 되고 있습니다. 혹 사람은 성경에 보면 신앙의 선진이 그랬으므로 그것을 크게 잘못된것이 아니지 않느냐 하는 시각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시대와 인습에 기초해 묵인된 것일 뿐 이지 결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본문의 엘가나의 경우는 한나가 잉태치 못하여 아내를 더 얻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옳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엘가나가 당시 풍습을 따른 것 뿐 입니다.
엘가나가 부인을 둘을 두었다고 해서 그가 죄의식을 가지고 산것은 아닐지라도 그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버린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버린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 됩니다. 신앙을 버리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 입니다.
엘가나의 신실함은 3절에 그가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신앙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출석을 부르기 때문에, 안나가면 심방을 오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기를 기뻐했던 것입니다.
예배가 온전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자발적이여야 하고,기쁨으로 드려야 하고, 정성이 감사가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안 할수 없어서 거나, 두려워서 거나, 이것을 하므로 어떤 것을 얻을수 있다는 식의 조건부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가 될수는 없을 것입니다.
4절...얼마전 화목제에 대해서 공부 했습니다만 화목제물을 드린제에게 속한 몫이 있습니다. 그 몫은 여호와께 속한 ‘기름과 간에 덮인 꺼플과 콩팥’과 다음에 제사장의 몫 ‘가슴과 우펀 뒷다리’를 제외한 모든것이 바로 제를 드린 사람의 몫입니다.
그런데 엘가나는 브닌나나 자식들에게 몫을 주되 한나에게는 다른 사람보다는 갑절을 주었는데 그것은 그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아무래도 더 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속담에 미운놈 떡하나 더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훈적인 속담이나 실제로 사랑하는 자에게 아무래도 무엇인가를 주고 싶은 것은 인지 상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게 됩니다. 핑계가 없어 선물을 못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케도 더 바칩니다. 이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여기 본문은 엘가나의 아내에 대한 극진한 사란을 잘 보여 주는데, 남편인 그가 아내의 약점과 부족함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엡5:25-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는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는 가정의 평화를 힘써야 하리라 믿습니다. 또 가정의 평화는 사회 나아가서는 국가의 평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6절... 여호와께서 성태치 못하게 하셨다고 했는데...이것은 신앙의 선언 입니다. 신앙은 모든것을 하나님과 연관시켜 생각합니다.하나님을 복의 유일한 근원으로 인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을 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지 않았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모든것을 받은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교만 할까요. 남보다 조금 더 가졌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만합니까 브닌나는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남편의 사랑을 더욱 받게 했던 것을 봅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시기로 인하여 한나를 괴롭힌 것을 봅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남보다 더 가진 사람은 항상 못가진 사람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님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반드시 좋은 아들을 주시겠지요’ 했다면 아마도 엘가나는 착한 브닌나의 마음에 감동을 받고 브닌나를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여자의 속좁은 마음을 이해하고 여자를 잘 다독거릴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엘가나는 이것을 잘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엘가나가 두 아내를 거느린 것이 가정의 화목을 깨트리게 되었고 한 여인의 마음에 깊이 상처를 주게 되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남자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교적 전통은 여자가 무시되고 남자는 아내 보다도 자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부부 이상 준요한 사이가 없음을 명심하여 사랑하고 이해하고 돌봐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깨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문제가 샌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즉 성도는 전 삶이 하나님께 항상 순복해야 행복한 가정을 이끄러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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