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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어 있으라 (마 24: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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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사변 직후에 많은 사람이 신병훈련소에 가서 훈련을 받은 후 전방부대에 배치되어 보초를 설 때 당직 장교가 보초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졸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라. 간밤에도 적이 침투하여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이런 말을 들은 보초는 긴장되어서 깨어 있기 마련입니다. 파수병은 깨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잠들다가는 자신도 죽고 동료들도 죽게 하고 민족과 국가를 패망의 길로 이끄는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파수꾼은 늘 깨어 있으면서 적군의 동태를 살피고 감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적이 쳐들어올 기미가 보이면 즉시 본부에 알려야 하며, 본부로부터 명령을 지시받아 적군을 물리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깨어 있지 못하고 잠들어 있다고 하면 그 부대 전체와 더 나아가서는 나라와 민족을 패망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과 저는 어떤 파수꾼(把守軍)입니까 영혼을 지키는 영적(靈的) 파수꾼(把守軍)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깨우치고 지킬 뿐만 아니라 가족의 영혼들, 이웃의 영혼들을 깨우치고 지켜야 할 파수꾼들인 것입니다. 조장, 구역장, 순장들은 구역원들의 영혼을 깨우치고 지켜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고, 교사는 어린 심령들을 깨우치고 지켜야 할 사명이 있고, 교회의 직분자들은 모든 성도들의 신앙을 깨우치고 지켜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깨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일깨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성령충만하여 죽어가는 영혼, 믿지 않는 영혼들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나라와 민족을 깨우치고 지켜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장 17절에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에 복음을 전하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서 그들로 하여금 각성하게 만들고 깨어 기도하도록 만들어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파수꾼의 사명을 게을리하고 자신의 영혼도 깨우치지 못하고 더 나아가 구역원들과 성도들, 나라와 민족의 영혼을 깨우치지 못하였을 때 그 핏값을 우리에게서 취하시겠다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죽는 사람들의 핏값을 누가 책임져야 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깨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많은 영혼들을 일깨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깨어 있어야 할까요 그것은 그 날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직접적인 의미는 첫째로, 종말, 재림의 날을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알고 계신다는 뜻이고, 둘째로, 그 날을 알 수 없다 함은 심판(審判)의 돌발성(突發性)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심판의 날이 갑자기 임할 수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심판의 날이 언제일른지 알 수 없고, 개인의 종말이 언제일른지 알 수 없습니다. 건강하더라도 심판의 날이 도적과 같이 오고, 갑자기 쓰러져 죽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인사말에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의미있는 인사법인 것입니다. 옛날 애굽의 장자들은 평안하게 잠들었는데 그날 밤에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곡성이 애굽 전역에 진동하였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많은 물질을 쌓아두고 영적인 문제에 관심없이 육적인 것만 좇다가 영혼이 떠나가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옛날 벨사살 왕은 천명의 귀빈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다가 다리오라는 장군이 쳐들어와 그날 밤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평안하다고 하여 육신의 일만 도모하다가는 큰 화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희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른지 알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낡고 병들고 무너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 천년, 만년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아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미국 사람 가운데는 오래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100세가 넘는 사람들이 약 4만 명이고, 2천년대에 이르면 10만 명에 이르고, 100년 후면 100만 명에 이를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55억이라는 인구에 비하면 100만 명이라는 숫자는 보잘 것 없는 숫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70이요, 강건하다고 하면 80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나이가 60이 넘으면 한해 한해가 새롭게 느껴지고, 70이 넘으면 한달 한달이 새롭고, 80이 넘으면 하루 하루가 새롭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인생의 종착역이 가까울수록 하루 하루가 소중하게 새롭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침에 눈을 떠서 “오늘도 새날을 허락받았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 해가 뜨고 지면서 하루 하루가 오고 가지만 똑같은 날은 아닌 것입니다. 이처럼 심판의 날도 알 수 없는 때에 오는 것이고,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6.25사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던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1950년 6월 24일은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때 서울 시내는 너무나도 고요하고 평안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주말이라고 해서 유원지를 찾아가거나 조용한 곳을 찾아가서 인생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군인들도 대부분 외출을 하거나 휴가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안일하고 나태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 다음날 새벽에 북한이 남침을 감행하리라고 알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심판의 날이 도적같이, 갑자기 임해서 이 나라는 초토화되고 피로 물들었던 것입니다.
이 나라의 위정자들이 깨어 있었더라면 그토록 허무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낙동강까지 밀려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는 이렇게 비참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깨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이 말씀의 의미는 주님의 재림의 날이 홀연히, 갑자기 임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본문 40절과 41절에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벼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사람 중에 한사람은 들림받고 나머지 한사람은 버림을 당할 것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본문 42절과 4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44절에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사람의 생각에 “뭐,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라고 하여 세상에 취하고, 쾌락에 취하여 세상 잠을 자고 있을 때에 홀연히 우리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깨어 있으라’는 말의 원어의 뜻은 항상성과 계속성을 내포하고 있는 말입니다. “언제나 너희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는 강조적 의미의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누가 버림당한 사람일까요
불신자입니까 교인입니까 불신자들이 버림을 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인들 가운데도 버림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기름 준비한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등만 준비하고 기름을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는 버림을 당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아 충성했던 종은 영광을 누렸지만 한 달란트 받아서 땅에 묻어 두었던 종은 버림을 당했던 것입니다. 오른 편에 있는 순종하는 양들은 영광을 누렸지만 왼편에 있는 불순종하는 염소들은 그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던짐을 받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미련한 다섯 처녀, 한 달란트 받은 종, 또 염소는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불신자들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교회안에 있는 교인을 말합니다. 교회안에 구원받고 들림받은 사람이 있지만 버림받아 이를 갈며 슬피 통곡할 사람이 있음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안에 있는 교인 가운데도 버림받은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과 저는 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았던 종, 양과 같이 충성하고 순종하여 들림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깨어 있다”함은 무슨 뜻일까요

첫째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삶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주님 앞에 설날을 기다리는 삶의 자세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생활패턴을 보면 과거를 회상하면서 사는 사람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지, 그 시절이 내게는 가장 행복한 때요, 가장 좋았던 때였지. 그때는 나도 충성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했었지”하는 옛날 타령만 하고, 인생은 참으로 허무하고 무상하다고 하면서 눈물지으며 과거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눈치나 보고 세상풍조에 끌려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끌려 정신적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 가운데도 이렇게 노예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단에 미혹되고, 어떤 신통한 능력을 행한다고 하면 귀가 솔깃하여 쫓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님을 바르게 믿고, 주님의 뜻을 온전히 좇아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깨어 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남의 정신에 노예가 되어서 살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지난날, 옛날이 좋았다”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살지 않았고, 세상풍조에 떠밀려 가면서 살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주님의 날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그 날을 기다리고, 위엣 것을 바라보고, 위엣 것을 찾고, 위에서 부르시사 상주시는 그 날을 바라보고,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후서 3장 12절과 13절에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깨어 있다” 함은 성령충만받아 종말 신앙으로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먼저 내 인생의 종말이 언제 다가올른지 모르지만 언제 종말이 다가오더라도 주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서야겠다는 마음가짐과 우주적인 종말이 언제 다가올른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이 다가올 때에 부끄러움 없이 들림받아 주님 앞에 서겠다는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신앙의 태도를 갖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죽음의 순간이 언제 임할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세상을 떠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자굴에 던지움을 받아도, 원형 경기장에 끌려가서 맹수의 밥이 되어도, 화형을 당하면서도,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도,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괴로와하거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습니다. 천사와 같이 빛나는 모습을 하고 “하나님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며 그 영혼을 부탁하고 담대하게 하늘나라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확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죽일 수는 없다. 시저 황제도, 티토 장군도, 내 목숨을 앗아가지는 못한다. 다만 내 목숨을 주님께 바칠 뿐이다.” 사도 바울은 “나는 죽지 않는다. 다만 한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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