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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결산보고서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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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시작이라고 본다면 심판은 끝이 됩니다.성경은 창조를 기록한 창세기로 시작하여 최후 심판을 다룬 계시록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시작과 끝이 분명한 종교입니다.이유는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시작이며 끝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계시록 1:8을 보면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경우 역시 신앙생활에서 시작과 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다시 말하면 출발과 마무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주인이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달란트를 각각 나누어 주고 떠났으며 돌아온 후 그 결과를 놓고 상과 벌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예수님을 의미하고 종들은 우리 모두를 의미합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다음의 교훈들을 찾아 보십시다.

1.달란트 분배의 원칙을 살펴 보십시다.
각각 그 재능대로 맡겼습니다.
15절을 보면 “각각 그 재능대로”라고 했습니다.얼굴 생김이 각각 다른 것처럼 성격도 재능도 취미도 다른 것이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면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한 울타리 안에 모여 산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러니까 꼭 같은 조건이라야 잘 살 수 있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오히려 각각 다른 조건들이 연합과 조화만 이룰 수 있다면 훨씬 더 멋있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남편과 아내의 얼굴,성격,취미,습관이 똑같다면 거기다 큰아들,둘째아들,큰딸,둘째딸의 얼굴도 꼭같고 성격,취미 습관이 꼭 같다면 가정생활이 지루할까요,즐거울까요.
교회가 아름답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각각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고 섬겨 나가는 것은 예술중의 예술인 것입니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국가의 정치적 입장이나 관점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그렇지만 거대한 국가 공동체가 운영되고 발전하는 것은 국익 우선이라는 국가관의 도출 때문인 것입니다.
12월 18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세계 언론들은 긍정적 평가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민주주의의 진일보라느니 민주주의의 선진화라느니 그 결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도 이번 대선은 과정과 결과가 어느 선거보다 공정했고 민주주의를 향한 진일보였습니다.승자와 패자의 태도가 그렇고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의 정서 역시 성숙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입니다.이겼다고 자만에 빠진다든지 졌다고 한을 품는다면 그것은 정치적 조화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잘한 것은 칭찬해 주고 못한 것은 꾸짖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그런데 일생동안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는다면 그런 사람을 존경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내가 지지하고 투표한 사람이 비록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의결에 승복하고 협력의 깃발을 들어 주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이 결정되고 집행될 수도 있습니다.그러니 그것이 다수의 의사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면 승복하고 따르는 것이 민주적 사고이며 태도인 것입니다.
“너네들이 별 짓 다해도 나는 반대다”라고 고집을 피운다든지,“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된다”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철저한 독선이며 아집인 것입니다.
서울 시내 번화가에 위치한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허름한 대문 옆에 게시판이 있습니다.30여년 전에 어느 권사님이 권사 취임 기념으로 만든 것인데 재료가 나무인지라 비바람에 썩고 망가져 보기가 흉했습니다.어느해 그 교회 집회를 인도하면서 담임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돈이 들면 몇푼이나 든다고 게시판을 저모양으로 놔 두셨습니까.수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길거리인데 그럴싸하게 다시 만들어 세우도록 하십시오”라고 그랬더니 목사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게시판이 보기 흉하다며 500만원 헌금을 했다는 것입니다.그 정도면 칼라 스텐레스로 틀을 짜고 전기까지 가설해서 잘 만들 수가 있더라는 것입니다.당장 착수를 하려다가 30년 전에 그것을 헌납하신 권사님이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답니다.전화를 받고난 권사님의 대답은 “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됩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게시판을 바꾸지 못하고 있노라며 절더러 “무슨 좋은 해결방법이 없겠는가”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생각 끝에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만”이라고 했더니 알려달라고 보채는 목사님에게 “딱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오늘부터 기도를 시작하십시요.”
“무슨 기도를 시작하라는 겁니까”
“주여 그 권사님 눈에 빨리 흙이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직장생활이나 교회생활을 제고집대로 하려고 하면 안됩니다.오로지 자기 주관이나 주장만을 관철시키려고 해도 안됩니다.
교회 생활의 경우는 자기 주장과 고집이 교회에 유익한가를 생각해야 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 각각 재능대로 맡기십니다.
달란트 분배가 다섯,둘,하나로 구분되어 있습니다.다섯을 맡을만한 사람에게는 다섯을 주셨고,하나를 맡은만한 사람에게는 하나를 주신 것입니다.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갈무리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도 맡기지 않는 것입니다.
달란트 분배의 원칙은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주인의 뜻대로이고,
둘째는 각각 재능대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맡은 그 달란트는 주인이신 주님께서 나의 가능성과 능력을 보시고 주신 것들인 것입니다.

2.달란트 관리의 원칙을 살펴보십시다.1)바로 가서…
16절을 보면 “바로 가서”라고 했고,17절을 보면 두달란트 받은 자도 “그 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이것저것 망서릴 필요없이 달라트 받자마자 즉시 장사하러 나갔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달란트를 준 목적이 27절에 나와 있습니다.그것은 이윤을 남기라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온 종에게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돈이 지하로 숨어드는 것을 지하경제라고 합니다.떳떳치 못한 돈을 검은 돈이라고 합니다.돈은 정당한 방법으로 통화되어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땅에 묻어 두면 돈의 유통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그 결과 경제질서에 문제가 일어납니다.“바로가서”달란트를 활용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달란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훗날 쓰겠다고 미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것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는 사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굉장한 달란트를 주인 마음에 들게 사용하지 않고 제멋대로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가서 해야 합니다.미뤄도 안되고 지체해도 안됩니다.
2)남겨야 합니다.
16절을 보면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라고 했고 17절을 보면 두달란트 받은 자도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했습니다.경제 용어로 말하면 손익 결산에서 흑자 결산을 했다는 것입니다.
국제 경제나 경영 조건의 악화로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80년대 일본의 경제는 문자 그대로 호황국면이었습니다.
하와이 텔레비젼 방송에 일본 은행들이 시민들에게 돈을 꾸어다 살지 않겠느냐고 마치 상품을 선전하듯 은행 융자를 선전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경제 학자들은 일본경제를 거품경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비누방울처럼 부풀었던 일본경제의 거품이 이제는 꺼져 들고 있으며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입니다.이런 현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남는게 없다는 것입니다.
남는게 없는 장사는 믿지는 장사입니다.달란트의 경우 역시 남는게 없으면 안됩니다.남기라고 주신 것이니까 남겨야 합니다.
남긴다는 것은 이윤,성과,결과를 의미합니다.
우선 금년 한해동안 얼마나 남겼는지 우리 자신의 결산보고서를 작성해 보아야 합니다.

3.달란트와 상급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섯을 더 남긴 종과 둘을 더 남긴 중에게 주신 칭찬과 상급이 동일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다섯을 남긴 종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선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3절을 보면 둘을 남긴 종에게도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며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둘을 남겼느냐 다섯을 남겼느냐 하는 계수상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둘다 똑같이 칭찬과 상급을 받았습니다.그 이유는 간단합니다.각각 재능대로 달란트를 분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배를 남겼다는 것입니다.그러니까 한달란트 받았던 사람도 열심히 장사해서 하나를 더 남겼다면 다섯이나 둘을 남긴 종과 똑같은 칭찬과 상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를 땅에 묻어 두었던 사람의 성격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첫째,편견에 사로집힌 사람입니다.
그는 주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4절을 보면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주인을 구두쇠 노랭이 수전노 옹고집으로 보았습니다.그것은 그의 불행한 편견이었습니다.그러기에 26절을 보면 주인이 그의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지적하고 꾸짖고 있습니다.
편견은 일을 망칩니다.그리고 부정적으로 이해하고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둘째,소극적이었습니다.
25절을 보면 “두려워하여”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했습니다.그 뜻은 실패할까봐 두려웠다는 것이고 실패한 후에 주인한테 문책 당할까봐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소극적은 사람은 큰일을 못합니다.
풍랑 만나 쩔쩔 매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내니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겁내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큰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셋째,핑계가 많았습니다.
일을 잘하고 충성하는 사람은 핑계가 없습니다.그러나 일을 안하는 사람일수록 핑계가 많고 말이 많습니다.
헌금 생활을 열심으로 하는 사람은 헌금 종류 많다고 투정부리지 않습니다.안하는 사람이 말이 많습니다.
전도 열심으로 하는 사람은 전도시킨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기도 생활 힘쓰는 사람도 기도 투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맨밥을 먹어도 소화가 잘되는 사람은 찬물에 꾹꾹 말아 김치 한가지로 밥을 먹어도 맛있게 먹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밥투정,반찬투정이 많은 것과 같습니다.핑계하지 맙시다.
넷째,악하고 게으른 종이었습니다.
이 한가지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남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해를 마지막 보내는 송년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얼마나 일했고 얼마나 남겼습니까
얼마나 게을렀고 모자랐습니까
겸허하게 우리들의 결산보고서를 만들어 봅시다.
그리고 다가올 새해는 이윤을 남깁시다.
신앙적으로 적자 투성이가 되지 맙시다.
범사에 배로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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