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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람직한 구도 정신 (욥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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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4:은 엘리바스의 3번째 변론에 대한 욥의 7번째 대답을 기록하고 있 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음과 그 뜻을 이해할수 없움을 탄식하며 두려움과 낙망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욥의 탄식과 더불어 확신과 위 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비하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연 단을 받는다는 확신 속에서 소망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욥은 자신이 받고 있 는 재앙과 고난을 하나님께 탄식하며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엘리바스 의 비난에 직접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자신의 무죄함을 토로하면 서 엘리바스의 비난을 일축합니다. 욥의 이러한 자세는 인간의 평판에 동요 되지 않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면 된다는 바른 자세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 하려는 의지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무죄를 인정받고 그분만 의지하 려 합니다. 상처받으며 번민하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르쳐 주는 좋은 교훈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은, 하나님게서 인생들을 굽어살피면서 한 사람이라도 지각을 가지고 당신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셨지만 하나도 없었어서 탄식하신다는 시편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 말씀을 인용 하여 세상에는 바른게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고 단정하였습니다.

여러분! 다윗 시대에도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이 팔레스틴에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왜 그런 말을 하였을까요 그것은 참되게 하나 님을 믿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을 받기 위하여 무조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과 진리를 찾기 위하여 구도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른 신앙자의 자세를 가 져야 불필요한 수고를 줄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1.의문은 받드시 물어야 합니다.

 욥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 어찌하여 이런 큰 재앙이 자기에게 임했단 말인가' 하는 뼈아픈 질문을 하나님을 향하여 끊임없이 던지고 있었습 니다. 본문의 말씀 가운데 "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하니 받는 재앙이 탄식보 다 중함이니라"(2절)는 말이 바로 그 점을 잘 밝혀 주고 있습니다. 퓔떫際 욥은 자기가 당하고 있는 재앙에 대하여 하나님을 무조건 믿는다는 식으로 어물어물 넘어가지 않고 그 까닭을 분명히 캐내려고 몸부림쳤던 것이라 하겠 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 생활의 현장에서 어떤 의문나는 점이 생기면 그저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묻어 버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반드시 그 점 을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구도적인 정신입니다.

"내가 어찌하여 이를 알까"(시73:16), "하나님이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의 치 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발하시나이까"(74:1)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예수님께 서도 극도의 고통에 이르자 다음과 같이 소리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개의 신 자들은 신앙을 불문 가지처럼 여기고 있는데 그것은 미신이나 맹신과 다름없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문제들을 내어 놓고 진지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로 하나님을 알 아야 합니다.

 2. 하나님께만 나아가야 합니다.



바람직한 신앙자세에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찾는 대에 있습니다. 욥 은 훌륭한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내가 어찌하여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 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서"(3절)라고 한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러니까 욥은 자기의 커다란 의문을 푸는 방법은 결국 하나님을 찾아 나서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의문을 해결하려 할 때 는 반드시 하나님께로만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질문에 대답해 주실 수 있고, 오직 하나님 만이 그 해결의 길을 제시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 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의 지혜를 다 표현해 두셨습 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있어 그리스드는 천만 가지의 의문과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가우리의 해답입니다. 물론 자기의 의문에 대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보다 더 적절한 것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 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한된 인간적인 생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큰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의문이 나 질문이든지 이를 풀기 위해선 하나님께만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3.대답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참된 신앙자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대답을 듣고 깨닫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도 욥은 우리에게 바람직한 신앙자세가 정신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 고 있습니다.

"그 앞에서 호소하며....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고 내게 이르시는 것 을 내가 깨달음이라"(4,5절) 이러한 욥의 태도는 훗날 하나님께로부터 자기 질문의 대답음 물론이요, 눈 으로 친히 하나님을 목격까지 하였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질문을 가지고 하 나님 앞으로 나아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대답을 듣지 못했다 거나 들었어도 깨닫지 못했다면 그런 일들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목회의 전문가인 목사에게 교회의 신앙생활 방법을 물어야 합니다. 전문가 에게 묻는 것이 다시 돌이켜야 하는 후회를 미연에 방지할 수있는 것입니다.

성형 수술도 성형의술 전문의에게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에도, 저렴한 가격으 로 수술을 하려고 비전문 의사나 무면허자에게 얼굴을 맡기면 큰 후회를 하 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더욱 그러합니다. 신앙인이 잘못되는 것을 즐기는 사 단은 조금이라도 신자가 잘못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자기 수하에 두려고 공 격을 하므로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나님께 마땅히 질문을 드려야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까지 듣고 그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의 완전한 계시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 안에는 신앙생활에 필요한 대붑분의 대답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성을 기대하는 것 은 자칫 잘못되 신앙으로 흘러 갈 수도 있습니다. 바로 성경 연구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참으로 성경은 무궁무진한 진리의 보고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일상 생활 중에서 난제를 만나는 일이 많고 신앙 생활에 대해서도 의문 나는 점이 많습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인생' 자체가 큰 숙제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흐지부지 넘겨 버리기 일쑤이고 특히 신앙에 관한 것은 그저 믿는다는 식으로 넘어가 버리기 일쑤입니다. 질 문이 없으면 해답도 없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우리는 중요한 문제는 반 드시 하나님께 나아가서 질문을 드리고 그 답을 듣고 깨닫는 데까지 이르도 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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