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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의 생애는 어떠한가? (욥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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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떤 사람이 차에 휘발유를 넣는 것을 깜박 잊고 귀가해 밖에 서의 저녁 일정을 모두 취소해야 했습니다. 이 사람은 집에 돌아와 애꿎은 가족들에게 신경질을 냈답니다. 그날 밤 도둑이 차를 훔쳐 타고 가다가 곧 휘발유가 바닥나 차를 거리에 버린 채 달아났습니다. 다음 날 도둑 맞았던 차를 다시 찾은 이 사람은 그제야 휘발유가 떨어진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느냐는 사실을 깨달았고 인생 전체를 조감해 보게 되었습니다. <상실> 이 반드시 <불행>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고난에는 의미가 있음 을 아라야 합니다.

사전에는 '人生'을 '사람의 목숨', '생명을 가진 사람', '사람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인간의 생존생활' 등으로 풀 이하여 놓았습니다. <人間>이란 말은 뜻이 단순하지만 <人生>이란 말은 그 의미의 범위가 대단히 넓습니다. 욥은 인생의 실상에 대하여 그 핵심적인 것 들을 잘 말해 주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욥이 규명해 놓은 것들은 우선 신앙 적 관점을 전제하고 인생의 실존적 의미를 밝힌 것이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우선적 파악은 우리에게 절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파악이 앞서야만 어찌하여 모든 인생에게 구원이 필요한지도 분명히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1.인생은 괴로움이 가득합니다.

 욥은 인생은 괴로움이 가득한 것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1절) 욥은 그 당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입니다. 우선 욥이 인생을 가리켜 '여인에게서 태어난 존재'라고 전제한 것부터가 고통의 의미를 함축 하고 있습니다. 성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자 마자 울음부터 터뜨린다. 이는 장 차 자기가 겪을 수많은 고통을 예지하고서 그 불운을 표현한 것이 아니고 무 엇이랴!"그렇습니다. 인생은 고통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까지도 인생을 가리켜 '밤낮 자지도 못하고 고통에 시달리는 존재' 라고 말하였습니다.(전8:16절) 문호 괴테는 칠십 평생 동안 자기가 진정 기 뻐해 본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고백하였고 철학자 소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하기 위하여 태어난 존재라고 말하였으며 고대의 철인 세네카는 인생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일처럼 불행한 것은 없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우리 는 자기의 삶이 고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찌하여 나 에게 구원이 필요한가를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2.인생은 덧없고 무상합니다.



욥은 이어 인생이란 덧없고 무사한 것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 발생함 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 머물지 않거늘"(2절)이라 고 말한 것이 그것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인생은 '여인에게서 태어난 존재' 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태어난 자는 누구나 조만간 죽어가기 마련입니다. 우리 나라의 고려말 어떤 선비 하나가 다음과 같은 시조를 읊었습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 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잡초만 우거진 옛 도읍지를 목격하면서 그 무상감이 절절하여 그대로 숨김 없이 토로한 내용입니다. 태어난 존재는 곧 죽어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태어나는 일은 죽어 가는 일과 별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실존적 현상 앞에서는 사람이 몇십년 동안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아 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많은 이들은 자기의 건강을 과시하고 용모를 자랑 하고 자리가 얻은 존영을 높이려하지만 그것도 다 한낱 헛된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의 덧없음과 무상함을 통절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동시에 자기에게 왜 구원이 필요한가를 알게 되 는 것입니다.

 3.인생은 추악에 젖은 삶입니다.

 욥은 이어 인생이란 추악하기 그지없는 것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4절)라 는 욥의 말은 이를 가리킨 것입니다. 인생을 가리켜 추악한 것이라고 말하면 누구에게나 거슬리게 들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깊이 음미 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욥이 인생을 '여인에게서 태어난 존재'라고 전제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욥은 인생을 더러운 것이라고 보았을 때 거기에는 원죄의 관념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매튜헨리는"정결한 자손이 부정 한 부모에게서 나올 수 없다. 인간의 합법적인 범죄에서 얻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유전병으로 더렵혀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부부의 결합을 두고서 합법적인 범죄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인생은 누구나 원죄라는 근원적인 죄 가운데서 태어난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한걸음 나아가 인생이 추악하다는 것은 현실 적인 증험이기도 합니다. 이점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인 토 마스 A. 켐피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추악하기 그지없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생을 어떻게나 사 랑하는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생인 시궁창에 빠져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에게 어찌하여 구원이 필요한가를 알게 됩니다.

성도여러분! 인생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었을 때 그 대답은 절대로 단순할 수가 없습니 다. 인간 사고의 경향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이 본문에서 보여 준 인생의 규정은 종교적 측면에서 진정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교훈에 비추어 나의 인생도 깊이 통찰해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궁극적으로 구원자인 그리스도를 앙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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