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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6, 마 0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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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즐겨 외우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 시편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깊이 명상하지 못하고 지나치기가 쉽습니 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그저 좋은가보다 라는 정도로 생각하여서는 이 시편의 진정한 가치를 아직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 시편이 그토록 사랑을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 시편은 아주 오 래 전에 한 유대인에 의하여 불러진 노래이면서도 마치 어제 기록된 것처 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 다른 시대의 사람의 기록 이면서도 아주 우리와 가까운 사람, 우리의 형편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를 위해 그 노래를 만든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시는 아름 다운 언어로 기록되었으면서도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고 소박하기에 친근감 을 더해 줍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 시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 시골의 할머니도, 공장의 노동자도, 연구실의 학자도, 길가에 앉아 장사하는 아주 머니도 모두 이 시편을 자기의 시로 생각을 합니다. 다윗이 이 시편을 쓴 것은 젊었을 때가 아니고 나이가 많이 들어 하나님께로 돌아갈 날을 기다 리며 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인간 의 깊은욕구를 아름다운 말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이어(F. B. Meyer)라는 분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 23편은 사 막의 오아시스이며, 험한 등산 길에 있는 휴게소이고, 타는듯한 한낮의 시 원한 동굴이며, 고요하고 신성한 묵상을 할 수 있는 정자이다. 시 23편은 성경의 성전 가운데서 가장 거룩한 곳 지성소이다. 곤비하고 쉼이 없고 무 거운 짐진 인생들의 평온한 안식처이다" 오늘 사막과 같이 목이 타는 고달 픈 삶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을 한번 돌아보면서 이 시편을 통해 갈증을 해소하고 위로를 받으며 용기와 소망을 얻고자 합니다. 앞으로 몇번에 걸 쳐 이 시편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먼저,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오랜 인생 의 경험에서 울어난 신앙고백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는그리스도 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을 때는 사실상 아직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있던 때입니다. 아니 믿기는 했어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던 때입니다. 그가 이 신앙고백을 분명 하게 할 수 있었던 자리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고백을 쉽게 생각합니다만, 사실상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신 앙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채 그저 고백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고백은 세상에서 쓰고 단맛을 다 겪은 후 하나님께 로 돌아갈 날을 바라보는 자리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또 바로 그런 신앙 고백만이 진실한 것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라는 다윗의 고백은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 를 돌아볼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이 고백 속에는 자기 부 정이 들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한 것처럼, 다윗도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내가 나의 목자가 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셨다고 한것입니다. 자기는 한마 리 무능한 양의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는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보 잘것 없는 양일 뿐이었다는 고백입니다. 젊었을 적에 감히 골리앗 앞에 나가 그를 넘어뜨릴 수 있었던 것도,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하여 이곳 저곳으로 도망다닐 때도, 그리고 왕이 되어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며 승리를 하였을 때도, 그 모든 것을 그에게 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 는 고백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자 기의 것으로 만들었을 때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책망을 호되게 받고 그 벌로 그가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왕궁을 떠나고 온갖 곤욕을 치루 었습니다. 그러나, 나이들어 돌이켜 보니 그런 하나님의 채찍도 사랑이었 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릇된 길로 가는 자를 그냥 버려 두시므로 영원히 멸망케 하지 아니하시고 채찍을 들어때리시므로 멸망의 길에서 건져 주셨 으니 정말로 여호와는 그의 선한목자가 되신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므로 다른 사람 의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의 생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신앙고백 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 주므로 그대로 따라서 말한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애 깊숙히 들어오셔서 나를 가르치시고 인도 하시며 힘주시고 책망하시며 위로하시는 분이심을 뜻한 것입니다. 많은 양 떼 가운데 섞여서 다른 양떼들을 돌보아 주는 김에 나도 도움을 받은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나의 이름을 지목해 부르시고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시 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을 다윗은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물론 만민의 하나님이시며, 만민의 아버지시며, 만민의 주가 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체로 우리를 만나시는 것이아니라 개 별적으로 나를 만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마치 나 외에는 누구도 사랑하 시지 않는 것처럼 나를 대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바로 이런 점에 있다 하겠습니다. 만민을 사랑하시면서도 바로 나 한 사람만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를 대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상하심이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민 에게 사랑을 고루 주시지만, 그 사랑이 만민에게 나뉘어지기 때문에 내게 는 흡족하게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흡족하며, 동시에 나에게 만 특별히 주시는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연인 사이와 같은 관계입니다. 사랑의 그 은밀함과 기쁨은 사랑해 본 사람만이 아는 것입니 다. 하나님을 만민의 주로만 고백해서는 부족합니다. 나의 애인으로 고백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 로 언제나 고백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언제나 나만을 사랑해 주시 는 애인을 가졌다는 사실은 얼마나 기쁘고 흐뭇한 일입니까 우리가 흔히 연애편지를 쓸 때 "당신은 나의 태양"이라고 하는 것처럼, 다윗은 "여호와 는 나의 목자"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의 태양이십니다"라고 여러분은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경험이 있다면 여러분은 정말행복한 사 람입니다. 도저히 해결할 길 없는 무거운 짐으로 마음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을 때 그에게 나아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눈물을 쏟아 보십시오. 그가 그 눈물의 의미를 아시고 위로해 주시며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소망으로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음으로, 다윗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부족함이 없지만 앞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택 연합군은 굶주리고 집 없는 아이들을 모아 커다란 캠프 안에서 함께 살도록 했습니다. 거기서 아이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 었으며 보살핌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 게도 밤이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심리학자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아이들이 침 대 속에 들어간 후에 각자가 손에 쥐고 있을 빵을 한 조각씩 나누어 주었 습니다. 그것은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라 그냥 손에 들고 있도록 준 것입 니다. 그런데, 그 자그마한 빵 한조각이 놀라운 효과를 가져 왔습니다.

 아이들은 내일 먹을 것이 있다는 안도감에서 평안히 잠들었던 것입니다.

내일 먹을 것을 염려해야만 했던 이 아이들이 내일 염려를 해결받았을 때 비로소 평안히 잠들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전쟁 고아들만의 심리 상태이겠습니까 내일 먹을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만큼 많이 가진 사람 중에도 자식들 대에서 먹을 것까지 염려하느라 평안히 자리에 눕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 면서 "오눙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 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8)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급하여 거친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 게 만나로 먹여주시고 바위를 터쳐 물을 마시게 하셨고, 메추라기를 몰아 다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욕심쟁이들이 내일을위해 만나를 더 많이 긁어 모았을 때 하나님은 그 만나들이 곰팡이가 나서 먹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부족함이 없게 하셨을 뿐이지 넘쳐서 남아 돌게 하시지는 않 았습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과 만족하다는 말은 같은 말인 것 같지만 사실은 같 은 개념이 아닙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필요한 것만큼 채워진다는 말 인데 반해서 만족하다는 것은 마음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 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란 대체로 욕심이 과해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만족을 얻기 위해서

비싼 가구들이나 물건들을 마구 사들이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최대한도의 만족을 구하는 삶은 결국 파멸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과소비 를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짐승들은 결코 과소비를 하지 않습니다. 사자는 자기 배가 부르면 토끼가 지나가도 거들떠 보지를 않는 것입니다. 먹을만큼먹으면 더 이상 살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전에 텔레비젼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식점에서 먹다 남긴 음식들이 얼마나 많이 버려지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부페식당에서 특히 먹 을만큼만 갖다 먹지 않고 욕심껏 가져 왔다가 그냥 남겨 다버리게 만든다 는 것입니다. 적당한 양을 먹고 욕심 부리지 않으면 건강하게 살도록 되어 있는데 필요 이상의 양을 먹으므로 병들고 목숨을 단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소한의 삶을 살도록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 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땅을 분배받았을 때 그것은 천석지기나 만석지기 땅이 아니라 그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을만큼의 땅이었던 것입니 다. 그런데, 욕심쟁이들이 필요 이상의 땅을 욕심내면서 그 땅을 사고 팔 게 되었고, 지주와 소작인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오늘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가 바로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가지지 못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이 생겨난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최소한의 삶이란 그 시대마다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없이 키워준다면 온 우주를 다 삼키고도 모자랄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최 소한의 삶에 기준을 두시고 그것만을 부족함이 없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 다.

오늘 가난한 사람들, 다시 말해서 이 최소한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 들의 기도를 하나님은 왜 안들어 주실까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왜저 가난한 사람들을 버려 두시는가 그것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가진 사람들 때문입니 다. 저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기도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지 구를 위해 마련하신 양은 일정한데 약삭빠른 나라, 강한 나라들이 먼저 많은 것을 차지하여 버렸기 때문에 약한 나라들은 가난해 질 수 밖에 없고

그 기도가 잘 응답되지않는 것입니다. 한 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차지하니까 무능한 사람들은 가난해질 수 밖 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가 잘 응답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러나 이제 가난한 자들의 울부짖음이 커질 때 하나님은 그냥 계실 수가 없 어 강한 자를 혼내주시고 그들로 부터 가난한 자의 몫을 빼앗아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은 욕심 부려 살지 않겠다 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욕심없이 살면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계속부족함이 없이 채워 주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가 한 때욕심을 부려 남 의 아내를 빼앗아 가졌을 때 얼마나 혼이 났는가를 기억하면서 다시는 어 떤 욕심이건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변함없는 사랑으로 여러분을 은밀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게 될 때 여러분의 삶은 안전하고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 을 만민의 주로만 느끼시는 분이 있다면 좀더 열심히 기도하시고 좀더 열 심히 그에게 가까이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만을 뜨겁게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고백할 수 있을 때 아울러 내가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도 고백할 수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직 자 기 삶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미 부족함이 없이 채워 주셨는데도 욕심때문에 부족 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가난한 우리의 이웃들의 기도가 나의 욕심 때문에 응답받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닌지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다윗의 고백이 여 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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