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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속상할 때 부르는 노래 (시 1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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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잡지사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일상적 삶에서 오는 나쁜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묻는 의견 조사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그 질문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속상할 때 어떻게 하는가」
20대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1)술을 잔뜩 마신다(잔뜩 취하게)
2)디스코텍에 간다(진땀날 때까지 흔든다)
3)노래방에 간다(목이 쉬도록 소리지른다)
4)문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 한다.
5)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만난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30대나 40대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1)술을 마신다.
2)무조건 집을 뛰쳐 나간다.
3)드라이브를 한다.
4)책을 본다.
5)친구를 만난다.
6)노래방에 간다는 것 등입니다.
20대나 40대가 주로 노래방에 가서 많이 불렀다는 노래는「소양강 처녀」가 제일 많았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당신이 선택한 그 방법으로 속상한게 풀렸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단 한 명도 속이 풀렸다든지 상한 감정이 그런 방법으로 치유됐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예를 들면「밤새도록 술 마시고 속쓰려 죽을뻔 했다」,「밤새도록 술마시고 다음날 해장국 먹느라 돈만 들어갔다」,「노래방 가서 소리지르고 노래부르다 이비인후과 신세졌다」는 등 자신들이 선택한 방법이 자신의 감정을 치유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않았다고 응답했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당신이 선택한 방법가운데 어느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를 만나서 속을 털어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당신은 그런 친구를 가지고 있느냐 있다면 몇이나 있느냐」라는 것이었는데 9

2.5%가 그런 친구가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요즈음 우리 국민들 가운데는 이일 저일로 속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혁바람,사정바람에 금융실명제,그 외에도 사업이나 직장문제,직업선택,배우자선택,자녀문제,생활문제 등 속상할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 상황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본문에 나오는 시인의 대답이 우리의 태도를 결정하게 해줍니다.
한마디로 주님을 바라보고 거기서 길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외아들인데다가 아버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어머님 슬하에서 성장했습니다.어려서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싸움이 붙게 되면 저는 언제나 얻어 맞고 터지는 쪽이었습니다.네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주먹 센 형제들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저 자신의 주먹이 약했기 때문이고,
셋째는 주일학교에서 주일마다 싸움질은 나쁜 짓이며 남을 때리는 것은 못된 짓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주일학교에서는 걸핏하면 왼쪽 뺨을 때리거든 오른쪽 뺨도 내밀라고 가르치는 바람에 저는 동네 힘센 아이들한테 왼쪽 오른쪽 뺨 맞고 대주느라 정신 없었습니다.
넷째는 어쩌다가 주먹을 휘둘러 한 두 놈을 두들겨 패는 날이면 목사될 놈이 사람팬다고 덤비는 바람에 아이들을 때릴 수가 없었습니다.그러다보니 걸핏하면 싸움에 지고 돌아오는 패잔병처럼 얻어 맞고 집으로 돌아올 때가 많았습니다.그러나 얻어 맞고 돌아올 때 그냥 돌아오지 않습니다.저는 어려서부터 주먹은 작았지만 목소리는 컸습니다.큰 소리로 악을 쓰며 온 동네가 떠나가라는듯 울면서 돌아옵니다.
집에는 어머님 밖에 안계십니다.그러니 지면「엄마…」를 부릅니다.「엄-마」
라고 절규하는 그 소리속에 나의 한과 억울함과 갈망이 다 들어있습니다.
어머님은 악을 쓰며 울고 돌아오는 나를 꼭 껴안아 주시고 치마자락으로 눈물과 콧물을 닦아 주셨습니다.그리고 단 한마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울고나서 시원하겠다”
저는 어머님의 그 한마디 “울고 나서 시원하겠다”라는 말의 뜻을 시편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인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소리를 지릅니다.“나는 원통합니다.나는 억울합니다.내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며 소리높여 기도를 드립니다.그리고 하나님께 드린 그 기도와 응답 때문에 위로와 소망을 갖게 됩니다.
시편 143편 4절에서 시인 다윗은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그리고 자신이 속상할 때 어떻게 기도했으며 무엇이라 노래했는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 속에서 그 내용을 찾겠습니다.

1.주를 묵상했습니다.
5절을 보면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라고 했습니다.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깊이 묵상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날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신 일이며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신 일 그리고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행사를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상한 마음과 곤경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속상할 때 떠들고 폭음하고 설치지 않고 “묵상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바로가 보낸 기병대의 추격을 받게 되었습니다.당황한 이스라엘 백성이 술렁거리며 자기들을 이끌고 나온 모세를 원망하며 집단 행동에 돌입할 태세였습니다.
그들에게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보다 침묵이 더 무섭습니다.떠드는 사람보다는 침묵하는 쪽이 더 힘이 있습니다.
시인은 속상할 때 주님의 행사를 묵상했습니다.이것은 요가형태나 명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주님을 생각하고 그 행하신 능력을 묵상한 것입니다.즐거울 때나 괴로운 때,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기쁠 때나 속상할 때,그 때마다 주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상한 영혼이 치유받는 비결입니다.

2.주를 향하여 손을 폈습니다.
6절을 보면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5절에서 생각하고 묵상했다는 것은 내적 행동이며 정신적 태도입니다.그러나 6절에서 손을 폈다는 것은 외적 행동이며 결단을 의미합니다.
손을 폈다는 것은 자신의 무능력과 무소유를 의미합니다.다시 말하면 주님을 향하여 “저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저는 힘이 없습니다”라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못난 척하고 사는 사람,없는 체하고 사는 사람,모르는 체하고 사는 사람들보다 잘난 척하고 있는 체하고 아는 체하고 사는 사람이 10배 이상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신앙생활도 “나는 믿음이 부족해 나는 믿음이 모자라”라며 사는 사람보다 “나는 믿음이 좋아,나는 신앙이 제일이야”라며 사는 사람이 훨씬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시인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그래서 그는 주님께 자신의 손을 펴 보인 것입니다.
현대인은 자신들의 손으로 과학문명이라는 거대한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그리고 인간은 무엇이나 해낼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습니다.
미국 예일대학교 신학부의 교수였던 헨리 나웬(Henri J.M.Nouwen)이 쓴「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Healer)라는 책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 네 왕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전세계를 탐색하여 특수한 과학을 배운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왕궁을 떠났습니다.오랜 세월이 지난 후 네 왕자들은 다시 한 곳으로 만나 서로 배워온 과학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첫째 왕자:나는 한 조각의 생물의 뼈만 있으면 거기에 붙일 근육을 만드는 과학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둘째 왕자:나는 뼈에 근육이 붙어있다면 피부와 털을 돋아나게 하는 기술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셋째 왕자:근육과 피부와 털만 있으면 나는 사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넷째 왕자:나는 사지만 완성되어 있다면 거기에 생명을 불어 넣는 기술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네 형제는 자기들이 배워 온 기술을 실험하기 위해 산 속으로 들어가 사자의 뼈 한 개를 줍게 되었습니다.사자 뼈인줄 알지 못하는 그들은 그 뼈에 근육을 붙이고 피부와 털이 돋게하고 사지를 만들고 그리고 생명을 불어 넣었습니다.그러자 사자후를 토하며 사자가 일어나더니 그 큰 입을 벌리며 네 형제들에게 달려들었습니다.발톱으로 할퀴고 날카로운 이로 물어 뜯어 죽인 후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자신들의 능력이나 과학문명의 힘을 믿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경고인 것입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나는 주를 향하여 손을 폈다”고.
저는 미국 거지와 한국 거지의 차이점을 관찰해 보았습니다.
다른 점은 미국 거지는 영어로 빌어 먹고 한국 거지는 한국 말로 구걸한다는 것입니다.신호등 앞에서 차를 타고 기다리고 있노라면 미국 거지들이 다가와 1달러만 달라고 손을 벌립니다.영어로 말입니다.
미국 거지와 한국 거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둘다 무엇을 달라고 할 때는 손을 펴서 벌린다는 것입니다.주먹 쥐고 구걸하는 거지는 없습니다.
주를 향하여 손을 폈던 시인의 마음 속엔 주님이 나의 필요를 채우시고 상한 내 마음을 위로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 손을 편 것입니다.
6절 끝을 보면 주님을 향하여 손을 펴는 마음의 태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그것은 “주를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본문을 묵상하면서 푸른 초원에서 아버지와 네 살난 딸이 놀이를 즐기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10미터쯤 떨어진 곳에 아버지가 서 있습니다.사랑하는 딸을 향해 부릅니다.「진아…이리온…」이 말이 떨이지자 딸이 두 팔을 흔들며「아빠…」하고 달려 옵니다.기우뚱 기우뚱 넘어지려고 합니다.아빠가 잽싸게 달려가 사랑하는 딸을 덥썩 들어올려 품에 안고 얼싸 안아줍니다.
속상한 사람들,참담한 아픔으로 한숨 짓는 사람들,그리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번민하는 사람들,그뿐입니까.자신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아픔이나 상한 심정을 노출시키지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떤 노래를 부르십니까
그때 여러분은 누구를 향하여 손을 펴고 달려갑니까
시인은 고백합니다.
“그때 나는 주님을 묵상하고 생각합니다.
그때 나는 주를 향해 손을 폅니다.
그때 나는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합니다.
그때 나는 주님을 노래하고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라고.
넘어진 아이가 엄마를 부르듯,속상한 사람들이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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