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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들 (요 1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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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입성하시고 난 이후 유월절을 지키러 올라 왔던 헬라인 중의 몇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만났을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때가 가까왔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때가 왔다는 말씀은 복음서에 있어서 중요한 내용입니다.

 <본론>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맨 처음으로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에도 육신의 모 친 되시는 마리아가 술이 떨어졌다고 하자 답변하시기를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 니하였나이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서 여기 저기에서 그런 대답들이 나옵니다. 예수 님이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지적하시는 사실들 때문에 유대이들과 많은 충돌이 있 고, 특별히 유대인들 중에 권세 잡은 자들이 예수님을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장면들 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한고로 예수님께서 그들의 손에서 빠져 나가시니라' 이렇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그러던 것이 드디어 '이제 때가 이르렀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 는 것입니다.

때가 이르렀다는 이 말을 전후하여 중요한 내용이 기록됩니다. 헬라인들이 예수님 을 찾아온 것을 보시고는 '이젠 때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하 시기 위한 때인가를 말씀하시면서 한 알의 밀알 이땅에 떨어져 썩어야 열매를 맺 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헬라인들의 온 것을 보고 '때가 되었 다!'는 말을 한 것은 그리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인도하실 때에 이미 말씀하셨 던 약속을 이루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12:1-3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 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 라" 예수님은 바로 이 약속을 이루러 오신 분이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으로 하여금 이 제 이브라함이 얻은 바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 엘 민족에게 먼저 오시고, 그리고 나아가 이방에게 전파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 존재이며, 얼마나 생명과 진리에 대하여 소경되며, 죽은 자와 같은가 하 는 사실들을 가장 잘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민족 중에서 한 민족을 특별히 선택하 셨는데 바로 유대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더 이쁘하거나 사 랑해서, 또한 다른 민족과 구별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즉 다른 민족과는 다른 이익과 권리를 주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잘 증명시키기 위해서 하나의 샘플로 채취하셨다 고 생각하시면 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훨신 많은 기적으로 간섭하십니다. 역사와 사건 과 모든 국가의 통치 영역에 까지 일일이 하나님께서는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서 그들에게 기적이 있고, 하나님의 분명한 간섭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제 예수님께서 친히 오셔서 저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저들 이스라엘 만이 아 니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예정하셨던 모든 당신의 자녀들을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여 건지시는 것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같은 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시느냐 하면 그것이 바로 본문 12:24절에 언급하시고 계시 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히는 방법으로 하신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일대기와 사건을 연대 순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 와 뜻을 재정비해서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재배열한 책입니다.

요한복음 10장부터 12장에 이르기까지 3단계의 구원에 대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0장은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으로 넘어 들어가서 양들을 해치는 자들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강도와 절도들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으로 넘어들어가서 양들을 해롭게 하며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영 원한 진리와 생명을 알려 주지 못하고, 죽은 자들로 화장하고 치장 하는 것에 불과 한 세상의 종교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사상들을 의미합니다. 자신들을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치장을 할 수는 있으나 생명을 돌이키거나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일에 는 도움이 되지 않는 세상의 종교들을 그렇게 비유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을 접할 수 없는 자들을 이 끌어 내시기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버릴 것을 14절에 먼저 시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 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선한 목자가 그의 양떼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 저들을 진리와 생명의 자 리로 인도할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요11:25절에 보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는 말씀을 하시고는, 그 말씀을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려내십니다. 이렇 게 함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사망과 죽음을 정복하실 것을 나타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 어떤 의미에서 한 단편에 불과합니다.

요12장에 이르면 드디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대로 한 알의 밀알로 나타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12장에 걸쳐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도 설명하시고, 또 한 부활이요 생명이라고도 설명하시다가 마침내 한 알의 밀알로 비유하시는 것입니 다. 요12:23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고 하시고는 이어 24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 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은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가와 구원의 핵심이 되는 방법과 원리와 그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에게 얻어지는 것들을 여기에 서 많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구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원에 대하여 신자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공통 분모를 말한다면, 이제 나는 지옥갈 자리에서 면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 근거로서 주님께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을 붙잡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정도로는 아직도 우리의 구원에 대한 적극적인 면들을 많이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에 3대 절기가 있습니다. 부활절과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입니다. 그런 데 여러분들은 여기서 어느 절기를 가장 기쁘게 맞이하십니까 보통 성탄절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론 이유가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에 교회 에서 구제품을 주었던 기억도 있고 방학이 오는 것도 한 이유겠고, 연말 연시와 보 너스가 나오는 것이 한 이유일런지 모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사실에 대 하여 최고의 기쁨을 가지는 것일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아무리 기뻐해도 부족합니 다. 그러나 성탄절에 기뻐한 것에 비교해 볼때 부활절은 어쩌면 그 이상으로 기뻐 해야 될 절기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서구 사회에서도 크리스마스를 더 큰 명절로 지냅니다만 그건 사회 풍습이 그런식으로 물들어져서 그런 것이고, 정작 기독교의 절기를 따지자면 부활절이 가장 큰 명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절은 우 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보다 훨신 더 큰 절기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절이 상당 히 작은 명절로 약화된 느낌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구원에 있어 어느 한 부분을 약화시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원에 관한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요12:24절에서 말씀하신 '한 알의 밀알이 썩어 서 맺는 많은 열매'란 대단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예수님은 자신을 첫열매라고 이야기 하셨습니 다. 첫열매란 '유일한 열매'와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유일한 열매라면 그것 하나 를 말하는 것이지만, 첫열매는 많은 것 중에서 순서상으로 맨 앞에 있는 것을 말합 니다. 뒤에 맺히는 것과 그 질과 등급에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실 때에 니고데모와 이런 대화를 하셨습니다. 요3:3절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러자 니고데모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한 번 태어났다가 다시 모태에 들어갑니까' '아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 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여기가 중요한 대목입니다.

구원의 문제를 설명할 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구원이 우리라는 모습이 이지러지고 어디가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거나 변경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 해야 됩니다. 그것은 이런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개에게 말을 가르쳐 본적이 있습 니까 개는 아무리 해도 개 짖는 소리밖에 못 냅니다. 개는 아무리 쉬운 말이라도 배우질 못합니다. 그러면 말이나 나귀나 돼지에게 가르치면 어떻습니까 물론 못합 니다. 성경에서 죄인이라는 뜻은 바로 그렇습니다. 영적인 면으로 따질 때 말하자 면 인간은 개나 돼지나 나귀나 지렁이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타락해서 분리되자 우리는 전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셈 입니다.

인간이란 돼지나 개에게 사람이 아무리 말을 가르쳐도 가르칠 수 없는 것과 같이 도무지 구원의 가능성이 없었던 존재였습니다. 물론 개나 돼지에게 서커스는 가르 킬 수는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세상에서 재주있는 사람이라, 즉 박사라 석사라 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개나 돼지같은 자를 어떻게 제대로 만들 수 있습니까 바로 이 문제를 위 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새로운 다른 종자를 만드 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개와 돼지같은 우리를 다 모아서 한꺼번에 십자가라애 구덩 이를 파고 같이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씨가 되셔서 하나님 께서 계획하셨던 인류를 다시 출생시키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한 알의 썩는 밀알입니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옛날의 내가 아닙니다. 옛날의 나와는 다른 나입니다. 그런 데 무엇때문에 이것이 혼동되느냐 하면 새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여전히 옛 날의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가 바뀌어야 될 텐데 외형적으 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물질계에서 바뀌는 것이 없고, 정신력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자꾸만 과거의 연속으로 밖에는 생각을 하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드디어 하나님의 음 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며,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하면 뒤에서 뭔가가 당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아주 딴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 데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이 물질계가 연속되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에 대해서 잘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큰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 하면, 어느날 보니 까 내가 집사가 되어있을 뿐 아니라 밤낮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던 사람이 지금 예 배당에 나와 앉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변화를 잘 모릅니다. 오히려 옆에서 압니다. '저엔 주일날 뭐 하자 고 이야기 할 필요 없어. 동창 명부에서 빼버려. 술 먹자고 그러면 기도하자고 그 러고 웃기는 애야. 아주 딴 동네가 되었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본인은 잘 모릅 니다. 오히려 옆에서 더 많이 느낍니다. 본인은 어디가 변했는지 모릅니다. 속사람 이 살아났고, 생명 안에서 싹을 내고 있으며, 꽃을 피우고 있는 줄을 본인이 더 모 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가장 좋은 설명거 리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어떤 전제로 이야기 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롬6:23절을 보십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 니라" 죄의 삯은 사망인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을 우리가 하나님의 은사로 받 았습니다. 은사란 은혜롭게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받을 값어치가 우리에게는 전 혀 없는데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바로 씨와 열매로 받은 것입 니다. 그 씨가 사과씨면 무슨 열매를 맺습니까 사과입니다. 밤을 심으면 밤나고, 뭐든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으므로 우리도 영 생을 얻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옛날에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죄의 종자 가 되어서, 심으면 나오는 것이 죄밖에 없으나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씨로 심고 우리를 그의 열매로 삼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것은 전부 내 것이 된 자들입니다. 믈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것과같이 하나님 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닮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롬8:29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 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들리라'고 계획하고 계셨 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 그리스도를 모델로 삼아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이 아들 을 나중에 맏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맏아들은 독자와 다르지 않습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두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독생자라고 할 때가 있고, 또 맏 아들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3위 하나님 중에서 제 2위의 성 자를 유일한 분으로서 이야기 할 때에는 독생자입니다. 즉 한 분밖에 없는 외아들 입니다. 신적인 세분의 관계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와같은 아들을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이럴때에 예수 님을 모델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와같은 작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가장 확실합니까 심으면 됩니다. 심으면 그 열매가 나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과를 만들려면 그 씨를 심으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 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맏아들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맏아들은 독자와 다릅니다. 맏아들 밑에 누가 있습니까 차남 삼남 사남...등등 그렇게 있는 것입니 다.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며, 무엇으로 부르셨는가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구원이란 대단히 놀라운 것입니다. 죄 가운데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용서 하고서 '와라, 그리고 품에 안기면 된다'가 아닌 것입니다. 죄악 가운데서 거집어 내어서 구덩이에 넣어 파묻고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난 것입니다. 이제 옛날 은 딴 동네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내가 너희 죄악을 기억도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옛사람을 없애고 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딴 사람이 된 것입니 다. 고후5:14-15절을 보십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 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 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산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니까 이 말씀처럼 다른 종자가 살아난 것입니다. 그 종자의 모델은 예수 그리 스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산 것입니다. 이어서 고후5:16-17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니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 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 었도다" 다른 종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대로 보지 마십시오. 육체는 아직도 우리 에게 연속성이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이후에 육체의 변화는 없지만, 우리의 영으로는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게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옛날에는,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죄를 짓는 자들이요, 죄밖 에 지을 줄 모르는 자들이요, 죄의 권세아래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해 서 개나 돼지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 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 부분을 베드로후서 1:2절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 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견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냥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 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려는 신의 성품과 신 적인 모든 것을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그것을 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사람을 바꾸어 놓고, 그 다음에 시켜야 됩니다. 바로 그런 이 야기입니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존 재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벧후1:4절을 보십시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 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종족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종족입니다. 이런 의 아심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동등하단 말인가 하는 의아심 말입 니다. 그러나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뛰어 넘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높아도 피조믈이요, 주님은 아무리 낮아져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관계가 뒤집힐 수 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였튼 성경은 우리를 무엇으로 불렀으며, 어디로 부르고 있 느냐 하는 데서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는 훨신 더 놀라운 표현을 쓰고 있다 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 가시면 이부분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 버지라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그것을 죄목으로 걸어서 신성 모독죄로 처형하려고 합 니다. 그러자 34-36절에서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의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 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였 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하나님이 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대체 어떻게 대접히고 있습니까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 운 사실입니까 바로 이 부분을 우리 신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신앙 생활에 손해를 보는 자라고 오해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냐를 제대로 아는 것만큼 우리 신자들에게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무 엇으로 부름을 받았느냐를 아는 것이 스스로를 추스리는 좋은 지식이 될 것입니다 요일3:1절을 보시겠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이 말이 갖는 뉘앙스를 아시겠습니까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 셨는가를 음미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지금 같은 항렬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맏아들이시고, 우리는 그의 형제입니다. 예 수님께서 우리에게 대해서 '너희는 내 친구다'라는 표현을 쓴적이 있음을 아십니까 도대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이 어느 수준에로의 초대인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수준에 와있습니다. 개도 사람보다 나은 것이 있고, 사람도 개만 못한 자가 있듯이 우리가 오늘 개만 못할 수 있습니 다. 그러나 그래도 하여튼 사람입니다. 개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 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제는 분명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로 태어 난 자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 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그로 인해 깊은 감사와 감격과 자존심 을 가질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 라는 이름을 주셨는가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 내셨는가 어떻게 새롭게 창조하셨는가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엡2:10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씨가 되어 만들어진 열매인 것입니다.

그래서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달라진 것입니다.

 <결론>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시고 약속하셨듯 이 '네 본토 친척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아비였던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새로운 종족을 만드는 머리로서 아브라함을 불러 내시 고,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복을 얻게 하시는 약속대로 이제 얼마든지 그의 자녀 를 모아 새로운 종족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즉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당신의 뜻과 계획과 인도 로 불러 내시고 지정하시고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주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피조물이요 종족인 신자들은 차이와 위 아래가 없이 동일 한 권능과 사랑과 영광과 고귀한 성품으로 우리를 재창조해 내신 것입니다. 예전것 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새로운 피조물로서 이제 여러분들에게 허락된 놀라운 구원 의 축복들을 발휘하시며, 쓰시며, 성장시키시며, 충만케 하는 일만이 여러분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감사가 있어야 되고, 축복과 기쁨으로 이 주어진 나머지 생애를 것어가야만 할 것입니다. 옛 생애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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