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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대인들의 잘못 (롬 0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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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에서는 주로 이방인들의 죄를 지적하였습니다.즉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썩지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어 버린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그러나 2장에서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즉 유 대인들에 대한 질책의 말씀입니다.그들의 신분은 17절 이하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 니다.

 유대인들은 ' 율법을 의지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들입니 다.' 율법의 교훈을 받은 자들입니다 '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들입니다 '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들입니다.-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말씀입 니다.따라서 이들은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들이며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야 할 자들이며 어리석은 자들의 스승이 되어야 할 자들이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로마서 2장은 바로 이러한 유대인들,먼저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 대한 책망 의 말씀인 것입니다.즉 지금 우리들을 향하여 주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 입니다.

 이들의 잘못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그들은 형식적이고 습관적이고 타성에 젖은 종교인으로 전락되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기쁨과 겸손과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불만 과 교만과 무기력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이제 우리는 지금부터 로마서 2 장을 통하여 유대인들의 잘못을 살펴보게 될것입니다.유대인들의 잘못과 아울러 나 의 잘못,우리의 잘못,우리 교회 공동체의 잘못을 함께 발견하는 시간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첫째로,남을 판단하는데 있었습니다.

 1절 말씀에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라는 헬 라어 원문은 <호 안트로페> 라는 말인데 이 말에는 안타까은 호소가 스며져 있습니 다.이 말을 다시 표현하면 <오 남을 판단하는 모든 사람이여> 라고 번역할 수 있습 니다.즉 바울은 지금 단순히 유대인을 향하여 책망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그들에게 호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무론 누구든지 네 가 핑게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네가 너를 정죄 한다는 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스스로 자기가 자기의 무덤을 판다는 것인데 그 까닭은 바로 남을 판단함에 있다는 것입니다.남을 판단하는 유대인들이 잘못이 무엇 이겠습니까 그 까닭은 두가지에 있습니다.

 ' 판단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이라는 것입니다.판단과 심판이 하나님의 고유권한이라 는 말은 판단의 기준이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사람의 판단은 모두가 상대적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절대적입니다.우리의 교회공동 체가 아주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유대인들의 잘못을 반복하거나 답습하지 않 는 일입니다.나의 기준을 가지고 나의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거나 독단적으로 일을 하여도 안되는 것입니  1 다.100사람이 있으면 100사람의 판단이 있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 을 인정해야 합니다.그리고 서로 상대적이라는 것도 인정하여야 합니다.그리고 겸손 하여야 합니다.본문의 2절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이런짓을 일삼는 자들 에게는 하나님께서 마땅히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자기도 같 은 짓을 하면서 남이 그런짓을 한다고 심판하는 자가 있는데 그런자가 하나님의 심 판을 면할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말슴입니다.따라서 우리들 은 나의 판단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판단을 앞세워야 합니다.

' 자기가 판단하는 것을 결국 자기도 같은 일을 범한다는데 있습니다.그래서 주님 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보기전에 네 눈에 있는 대들보를 보라고 자신을 먼저 살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문제는 너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문 제는 나입니다.내가 회개하고 내가 바르게 살고 내가 나의 의무를 다하며 나의 삶에 충실한 사람은 남을 판단할 시간이 없습니다.결국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 도 보잘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물론 사랑하는 마음과 안타까은 마음으 로 좋은 충고는 우리가 할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본문의 유대인들은 독선과 편견 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자기도 독같은 죄를 지면서도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 는 것이 바울의 지적입니다.이들의 두번째 잘못은

회개하지 않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의 근간은 4절 후반부의 말씀대로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입니다.그러나 유대인들은 고집과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을 가 졌습니다.하나님의 판단은 그의 인자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이방인도 사랑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하나님은 이방인들과 죄인들까지라도 용납하여 주셨는데 유대인들은 용납하기는 커녕 정죄하고 당을 만들고 차별하였습니 다.하나님의 판단은 오래 참으심에 있는데 유대인들은 인내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만 들어 놓은 고집과 아집과 편견속에서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우리는 본 문 5절의 경고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됩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우 리의 삶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삶이 된다면 우리는 매우 불행한 사람들입니다.고 집과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역시 우리는 불행한 사람들인 것입니 다.어제밤에는 우리가 바로 이곳에서 무릅을 끊고 회개의 은혜를 직접 체험하지 않 았습니까 저는 어젯밤에 하나님께 우리교회를 참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 다.그 이유는 우리안에 회개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회개하는 교 회는 희망이 있습니다.회개하는 심령은 반드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6절의 말씀대 로 하나님은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 실 것이며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는 것입니다.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셨 습니다.그러나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말 씀하여 주셨습니다.-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공의로운 약속입니다.이 약속을 굳 게 믿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참고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평강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2 유대인들의 세번째 잘못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있습니다.율 법이 없이 범죄한 사람들은 율법이 없이 망하게 될 것이고 율법이 있고 범죄한 사람 들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율법이 없는 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양심이 기준이 되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그러 나 우리들은 율법을 가지고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13절의 말씀을 보면은

하나님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하심을 얻으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 말씀을 잘 이해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행함으로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그러나 그 믿음은 반드시 실천 을 동반하는 믿음입니다.산믿음은 반드시 구체적인 삶속에서의 행함을 동반합니다.

상태의 변화가 온다는 말씀입니다.그런데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야고보 장로의 지적대로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었습니다.종교의 행위는 있는데 삶의 변화 는 없었다는 것입니다.예배의 행위는 있는데 거기에 감격이 없고 기쁨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도리어 이들은 악을 행하고 죄를 짓는데 더욱 빨랐습니다.21절 이하를 보시기 바랍니다.

 도덕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 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우리가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졌을 때,우리의 상태가 변하지 아니할 때,하나님 의 이름이 이방인중에서 모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이러한 일은 지금 우리 안에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우리의 믿음은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속 에서 드러나는 믿음이어야 하며, 우리의 신앙은 죽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아니 라 살아 있는 하나님을 섬기는 산신앙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대한 예수교장로회 교회학교 주제가 바로 말씀과 삶입니다.말씀과 삶은 결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삶은 희망이 없습니다.왜냐하면 피할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죄 의 댓가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삶이 없는 말씀은 추상이고 감상이며 형식에 지나지 않습니다.삶이 없는 말씀은 공허하고 생명력을 가지지 못합니다.우리 는 믿음을 갖되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삶을 변화시키는 믿음을 가져야 만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이번 선교대회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우리는 여기에서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은혜를 사모하여야 합니다.삶의 변화가 없는 은혜는 값싼 은혜이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도 가릴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하여야만 합 니다.이번 기회에 우리의 심령이 변하고 우리의 교회가 변화되는 역사가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말 그대로 옥토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유대인 들의 신앙은 죽은 신앙이었습니다.그들은 삶의 변화가 없이 화석화된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화석화된 신앙이라는 말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신앙을 가르킵니 다.화석은 몇 천년,혹은 몇 만년,혹은 수 십,수 백 만년전에 형성된 돌로써 그 화석 을 보고 그 시대를 연구하는 돌입니다.화석은 견고하게 굳어져서 절대 변하지 않습 니다.누가 뭐래도 변하지 않습니다.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변한 것은 하 나도 없습니다.저는  3 모태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간혹 그러한 사람을 발견하고 참 신기하게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1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다고 생각해 보십시요,어찌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변화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변화되기위해 애써야 합니다.변화되기를 중지한 사람은 영적으로 죽 은 사람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그 날 까지 성숙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 까지,온전한 사람으로 서기까지 성장과 변화의 삶을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작년 보다는 올해가 올해 보다는 내년이 더욱 나아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더욱 겸 손해지는 삶,더욱 봉사하는 삶,그리고 더 잘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그리고 우리 의 생활도 점점 나아져야 합니다.십일조도 점점 더 많이 내는 축복 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불행히도 본문의 유대인들의 신앙은 멈추어 버린 신앙,화석화된 신 앙이었습니다.따라서 그들은 어쩔수 없이 형식적인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잘못 네번째입니다.즉 형식적인 신앙을 소유하였다는 말씀입니 다.본문 25절 이하에서 이들이 받은 할례의 형식적인 면을 지적하고 있습니다.유대 인들의 할례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하는 아주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그 들은 스스로를 할례받은 백성으로 자처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25절의 말씀을 보십 시요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겉모양이 중요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고 마음의 중심이 중요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1절에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 님은 할례의 겉모양을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할례자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 님이신 것입니다.제가 본문의 28절과 29절의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읽어 드리겠습니 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겉모양만 갖추었다해서 참 유대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몸에 할례의 흔적을 지녔다고해서 참 할례를 받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유대인의 속마음을 가져야 진정한 유대인이 되며 할례도 법조문을 따라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람의 칭찬을 받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그러나 그 칭찬은 상대적인 칭찬이고 한계적인 칭찬입니다.상대적이란 말은 이 사람에게서 의 칭찬이 저 사람에게서는 원망과 저주가 될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한계적이란 말 은 오늘의 칭찬이 내일의 원망이 될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사실이 그렇고 우리늬 현실이 그렇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칭찬은 절대적이며 영원한 칭찬입니다.사람에게 서가 아닌 하나님에게서의 칭찬을 받는 비결은 아주 간단합니다.그것은 형식적인 신 앙생활을 청산하고 마음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유대인들의 잘못을 우리의 신앙의 삶속에서 결코 재현하여서는 안 될것입니다.남을 판단하는 것,고집과 회개치 아니함,행함이 없는 믿음,형식적인 신 앙을 가지고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도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과 축복도 받 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하나님께 칭찬받으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 기를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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