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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시민의 생활 (빌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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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발트해 3 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가 50년이 넘는 오랜 인내의 투쟁끝에 독립을 얻게 되었다.

 지구상에서 나라 없는 서러움을 가장 많이 경험한 민족은 이스라엘이다.

 그 다음 이들 발트 3개국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일들은 우리들도 얼마전에 절실히 경험한 일들이다.

 새로 독립하는 발트의 나라들을 통해서 국민다운 국민 시민다운 시민의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세계는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좀 야릇한 것 같으다.

오래 전에 독립을해서 나라를 찾았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 안에 크게는 남북을 가르는 큰 선을 긋고 또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특정한 지역간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감정이 대립되 있다.

 정작 우리 민족을 괴롭혔던 나라들에대한 감정 같은 것은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 같으다.

 이 시점에 오늘의 본문은 너무도 귀중한 진리를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말씀의 제목을 본문에 의거하여 "천국 시민의 생활"이라고 했다.

 1,시민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말을 사용했다.

 "생활하라" 는 단어이다.

 "시민으로 책임을 다하라" 박 윤선 "시민으로 산다" 이 상근 "시민된 신분으로 살라" (Vincent .M.R.) "시민으로 너의 행실을 지키라" (Lighfoot)

이 말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책임 있는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당시 이 빌립보는 로마의 많은 위성국들 중에 특별하게 로마의 시민권이 주어졌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의 시민된 것을 큰 자랑거리로 알고 살았 던 것이었다.

 그래서 빌립보 사람들은 헬라문화에 적응할려고 힘을 기우렸고 또 로마 시민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을 역사에서도 그리고 성경에서도 증명이 되고 있다.

 행16;20-21절에 사도 바울이 처음 빌립보 지방에 복음을 전하려 했을때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잡아 그들의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로마의 시민된 것을 그렇게 자랑으로 알고 책임감 있는 생활을 다하면서 사는 것처럼 이제는 그리스도 의 복음으로 천국의 시민이 되었으니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빌 3;20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또 히브리서 기자도 의미 있는 말을 했다.

히11;9-10 절에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이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이는 우리들의 시민권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들이다.

우리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여기는 잠시 나그네로 또 하늘의 전권 대사격으로 잠시 다니러 왔을 뿐인 것이다.

 세상에도 국민된 자는 국민된 자의 의무가 있는 법이다.

 천국민도 마찬가지다.

천국민은 천국민의 의무가 잇는 것이다.

천국민은 천국의 법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천국 시민의 생활은 어떤 것인가 이 천국민의 참된 생활을 본문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27절에 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라고 했다.

 2,하나 (몸 = 마음) 27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생활을 볼때나 또 내가 너희와 떠나서 소식으로 듣을때에나 가릴 것 없이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의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들의 의무란 누가 본다고 해서 하고 누가 나의 하는 일을 보고한다고 해서 마지 못해서 한다면 이는 참된 의무라고 할 수는 없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자기의 의무 즉 천국 시민의 의무를 다 하라는 것이다.

 그 의무 중에 첫째가 "일심으로 복음의 신앙 위에 굳게 서라"는 것이다.

 여기의 일심이란 말은 마음과 몸을 함께 말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들의 마음과 몸이 함께 복음의 신앙위에 굳게 서야 한다는 말이다.

 천국민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사람이 어떤 기초위에 서 있는가이다.

미국의 법이 설사 좋다손치더라도 우리 대한민국 사람이 미국법을 지키면서 살 순 없는 것이다.

 그 국민은 그 국민의 법 위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게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21)하시었다.

 그런데 오늘의 크리챤들은 세속사회에 합당히 살고  시대의 유행에 민감하게 살고  인간의 정욕을 억제치 못하고 행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의 전공은 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세상적 전공과는 관계 없이 우리 모두는 복음의 신앙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내 가정이 복음위에 서 있어야 하고 내 직장도 복음위에 서 있어야 하고 내 전공도 복음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심이란 두번째 의미는 개개의 일심보다는 시민의 일심을 말한다.

로마가 거대한 나라였던 것 이상으로 천국은 더 큰 나라이다.

 이 큰 나라의 시민된 자는 시민된 자들간에 일심이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이 천태만상이라 하나가 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그 하나가 되는 것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으로 해야함을 말함이다

3,협동 27절을 다 같이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ㅡㄹ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멘 !

여기에 협력이란 말이 있다.

 얼마나 멋있는 감동적인 말인가

천국시민의 생활 중에 가장 멋있는 삶이 바로 협력이 아닐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여기에 쓰여진 협력이란 단어는 운동경기장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협력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축구경기를 들 수 있다.

축구경기는 한팀에 11명이 경기를 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후보 선수를 기용할 수도 있다.

 다른 경기들도 같지만 이 축구는 각자의 포지션이 다 다르다.

문직이가 있는가하면 풀백이 이 있고 또 그 앞에는 링커가 있고 또 최 전방 공격수가 있다.

 서로가 각기 다른 위치에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면서 또 서로를 위한 도움의 연결이 잘 되어야 승리를 할 수가 있는 경기가 바로 축구인 것이다.

 우리 천국 시민이들이 모여 살아가는 교회가 그렇다.

우리 모두는 다 직임이 다르다.

우리들의 은사도 다르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다 같다.

그리스도를 위한 승리 !

그 승리를 위해서 우리는 복음의 신앙으로 협력을 해야 한다.

복음의 신앙 !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삶에 협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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