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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한 생명 (요일 0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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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생을 위한 인간의 노력(구속에서의 탈피)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이가 어리면 어릴 수록 그러한 생각이 더 한데 그것은 죽음에 대한 것이 실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커지면서 주위에서 친구들이 가족들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아 나도 죽는 것이구나 나도 죽어가는 목숨이구나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우리들에게 있는 죽음의 아픔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약으로 도 치료할 수 없는 아픔이 아닌가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결국 죽은 것인데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하면서 이왕 죽을 것이면 죽음에 반항이나 해 보고 죽자라고 말하면서 인간은 태어난 이상 빨리 죽는 것이 좋다.그것이 신에게 거역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자유에 자신을 던져라(사르트르) 행동에게 던져라
(까뮈)신에게 던져라(야스퍼스)는 등의 많은 말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재로 우리의 생활을 살펴볼 때 많은 사람들은 저기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아픔을 느끼면서 자신을 죽음으로 이끈 나는 절망과 허무함 속에서 그것에 저항하기 위해서 수 많은 곳에 자신을 던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들은 먹는 것에 자신을 던져버리는 친구들이 있는가하면 어떤 친구들은 오락에 어떤 친구들은 자신이 감당 할 수 없는 술이나 담배나 이성이나 심지어 마약과 같은 것에 자신을 던져 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텔레비젼에 보니까 중학생의 2%가 진해제라는 약을 통하여 이러한 것을 극복해 보고자 한다는 것이었으며 고등학생의 4%가 그러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본드나 마약과 같은 것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허무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무가치하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다 다르게 보이고 보다 다른 것을 경험해 보고자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얼굴을 예쁘게 치장도 해보고 옷을 멋있는 것으로 바꾸어 보기도 하고 먹는 것을 멋있게 차려보기가도 하고 머리 스타일을 바꾸어 보기도 하고 자신에게 의미있는 날을 찾아 기억하기도 하면서 보다 가치있는 것을 자신의 모습속에 부여해 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2.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

이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대부분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해결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우리들 속에 있는 죽음을 향해가는 이러한 아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약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 할 수 없는 이 허전의 공백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요한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면서 우리들에게 바로 그러한 영원한 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하기 위해서 편지를 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약이나 환각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님이 그러한 공허감을 해결해 주시는 즉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주님을 만난 후 그러한 공허감에서 해결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야곱은 그러한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삼촌으로부터 속임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시간안에 있었기 때문에 7년을 수일 같이 여길 수 있는 즉 시간을 초월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흔히 오락이나 영화를 보면 시간이 가 가지만 하기 싫은 공부를 하면 그렇게 시간이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속에 시간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베드로는 주님을 만난 이후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주님께 있는데 내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라는 고백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버렸지만 베드로만은 그 영생의 맛을 보고 주님을 따랐던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부자 청년과 같은 사람들은 영생을 얻고 싶었지만 제물을 버릴 수 없어서 그러한 영생을 얻지 못했던 것을 보면 어쩌면 이러한 것은 주님을 모심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시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성경 많은 곳에서 영생을 묻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는 길은 바로 주님을 모시는 길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29절에서 주님은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말씀하셨으며

마태복음 25장 46절에서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사가람들에게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으며

마가복음 10장 17절에서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묻는 젊은 이에게 21절에서 대답하시기를 네게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거스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10장 25절에서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는 율법사에게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가서 너도 자비를 베풀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볼 수 있다.

요한 복음 6장 27절에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리가고 말씀하셨던 것을 볼 수있으며 이어 41절에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볼 수 있으며 이어 28절에서는 베드로와의 대화에서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내가 뉘게로 가오이이까라고 말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3.우리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오늘 우리 주님은 이러한 것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참으로 있어야 할 것은 음식도 아니요 마약도 아니며 권력도 아니며 바로 주님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주님은 바로 생명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어야할 참 양식은 바로 우리 주님이라는 것이며 우라 안에 주님이 있을 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주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있고 마약이 있으며 돈이 있고 오락이 있고 술과 담배가 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이 우리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사람이 70년을 살 경우 잠자는데 20년, 일하는데 20년, 먹는데 6년, 노는데 7년, 치장하는데 5년, 전화거는데 1년, 담배피우는데 2년반, 누워있는데 2년반, 사람이나 차를 기다리는데 3년반,신발끈을 매는데 반년 걸린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것을 곰곰히 살펴보면 사람들에게는 보다 영원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어쩌면 하나의 영원한 명예를 추구한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이 시간과 이 공간 그리고 육체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한 것에 얽메이거난 갇혀 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빵을 먹는데 한가정에서는 싸우면서 먹고 한가정에서는 웃으면서 사랑을나누면서 정성껏 준비한 것을 먹는 것을 볼 수있는데 이러한 것또한 어쩌면 생명이 없는 가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명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있는 것이 가니라 사랑과 함께 있는 것을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게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셨는데 그것이 없으면 반은 죽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돼지와 같이 사랑이 없이 먹는 것,하나님이 없이 하는 일, 하나님이 없이 하는 공부 이러한 모등 것은 거기에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은 이러한 동물과 똑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고 무엇인가 영원한 것을 찾아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을 자는 곳 또한 짐승과 같이 우리에서 자는 것이 아니라 집을 짓고 잠을자고 일을하는 것도 짐승과 같은 노동이 아니라 그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먹는 것 또한 짐승과 같이 단지 먹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포함하고 정성을 음시에 쏟아 넣어 먹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치장을 하고 전화를 걸며 담배를 피우는 모든 것 또한 보다 멋있는 삶을 살고 보다 영원한 가치들을 부여해 보고자하는 인간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그러한 가치를 발견하고 살아가는 것이 참 의미있고 귀중한 것이구나하는 것을 발견한 사람들은 삶아을 소중하에 여기고 사랑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는 때대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무엇인가하는 회의와 좌절감에 사로잡히게도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는 삶에 회의가 느껴져 많은 것을 통하여 이러한 단순하고 한정된 시간속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아프면 약을 먹는 것과 같이 이러한 허무의 병을 치료해 보고자 많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 사람들이 단순하게 도피하는 방법가운데 한가지가 바로 마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영원한 생명을 찾은 우리

우리는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혹시 빛으로 나아가다가 빛이 흐려진다고 해서 오히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사람들은 아닙니까그래서 날마다 빛이 아닌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나에게 다가오는 이 절망의 그림자를 보니 나는 너무 허무하구나 하면서 절망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 주님은 우리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사도 요한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깨달은 사도 바울 또한 로마서 8장 31절-39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단죄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갑니다 도살당할양처럼 천대받습니다 라는 성서의 말씀대로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찬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구약에 보면 야곱이 이러한 죽음의 극한 상황에서 훌륭하게 자신의 위기르 극복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야곱과 같이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 오늘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을 날마다 생활속에서 나타내며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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