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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행의 선택 (왕상 1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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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명철과 부의 대왕 솔로몬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그의 부친 다윗의 위(位)를 계승하여 예루살렘에서 왕위에 오른 지 40년만 이었습니다.

그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등극하 자 마자 그에게 불어닥친 일종의 정치적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 에서 '노인의 교도(敎導)를 버리고,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가는 우매를 범하므로 씻지 못할 역사의 우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I. 사건의 진상은 이러합니다(1-15)

그가 북쪽 세겜에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왕위 계승을 추 대 받았습니다. 이때 온 백성들이 여로보암을 앞세우고 왕 앞 에 나타났습니다. 여로보암(왕상12:2)은 새로 등극한 르호보암의 선왕이었던 솔로몬의 정적(政敵)이 되어 애굽으로 피난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왕상11:29-40). 백성들은 사람을 보내어 솔로 몬의 죽음을 전하고 그를 다시 불러들여, 그를 북쪽 열 지파의 대변자로 삼고, 왕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저들의 대변자 여로보암을 통하여 나타낸 불만은 왕의 선친이 었던 솔로몬 때 백성들에게 부과된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 게 하소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왕께 충성을 다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 시대의 그 엄청난 번영은 백성들의 부역과 세금의 결과였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이 사는 날 동안 유다와 온 이스 라엘에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다고 하였습니다(왕상4:25).

이러한 성경을 보면 솔로몬의 치세 어간에 백성들은 부지런히 일하여 잘 살았음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왕의 통치 아래 서, 백성들은 좀 더 평안히 지내보고자 한 것입니다.

이 때 르호보암은 3일간의 시간적 여유를 정하고, 다시 만나서 답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후에 왕은 선왕 솔로몬을 섬기던 노(老)신하들을 불러 놓고, 이 문제에 대한 자문을 받았습니다.

이때 노인들의 자문은 참으로 정중했습니다. 12장 7절에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 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고 하였습 니다.

왕은 다시, 현재 자기의 신하가 되어 있는 곧 자기와 함께 자 란 소년들의 자문을 요구하였습니다.

젊은 소년들의 자문은 보다 적극적이고, 실제적이고, 능동적이 고, 구체적이었습니다. 저들의 자문은 현재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나는 부친의 멍에 보다 더욱 무겁게 할 것이고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 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라고 자문해 주었습니다(왕상 12:10-11). 여기 전갈은 가시 돋친 채찍을 의미합니다.

약속된 3일이 되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왕 앞에 나왔습니 다. 이때 왕은 포악한 말로 노인의 교도(敎導)를 버리고, 소년들 의 가르침을 좇아 강압 정치를 선포하고 말았습니다.

여기 '포악한 말'이란 저 농경 사회에서 멍에를 채운 소의 고 삐를 내리치면서, 소리치는 것을 뜻함인데, 말하자면 폭군의 폭언 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르호보암은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소 년들의 가르침을 좇아자기의 정치 행로를 정하므로, 비극의 불씨 를 낳고 말았습니다.

 II. 이것을 불행의 선택이었습니다.

 르호보암이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소년들의 가르침을 좇아간 것은 우매자의 소행이요, 불행의 선택이었습니다.

첫째 이유는 경험자의 가르침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노(老)신하들의 자문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저들은 르호보암에게

1. 정치적 시류(時流)를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본문 7절에 .....왕이 만일 오늘날.....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르호보암이 처한 그때의 정치적 상황을 표현하는 말입니 다. 우선 권력의 변동이 일어난 때요 선왕 솔로몬의 정치 적 라이벌이었던 여로보암이 애굽의 망명 상에서 백성들의 초청 을 받아 다시 돌아온 때요 선왕 솔로몬의 정치적 공헌에 백 성들이 피곤한 때요 더욱이 르호보암 주변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 젊은 신하들의 무분별한 소행들이 염려스러웠던 때였습니 다. 이렇게 노인들은 정치적 시류를 볼 수 있었던 자들이요, 읽 을 수 있었던 자들이요, 앞을 내다 볼 수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2. 백성의 참된 공복(公僕)이 되는 자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낮아지고자 하면 높아지고, 높아지고자 하면 낮아진 다고 하는 처세 원리였습니다.

우리 본문 7절이 또 말하기를 왕이 만일 오늘날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노인들의 이러한 자문 속에는 권리보다 우선하는 의무를 담고 있습니다. 섬김을 받는 자세보다, 섬기는 자세를 담고 있 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에 고통과 불안과 부담을 주는 것 보다 평안함을 주도록 하자는 것이 담겨 있습니다. 화합하는 정치 매너를 담고 있습니다. 좋은 말로 이르시라고 하였습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말은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 인줄을 저 노인 들은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좋은 결과를 내다보는 희망 의 정치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백성들은 영영히 당신 만을 섬기는 충복(종)이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이 노인들은 그 대부분이 르호보암 임금의 할아버지였던 당대 의 정치적, 종교적 영웅이었던 다윗을 섬기고, 또 그 아버지 솔 로몬의 대업을 완성시켰던 날의 유경험자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시간 경험에 있어서, 공간과 사건의 경험에 있어서,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사회, 그리고 국제간의 전쟁과 교역에 있어서 풍부 한 산 역사를 체험한 그야말로 인생의 별들이었습니다. 역사의 산 증인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노(老)신하들이 르호보암 주변에 생 존해 있다는 그 자체가 르호보암에게 있어서 안전과 보호의 울타 리였습니다. 아니 그 자체가 행복이었습니다. 맹장 맥아더의 말 을 빌리면 르호보암 때의 노장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사라져 가 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이러한 '노인의 교도 를 버렸다'고 하였으니, 실로 우매자의 소행이요, 불행한 선택이 었습니다.

둘째 이유는 소년들의 가르침을 좇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르호보암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은 정치적으로 미성숙 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르호보암과 함께 궁궐 안팎에서 자란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 경험(신앙)에 있어서 인간 경험 (세상)에 있어서, 역사 경험(사실 체험)에 있어서, 정치 경험에 있어서 모두 입문생들이었습니다. 너무 즉각적인 감정의 촉발을 받는 자들이요, 현실에 집착되어 앞뒤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이 요, 더욱이 노인들이 말한 오늘날.....이라고 하는 르호보암이 만난 정치적 시류를 읽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저들 이야말로 정치의 요체를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왕권이라고 하는 권력의 외적 위엄만 가지고 백성 앞에 군림하는 자세를 가 진 자들이요 자기들의 능력을 과신하고 과장하는 자들이었습니 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정치적 식견이나 비전이 없이 현실적인 쾌감에만 집중한 자들이었습니다.

불행스럽게도 르호보암은 이러한 소년들의 교도를 좇아 가버리 는 정치적인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셋째 이유는 백성들의 힘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2장 15절에 왕이 이같이 백성들의 말을 듣지 아니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민심이 천심임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백성을 잃어버린 왕은 왕이 될 수 없는 것을 몰랐던 르호보암 이었습니다.

자기의 선왕 솔로몬과 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종은 작은 아이입니다. 말할 줄 모릅니다. 백성은 너무 크 고 많습니다. 이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주십시오(왕상3:7-9)하 던 솔로몬에 비하면 그 아들 르호보암의 정치 식견은 너무 유치 하였습니다.

넷째 이유는 그 결과가 불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르호보암이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소년들의 가르침을 좇아 간 '결과는 큰 두 가지 비극이 남겨지고 말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이 쪼개어지는 분 국(分國)의의 비극을 맞은 것입니다.

백성들은 여로보암을 새 왕으로 세우고, 르호보암을 떠나 버린 것입니다. 열왕기상 12장 20절에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 왔다 함을 듣고, 보내어 저를 공회로 청하였다가 온 이스라엘 왕을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좇는 자가 없으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비극입니다.

또 하나는 종교적 비극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정치적 분열에는 성공하였으나 저들 백성의 마음속 에 남은 예루살렘 성전 예배의 길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서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두개를 만들어 벧엘과 단에 세우고, 이 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신)이라고 하였 습니다(왕상12:25-33). 이렇게 하므로 여로보암은 북쪽 이스라엘 의 온 백성의 마음을 하나님께부터 갈라 놓고마는 무서운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우상 숭배의 길을 열어 놓은 악한 자의 표본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소년들의 가르침을 좇아갔다. 이것은 솔 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범한 불행스러운 정치적 선택이었습니 다. 그 결과 나타난 역사적 비극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은 그 불행이 개인의 것만이 아 니라, 온 백성과 후손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르호보암은 지혜로운 자의 아들이었는데도, 그 아버지의 지혜 를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왕좌를 물려받았는데도 그 아버지의 지혜는 물려받지를 못했습니다. 지혜나 은혜는 유전 법칙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 솔로몬은 매우 젊어서 등극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부왕(父王)의 유언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 중심의 역사를 펼쳐 갔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젊다고 해서 모두 잘못된 길을 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르호보암 은 40세에 왕위에 올랐으니, 성숙한 지도자로 설 수 있는 나이 였습니다. 그렇다고 볼 때 참된 지혜는 나이에 의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을 지혜에 이르게 함이 시간이나, 교육이 전부 는 아닌 것 같습니다. 솔로몬은 궁정은 지혜와 명철의 궁전이었 습니다. 르호보암은 그 궁전의 총아(寵兒)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빛 속에 어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소년들의 가르침을 좇은 결과 비 극의 불씨를 역사에 남기고 말았습니다. 물론 노인의 교도라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잘못 늙은 노인들에게 는 참된 교도가 없습니다. 물론 소년의 가르침이라고 해서 모두 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속담에 '여든살 먹은 할아버지가 세살 먹은 손자에게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개인의 장래 문제나, 가정 문제나, 국가의 100년 대계나, 세계의 흐름을 말할 때마다, 백발의 교훈을 중요 시하고 있습니다.

학생은 선생의 가르침을 쫓아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가르침 을 쫓아야 합니다. 후배는 선배의 경험에 접해야 합니다. 양은 목 자의 가르침에 순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레위기 19장 32절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 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한 것입니다.

잠언 20장 29절에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 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16장 31절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잠언 4장 1-4절에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 기에 주의하라.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나도 내 아버지께 아들 이였으며 내 어머니 보기 에 유약한 아들이었었노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은 네 마음에 두라.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였 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은 어릴 때 그 아버지 다윗과 어머니 밧 세바에게 들었던 훈계로 그 아들들에게 살길을 알려 주고 있습니 다.

노인의 교도를 버리지 말고, 그 교도 앞에 귀를 기울이고, 일 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사례하고 그를 공경해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의 첩경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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