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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과 골리앗 (삼상 16:14-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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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직무에 취임하는 것의 전체적인 요지는 특별한 방식으로 그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 직장에 나가는 첫날부터 일을 합니다. 그러나 왕들의 경우에는 대관식을 거행하고 대통령의 경우에는 취임식을 거행하며 대학 교수들은 임명식을 거행하고 목사들은 위임 예배를 드립니다. 이 예식들은 각 개인이 맡은 일의 특권과 약속과 책임을 엄숙하게 인정해 준다는 뜻을 지닙니다. 그것들은 그 사람을 승인하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람에게 그 일이 맡겨졌다는 공식적인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이제부터 실제 업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되었을 때, 공식적으로 왕위에 취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이 여전히 왕이었으며, 그는 그 후 시벼 년간 더 왕위에 있었습니다. 다윗의 왕위 임명은 어느 정도 비밀스런 사건이었으며, 예식이 거행된 후에도 그는 양을 치러 다시 나갔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왕으로 임명된 것이 꿈만 같았을 것입니다. 그는 이 직무를 어떤 식으로 이행해 나갈까요 그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왕위에 오르리라고 기대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에 의해 임명받았지만, 시험도 거치지 않았고 왕으로 공표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건강이 나쁘지도 않고, 10대의 목동을 위해 왕위를 내줄 생각이 추호도 없는 왕이 아직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약속을 받는 것은 믿음과 인내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히6:12). 그런 믿음과 인내심은 “될 대로 되라!”는 금욕적인 체념이 아니라 성령의 적극적인 은혜로 가능합니다. 참된 신앙인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우해 기도하고 일합니다. 인내는 두려움과 좌절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기다리면서 보낸 시간을 보충해 줍니다. 믿음과 인내는 문을 열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을 일으키도록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오랫동안 양의 곁에 놓아 두지 않았습니다. 일련의 의미심장한 섭리를 통하여 다윗은 먼저 사울의 궁으로 (16:14-23). 그 다음에는 엘라 골짜기의 전쟁터로 부름받았습니다. 엘라 골짜기에서 그는 블레셋의 용장인 갓의 거인 골리앗과 대결하여 물리쳤습니다(17:1-58). 이렇게 다윗은 무대 위에 갑자기 나타나 이름없던 사람이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일약 국가의 영웅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떠남(16:14-23)
다윗이 기름 부음 받는 것은 다윗과 사울 양자 모두에게 대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다음의 두 구절이 이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삼상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상16: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두 사람 모두 현저한 영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이 변화를 느겼고,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이 변화의 핵심에 하나님과 그들의 개인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민족적인 삶에서 그들이 수행해야할 역할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1.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 떠나고(16:14)
비록 성령께서 사울에게 왕의 직무를 수행할수 있도록 “예언의 영”을 주셨지만(10:10). 그가 거듭나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의 마음이 새로워진 것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 후에도 사울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계속 하나님의 게시된 뜻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다윗이 선택되고 난 후에는 하나님께서 이전에 사울에게 주셨던 은사들조차 철회해 버리셧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한 가지 배울 수 있는데, 그것은 신약에서 발전된 것입니다. 그 진리란 “성령을 받았”으나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히6:4-6). 신앙을 고백하고 스스롤 신자임을 자청하며 성경의 가르침에:대해 많이 알고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죄 안에서 죽어 있습니다. 그들은 오른손에 거짓 것을 들고 있으면서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사44:20).
여기에 사울과 다윗 사이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울은 성령을 “받았”으나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경우에는 성령이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그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변화된 것입니다. 물론 그는 왕으로 임명을 받고 성령께서 능력으로 그에게 임하기 전부터 신자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후에 저지른 온갖 죄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계속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든 신자들에게 제기된 질문이 있습니다. 한 번 자문해 보십시오.
‘내가 내 마음을 감찰해 보니 내가 사울과 같은지 아니면 다윗과 같은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내가 자기를 기만하고 회개하지 않는 거짓 신자가 아니라 참 신자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입니다(요14:15).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시험입니다. 사울은 이 시험에서 거듭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성화가 경험되는 것은 이것 즉, 주의 뜻을 따르려는 의지와 실제적인 유익의 향유와 관련해서 입니다(벧전1:2). 도덕적 정결에 대한 열망이 있으며, 의에 주림과 목마름이 있습니다(마5:6). 옛 자아와 그 실현을 벗어버리고 창조주의 형상에 대한 지식 안에서 새로워지는 새 자아를 입으려는 의지가 있습니다(골3:9-10). 주 예수 그리스도로 덧입는 행위가 있습니다(롬13:14). 우리는 죄를 물리친 일에 대해 즐거워 합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죄 가운데 빠지더라도 실패에 민감할 수 있습니다. 죄에 대해 민감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열망한다는 사실은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사울과 다윗 모두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의 죄를 슬퍼했지만, 진실로 죄르 ㄹ회개하고 죄에서 벗어나 다시 주를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은 다윗뿐이었습니다.

2.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16:14)
이것으너 하나님이 악령의 근원이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이 말은 성령이 떠나게 되면, 그 사람은 사단과 자신의 자멸적 죄성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는 사실을 강조할 뿐입니다. 이 경우에 사울은 자기 죄의 결과에 넘겨져서 심각한 좌절에 빠졌습니다. 사단이 사울의 마음을 마음대로 조종했기 때문에, 그는 깊은 번뇌에 빠져 그의 모든 삶이 비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울의 종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 있었으며 그에게 치유책을 권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조언을 했습니까 그들은 사울에게 하나님과 화평하라고 제안했습니까 그들은 선지자 사무엘에게 조언을 구하라고 충고했습니까 아닙니다1 마음의 병을 치료해야 한다고 진단한 그들은 그를 진정시킬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그러면 그의 악기 소리가 왕의 기분을 한결 낫게 해 줄 것입니다(16:16). 그리고 그들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후에 (삼상16:23)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거친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음악의 위력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음악이 정반대의 작용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울의 우울증이 다윗을 왕궁으로 데려와 사울의 시중을 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16:18-22). 이 사건은 매우 조심스러운 방법으로 다윗을 국가의 무대로 밀어냅니다. 그 사건이 그로 하여금 사울을 대면하게 했습니다. 성령은 사울과 그의 집을 떠나 다윗의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사울 앞에서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여 그로부터 온갖 은총을 얻은 다윗은 사울의 악사일 뿐만 아니라 그의 갑옷을 맡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들판에서 데려와 보좌 곁에 두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임함(17:1-51)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 내용은 모든 문학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랑받는 것 가운데 하나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작지만 영특하고 민첩한 소년이 매우 우락부락한 거인을 이겼다고 생각할 정도로 낭만적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소년”은 사실상 10대의 후반의 건장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휠씬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성령의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의 경우와 대조적입니다. 다윗은 엘라 골짜기에서 한 순간에 이름 없는 신하의 위치에서 국가의 영웅이자, 능력 있는 왕의 위치로 부상했습니다! 이것은 사울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18:8-15). 이스라엘 백성도 이런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1. 이스라엘에 대한 골리앗의 도전(17:1-11)
블레셋 군대는 갓의 요새로부터 동쪽으로 이동하여 엘라 골자기에 있는 소고 근처의 이스라엘 국경을 횡단하였습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소집된 병력과 대결했습니다. 전선이 그어지고 양쪽 군사들은 각자의 진지에서 경계 태세를 갖추었습니다.(17:1-3).
그 후 블레셋 군대에서 한 명의 용사가 앞으로 나와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용사를 내보내 일대일 전투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경우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주권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경험에서 그런 조처의 선례가 없었으므로 그런 과정을 따를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순간 이스라엘이 굴욕을 느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골리앗이 그렇게 요구한 까닭은 사울로부터 가장 낮은 창병에 이르기가지 이스라엘 군사들의 마음속에 공포심을 일으키자는 데 있었습니다.
골리앗의 신장은 (삼상17:4)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삼상17:5)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삼상17:6)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삼상17:7) 그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아무도 이 거인의 도전에 응할 수 없었스니다. 키가 크다는 사울도 자진해서 나서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강한 적을 용감하게 물리친 요나단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전투는 교착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17:8-11)

2. 도전을 받아들인 다윗(17:12-40)
40일 동안 매일 골리앗은 이스라엘 앞에 “몸을 나타내었습니다”(17:16). 그 사이 다윗은 사울의 궁저노가 아버지의 양떼가 있는 베들레헴 사이를 왕래하고 있었습니다(17:15). 그는 군에 입대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렸고 사울의 갑옷 맡은 자로서의 그의 지위도 명예직이었던 것 같습니다(16:21). 그래서 이새는 전쟁터에 나가 있는 세 아들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줄 급사로 다윗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17:12-19). 다윗이 전쟁터에 도착했을 때, 골리앗이 “그 항오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그 말을 ‘다윗이 들’었습니다(17:20-23). 그는 또 이스라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사울이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에게 재산과 자기 딸을 주고 장차 세금도 면제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말을 들었습니다(17:24-27).
골리앗 문제에 다윗이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이 소년이 그 거인에게 덤벼들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처음에 그는 맏형에게 꾸지람을 듣고 조롱을 당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사울에게 보고되어 왕 앞에 출두하였습니다(17:28-31). 마침내 다윗은 자진해서 골리앗의 도전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17:32).
다윗은 패기있는 어께와 사려깊은 두뇌를 가졌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그의 마음에 내주하심으로써 얻어진 열매였습니다. 그는 골리앗이 본지적으로 신학적인 문제임을 정확히 진단했습니다. 그가 군인들에게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라고 말했을 때, 그는 젊은이의 이상론에 사로잡혀 있던 것이 아니라 건전한 신학적 진리를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17:26). 그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언야그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원수 앞에서 위축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에 대한 약속을ㄹ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히 전쟁처로 나가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믿음, 아니 믿음 부족이었습니다. 골리앗은 질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증상이었습니다. 다윗의 사상은 골리앗과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모욕함으로써 사실상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다는 추론에서부터 아무도 블레셋 사람들 때문에 정신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과 자신이 골리앗과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확신으로 발전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쉽게 무시되곤 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제시해 줍니다. 즉, 인생에서 매우 실제적인 많은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신학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건전한 신학은 실제적인 생활 철학입니다. 신학적 진리는 하나님을 명예롭게 하는 현실로 가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이것이 곧 생동하는 믿음입니다.
다윗은 과거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인간의 일을 행하랴고 한다고 논리적으로 지적하자, 다윗은 그에게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면서 사자와 곰을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삼상17:37)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실제적인 체험에 의해 강화되었습니다. 그 신앙은 이렇습니다.
(시27:13)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그 다음 믿음을 강화시키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체험은 이렇습니다.
(시116: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시편 71편과 73편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갔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사자와 곰으로부터 구출해주신 목동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는 사울의 갑옷을 거부하고 지팡이와 투석기와 시내에서 주운 매끄러운 돌을 무기로 사용했습니다.(17:38-40).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양떼였으며, 골리앗은 약탈자였고, 다윗은 양을 보호하는 목자로서 앞으로 나섰습니다. 이것은 구 속의 상징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시80:1) 요셉을 양 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빛을 비취소서 언약의 하나님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밝혔습니다(요10:11). 엘라 골짜기에 있는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다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사53:6). 목자 다윗처럼 선한 목자이신 예수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무기를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싸우러 가신 것이 아니라 죽으러 가셨습니다. 그것을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53: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3.골리앗을 물리친 다윗(17:41-51)
이스라엘의 용사가 시내를 건너오는 것을 본 블레셋의 용사는 그와 접전하기 위해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상대가 지팡이를 든(그는 투석기도 돌도 보지 못했습니다). 어린 소년임을 알아챈 골리앗은 조롱을 퍼부었습니다. 그는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17:43).고 비웃었습니다. 그 다음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난 후, 그를 썩은 고기로 만들어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17:44).
이에 대한 다윗의 응답은 증거이면서 동시에 예언이었습니다. 이 블레셋 사람은 “칼과 창과 단창”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그는 이미 자기가 섬기는 거짓 신들을 블러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으로”나아왔습니다. 그러므로 골리앗은 죽을 것이며, 블레셋의 군대는 썩은 고기가 되어 땅에 흩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17:45-47).
싸움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돌팔매질 한 번에 골리앗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이고, 그의 칼로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17:48-51). 골리앗은 언약궤 앞에서 쓰러져 머리를 잃게 된 그의 신 다곤과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5:4). 블레셋 사람들의 영웅도 그들의 신이라고 부르던 것과 마찬가지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승리(17:52-58).
이스라엘의 승리는 완벽했습니다. 그들은 가이와 에그론 성문으로 달아 나는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했습니다. 다윗이 무서운 예언이 적중하여 “블레셋 군대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졌고, ‘전쟁의 찌꺼기’가 도로를 가득 메웠습니다(17:46, 52). 이스라엘 군대가 그렇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일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모든 상황들이 이것을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목동이 손에 있는 부드러운 돌 한 개는 사울 군대의 통상 병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군대로 구원얻은 왕이 었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33:16). 하나니께서 진짜로 임명하신 왕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전에 “사십 일”(17:16). 동안 골리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두려움에 떨게하고 하나님께 볼충하게 만들도록 허용하셨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때 시내산 광야에서 지낸 40년을 상기했을까요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약 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자신들의 죄 때문임을 기억했을까요 이스라엘은 아직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계시다는 것을 믿었을까요
승리의 도구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행위가 사울의 행위와 대조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나단은 믹마스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했지만, 그 후 사울이 어리석은 명령을 내림으로써 그 승리를 무산시켜 버렸습니다(14:13-46). 다윗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180도로 역전시켰으며, 사울은 방관자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그를 들어 올렸으며 그들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사울은 쇠락하고 다윗은 번성해 갔습니다. 승리에 관한 기사의 마지막 구절들에는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사울이 아브넬에게 다윗의 배경에 대해 물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 뒤에는 전쟁 후에 다윗과 사울이 만난 것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대화 중에 사울은 다윗에게 누구의 아들이냐고 물었습니다.(17:55-58). 사울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행할 약속 때문에(17:25). 다윗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 전환점입니다. 여기에 현재의 왕 사울이 있고, 저기에 미래의 왕 다윗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손에는 그가 하나님의 임명을 받은 왕이라는 영광스러운 확증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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