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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사람이 됩시다 (고후 0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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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승리자가 되고, 성공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더구나 이처럼 새해를 맞으면 서로가 새해에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하고 잘 되라는 덕담을 나눕니다. 그런데 성공하고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해서 다 성공하고, 다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자가 되고 승리자가 되려면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칠전팔기(七顚八起)의 끈질긴 노력을 계속합니다. 그는 고난과 싸우고, 시련을 극복하고, 유혹을 물리치고, 역경에 도전하면서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바울도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말했습니다.
승리자가 되고 성공자가 되려면 개척자의 정신으로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모르면 배우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향상과 전진을 계속합니다. 한두 번의 실패로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아니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성의를 기울이고, 열의를 쏟고, 창의적으로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과거 우리 민족은 적극적인 삶의 자세보다는 소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소극적인 삶의 자세를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신한국의 국민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일을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대합시다. 적극적 태도를 갖는 사람이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사회의 성공자가 되어 많은 업적을 남깁니다.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는 사람은 절대로 인생의 성공자,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큰 일을 한 사람을 보세요. 예외 없이 모두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산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갖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가령 여기 두 청년이 시험을 보았는데 낙방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실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갖느냐 하는 데에 따라서 두 청년의 인생 행로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 청년은 시험에 낙방하자, 비관하고 낙망합니다. 그는 도전과 재기의 노력을 포기하고 실패와 타락의 구덩이 속에 빠져 버립니다. 그런데 다른 한 청년은 낙관과 희망의 태도를 가집니다. 그래서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분투, 노력해서 바라던 학교에 입학하고, 전진과 승리의 밝은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의 삶의 태도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태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가 갖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태도는 행동이 아닙니다. 태도는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입니다. 태도가 행동을 결정합니다. 행동은 태도의 표현입니다.
서양 속담에 “태도는 재주보다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태도와 재주의 영어 글자가 비슷합니다. 태도는 Attitude요, 재주는 Aptitude입니다. 두 단어의 둘째 글자만 다르고 나머지는 다 같습니다. 그러므로 두 단어는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그 사람의 머리가 얼마나 좋으냐 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태도를 가지고 일하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정열을 가지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 하는데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 생활자세, 행동방식, 사고방식이 달라집니다.
적극적인 태도로 사느냐 소극적인 태도로 사느냐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가느냐 부정적인 태도로 살아가느냐 낙관적인 태도로 살아가느냐 비관적인 태도로 살아가느냐 주인의 태도로 살아가느냐 손님의 태도로 살아가느냐 책임 있는 태도로 살아가느냐 방관적인 태도로 살아가느냐 부지런한 태도로 살아가느냐 게으른 태도로 살아가느냐 참여하는 태도로 살아가느냐 피하는 태도로 살아가느냐
태도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태도의 변화입니다.
그릇된 태도를 올바른 태도로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의 승리자, 성공자들은 모두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인생의 패배자와 낙오자들은 모두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성공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원하고 바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성공학의 권위자인 나폴레온 힐과 클레멘트 스토운은 미국에서 성공하고 승리한 사람 500여 명을 면접하고 연구한 결과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첫째가 적극적인 태도요, 둘째가 명확한 목표요, 셋째가 봉사의 정신이요, 넷째가 명확한 사고요, 다섯째가 자기 훈련이요, 여섯째가 주인정신이요, 일곱째가 신념의 활용이요, 여덟째가 명령한 성격이요, 아홉째가 솔선수범이요, 열째가 열성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승리를 하는 사람은 모두 이런 태도로 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적극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하는 개인이나 민족은 모두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삽니다. 이 세상에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개인이나 민족은 반드시 소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삽니다.
성공과 승리를 원하십니까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만일에 소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사신다면, 절대로 성공과 승리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요. 우리 나라처럼 불리한 조건에 있는 나라가 경쟁과, 국제적 이해관계의 대립과, 격심한 세계사의 거센 무대에서 꿋꿋이 살아가려면 정신적으로 강해야 하고, 힘을 모아 고난과 시련을 용감하게 극복해 갈 수 있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져야만 합니다. 이런 정신이 모자라면 우리는 이 역사에서 낙오되고 말 것입니다. 무력하고 나약한 나라는 멸시와 모멸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이 있는 나라가 되어야 존경과 대접을 받습니다. 이것은 국제사회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너무 소극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소극적인 생각, 소극적인 행동, 소극적인 태도, 소극적인 생활, 소극적인 성격이 우리 몸과 마음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소극주의의 낡은 때가 우리 몸에 묻어 있고, 소극주의의 추한 주름살이 우리의 성격에 잡혀있고, 소극주의의 나쁜 습관이 우리의 생활에 젖어 있습니다.
이런 소극주의의 병폐가 우리로 하여금 현상 유지, 무사안일, 어름어름 살아가는 태도, 수수방관, 외화내허(外華內虛)의 나쁜 습관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이런 나쁜 습관을 인습 또는 폐습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용기로 이 낡은 인습과 폐습을 과감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낡은 한국 사람이 새 한국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사활의 문제입니다. 신한국인이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문민정부 시대를 오랜만에 맞게 되었고, 10여 개월 동안 개혁의 외침 속에서 새로워져 보려고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개혁은 추진될 것입니다. 구조도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새 마음, 새 의식, 새 사람, 새 인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을 때, 개혁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고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한국의 앞날은 정말 어둡습니다.
신한국인이 어떤 한국인입니까 그것은 적극적인 한국인입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적극적인 신한국인이 될 수 있습니까
생각이 새로워져야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삶이 바뀌게 됩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짐승은 개조할 줄을 모릅니다. 오직 사람만이 개조할 줄 압니다. 소나 말은 자기의 집을 개조할 지혜와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세계에는 진보나 발전이란 것이 없습니다. 그저 본능과 충동대로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짐승의 세계에는 몇 천년 전 생활이나 오늘의 생활이나 아무런 변화도, 발전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새로워지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특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새롭게 해야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성경에도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갈대처럼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이 위대하다는 것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 되고, 문명의 창조자가 되고, 역사의 건설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사람이 생각할 수 없다면 이 땅위에서 가장 무력하고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발명하고, 발견하고, 위대한 창조를 하고, 놀라운 건설을 하는 것은 모두 생각의 산물입니다. 우리의 두뇌는 약 140억 개의 작은 세포로 구성이 되어 있고, 무게는 대략 1400그램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이 두뇌에서 모든 위대한 것이 탄생했습니다. 두뇌는 문명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낡은 사람이란 낡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요, 새로운 사람이란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이 낡았다 또는 새롭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 새로우냐 아니면 낡았느냐 하는데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발전하고, 생각하는 국민이라야 번영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컴퓨터회사인IBM 회사의 사훈은 “생각하라(Think)”라는 한 단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생각하되 스스로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고, 바르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개방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의 생각은 망상이나 공상, 비생산적 생각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귀는 악한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착한 생각을 하고 바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착한 생각은 착한 사람을 만들고, 악한 생각은 악한 사람을 만듭니다.
생각이 사람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뀝니다.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뀝니다. 습관이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행동이 오랫동안 되풀이되면 하나의 습관이 만들어집니다. 습관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우리를 지배하고 좌우합니다. 그래서 내려오는 말에 “세살 때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습니다. 습관은 제 2의 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습관은 폭군처럼 무서운 힘으로 우리를 지배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가운데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담배가 건강에도 지장을 주고, 요사이는 어디 가나 담배 피우는 사람이 대접을 받지 못하고, 기차나 버스, 비행기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고, 사무실이나 대합실에서도 구석에 흡연실을 만들어 흡연자들을 몰아 놓는 바람에 이런 결심을 하게 되는데 성공하는 사람은 300명중에 한 사람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299명은 담배 피우는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그 습관의 노예가 되고 만다고 합니다.
세상에 습관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물론 습관의 장점도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게 합니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습관의 특색입니다. 가령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아침 다섯시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져 쉽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습관은 교육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습관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의는 참으로 큽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암 제임스는 “여러 가지 습관이 결합하여 한 인간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쁜 습관을 만들지 말아야 함과 동시에 좋은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데에도 습관이 있습니다. 시간 따라 예배당에 나아와 예배 드리는 습관, 기도하는 습관, 성경 읽는 습관, 이것은 아주 좋은 습관입니다. 이것을 소위 ‘거룩한 습관’(Hdly habit)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기쁜 마음으로 쉽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좋은 습관의 힘이 필요합니다.
습관이 고질화된 것이 인습이요,폐습입니다. 세상에 인습타파, 폐습 타파처럼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일이지마는 과거 우리 사회는 수십 년 동안 사회 각 분야에 좋지 않은 습관이 있어서 이것이 거의 고질화되어 있었습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1년 가까이 각 분야에 걸쳐서 개혁을 한다고 하나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요사이 흔히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합니다. 왜 이런 말이 나옵니까 기구는 개혁을 하고, 조직은 개편할 수 있는데, 이미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은 고치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일생 동안 노력해야 할 과제입니다. 습관을 개조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고 습관 개조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 옷을 입는다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해를 맞이 했다고 새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새 사람이 되려면 우리의 의식, 우리의 마음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적극적인 생각을 하면, 적극적인 행동이 생깁니다.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되면, 적극적인 습관이 생깁니다. 적극적인 습관을 가지게 되면, 적극적인 성격이 만들어집니다.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되면, 그의 삶이 적극적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훈련과 습관을 쌓아야 합니다.
적극적인 사고가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노만 빈센트 피일 목사는 “적극적인 생각과 신념의 힘은 기적을 낳고, 성공을 쟁취하고, 행동을 창조하고, 위대한 사업을 성취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이 책에서 열등감을 없애고, 고뇌를 극복하는 신념의 힘, 행복의 지혜, 기도의 위력, 생활의 활력소가 무엇인가를 말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적극적인 생각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에는 적극적인 생각과 소극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생각은 밝은 생각이요, 소극적인 생각은 어두운 생각입니다. 적극적인 생각을 하면 희망이 생기고, 자신이 솟구치고, 용기가 발동하고, 능동적이 됩니다. 그러나 소극적으로 생각하면 낙심하고, 좌절감에 빠지고, 침체되고, 위축되어 버립니다.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애들러(A.Adler)라는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모든 특성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귀중한 것은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능력이다.” 의미 있는 말입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소극적인 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나 어렵다. 안된다, 나는 못한다 하고 단념하는 소극적 태도처럼 나쁜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사람은 해 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단념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싸우기 전에 패배하고, 일해 보기 전에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어렵지만, 힘들지만,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적극적인 인생관과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기암시’ 라고 합니다. 자기암시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7절을 보세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사람은 범사에 적극적입니다. 그러므로 행동이 달라집니다. 걸음걸이도 다릅니다. 걸음걸이는 우리의 태도를 좌우합니다. 승리한 사람이 힘없이 걷는 것을 보셨습니까 반면에 실패한 사람이 씩씩하게 걷는 일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가슴을 펴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힘차게 걸읍시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어깨를 구부리고 땅만 바라보면서 힘없이 걷는 사람중에 승리하고 성공한 사람 없습니다. 우리 생기약동하는 자세로 늠름하게 걸어갑시다. 걸음걸이만 보아도 그 사람의 정신 자세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이미 작고하신 함석헌 선생님의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라는 책을 대학생 때 읽었습니다. 저는 많은 감명을 받았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이 책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뒤를 보지 않고, 옆을 두리번거리지 이니하고 앞을 향해서 빨리 걸어가는 생활을 죽을 때까지 하겠다는 그 집념은 감명을 주고, 또 존경할 만합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한국의 찬가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는 등불의 하나였던 한국
그 등불이 다시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등불이 되리라”
이제 우리는 민족의 등불에 새 기름을 붓고, 새 심지를 돋우어 다시 아시아의 밝은 빛이 되어야 합니다. 뒤로 물러서지 말고, 제자리 걸음도 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적극적인 정신을 가지고 주 안의 새 사람되어 새 시대, 새 역사를 창조해야만 합니다. 우리 앞에는 무한한 세계와 무한한 기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것에 도전해야 합니다.
낡은 마음, 낡은 사람으로는 안됩니다. 새 마음,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새 사람 되어 신념과 용기, 기대와 확신을 가지고 적극적인 태도로 전진합시다. 그럴 때 우리에게 승리와 성공이 주어질 줄 믿습니다.
1994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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