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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한 왕 요시야 (왕하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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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생각을 했던 므낫세 왕이나 아몬 왕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왕이 바로 오늘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하는 왕이 요시야왕이다.

 므낫세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온갓 악행을 다 저질렀고 아몬은 25세에 왕이 되어 여호와 앞에 교만하게 행동하다가 불과 이년의 짧은 날 수 동안에 그것도 그의 신하들에 의하여 비참한 최후를 마쳐야 했던 못난 왕이었다.

 1,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2절에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라고 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표본의 인물이다.

현재의 이스라엘의 국기의 별도 다윗의 별인 것이다.

 이처럼 다윗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요시야 왕은 다윗의 모든 길로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1절을 다시 보자.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 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디다라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요시야 왕은 아몬 보다도 더 아니 므낫세 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사람이다.

 불과 여덟살에 왕위에 오른 요시야 였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면서도 훌륭하게도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했던 왕이다.

 요시야가 이렇게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들 중에 크게 다음의 두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째는 그의 어머니의 교육이었다.

 우리가 보았지만 못난 왕 므낫세와 아몬의 역사에는 그들의 모친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유별나게 요시야 왕의 모친의 이름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그것은 요시야 왕의 모친인 여디다라는 여인의 아름다운 뒷받침이 있었던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여디다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하고 가장 교만했던 아몬 왕의 아내인 것이다.

 아디다는 그의 남편이었던 아몬의 비참한 최후를 다시는 아들에게 물려 주지 않기 위하여 아들의 교육을 말씀 중심으로 철저하게 시켰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시야 왕이 말씀을 따라서 살았던 흔적이 너무도 많다.

대하34:14절에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 이라고 했다.

 다윗도 그렇게 살았다.

시1:2절에서 다윗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둘째는 요시야의 끈질긴 헌신이었다.

 조상 다윗의 길로 행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었인가 다윗의 길은 한마디로 연단의 길이었다.

다윗의 길은 겸허한 순종의 길이었다.

 요시야 왕은 그 훌륭한 다윗의 모든 길로 행했다고 했다.

 한 가지도 본을 받기가 힘이드는데 요시야는 다윗의 모든 길이라고 했다.

 행했다라는 말이 바로 헌신인 것이다.

많이 배웠다는 말이 아니다.

많이 알고 있었다는 말도 아니다.

많이 가졌다는 말도 아니다.

 모든 다윗의 길로 행했다는 것이다.

 행한다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경험들 중에도 마음으로는 내가 주님을 위하여 무었을 해야지 하고 단단히 결심을 하지만 막상 그때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나 스스로를 배신한다고 할까 나 스스로를 속인다고 할까 그렇게 허망하게 막을 내릴 때가 참으로 많다.

 어린 팔세의 나이에 왕이 된 요시야이지만 그의 행위는 다윗의 모든 길과 같았다.

 요시야 왕에게선 전혀 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비록 어린 마음에 작정하고 서원한 것일지라도 최선을 다하여 행함으로 실천한 왕이었다.

 2,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2절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다.

 처세술이 능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되면 세상의 물결을 잘 타는 그런 사람들이다.

 좋게 말하면 세상의 유행을 잘 따르는 사람이겠고 좀 험하게 평하면 지조 가 없는 사람이라 하겠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야 그렇게도 살 수 있겠지만 그리챤 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잠4:25-27절에 네 눈으로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고 했다.

1),고대의 전통과 관습에 매이지 않았다.

-요시야 시대는 나라 전체가 온갓 우상으로 가득차 있었던 때였다.

므낫세 왕이 엄청나게 많은 우상들을 세웠었다.

아몬 왕이 그 뒤를 이어 보태어 놓았다.

 그 많은 우상 천지에서 나라를 통치해야 했었던 왕이 요시야 였다.

그것도 어린 왕 요시야 였다.

그러나 요시야는 하나님을 위한 성전 예배를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요시야는 무너졌던 성전 예배를 부활시켰던 종교 개혁의 사람이었다.

 이런 일이 왕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을 한다면 큰 오해이다.

오히려 왕이기 때문에 종교를 새로히 통일하기란 더 어려운 것이다.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이단이라든지 우상숭배라든지 또는 기타 여러 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그것들이 좋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것들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니 요시야의 종교 통일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나라의 원로들 대부분이 우상 숭배자였을 것이다.

백성의 많은 다수가 옛 습관에 젖어 잇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왕은 단호하게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했다.

 2),신앙생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11절을 보면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고 했다.

 말씀을 따라 살지 못했던 부분들이 말씀으로 지적을 받을 때 부끄러움 없이 하나님 앞에 회개를 했던 사람이 요시야 였다.

 3,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 2절에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술에 만취가 되어서 비틀거리며 겨우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늘상 시비 를 할 때 잘 쓰는 말 중에 하나는 자기는 절대로 술취하지 않았다는 말을 잘 한다.

 비슷한 예로 남들이 볼때는 매우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자기는 그 길이 곧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겐 올바르게 살기가 비교적 쉽다.

 그리고 사람들이 조금만 노력을 하면 남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있다.

또 사람들이 내 마음을 내가 알고 있는만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칭 찬도 하고 인정도 할 수 있다.

 그렇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참으로 묘한 존재이다.

나는 나를 알고 있는데 남이 나를 알지 못하는 나가 있고 또 나도 알고 있고 남도 나를 알고 있는 나도 있다.

 또 나는 모르는데 남들이 알고 있는 나도 있고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그런 나도 있을 수 있다.

 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너마나 잘 알고 계신다.

 우리 인간들의 마음을 꿰뚤러 보시고 계시는 하나님께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서 살기란 말처럼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다.

 요한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눈을 불꽃같은 눈이라고 표 현을 했다.

 그런데 요시야왕은 2 절의 말씀과 같이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다윗의 모든 의로운 길로 행했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고 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던 요시야 왕이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고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서 마음과 즉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것을 뜻한다.

 요시야는 사람들이야 자기를 어떻게 보든지간에 하나님 앞에 정직히 살았던 왕이었다.

 요시야는 내일 왕의 지위를 내어 놓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사는 것을 축복으로 알고 살았던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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