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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생각을 버리자 (왕하 0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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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제 잘난 멋에 사는게 인생이란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읍니다.

그렇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다 제잘난 멋에 살고 있읍니다.

 그런데 날이 가면서 성도라고하는 사람들도 세상 사람들을 어딘가 모르게 자꾸 닮아가고 있는 것 갔읍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할 사람이 그렇게 살지 못하면 어 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읍니다.

 1,내 생각으로 살던 나아만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엘리사가 게하시를 통하여 나아만에게 병을 치료하는 처방을 주었던 교훈을 보았읍니다.

 그리고 문등병이 걸린 나아만은 오늘날 영적인 문등병이 걸린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등병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의 첫걸음은 화려한 병거에서 내려야 하는 것임을 보았읍니다.

 그리고 머리에 그 화려한 투두 즉 인간의 사고를 포기해야 함을 보았읍 니다.

 또 최후로는 자신이 걸친 옷을 남김 없이 다 벗어야함을 보았읍니다.

내 모습이 그대로 다 들어나도록 우리의 걸친 모든 허식을 남김 없이 벗어 던져야합니다

오늘도 이 사건의 연속입니다.

 10절에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라고 전달을 했더니

11절에 나아만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 납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위에 손을 흔들어 문등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가 직접 나아와서 직접 손을 언고 안수하며 치료를 해 주실 것을 기대했읍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고사하고 엘리사의 사환이 나아왔읍니다.

나아만은 말 할 수 없이 불쾌했읍니다.

 1절의 말씀대로 나아만은 01,군대 장관이었읍니다.

02,주인 앞에서 존귀한 자였읍니다.

03,튼 용사였읍니다.

04,아람을 구원한 구구 유공자였읍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았겠읍니까 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무었이었겠읍니까

나아만은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무었이든지 다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나라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도 하잘것 없이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 엘리사는 코끝도 보이질 아니합니다.

겨우 게집 종인 게하시가 나아와서 엘리사의 처방을 전달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전달한 내용이 나아만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읍니다.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지리라 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이 말은 문등병자인 나아만을 시험키 위함이었읍니다.

이 말은 나아만을 낮추기 위함이었읍니다.

이 말은 나아만의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줌입니다.

이 말은 나아만의 권세로 되는것이 아닙을 보여줌입니다.

이 말은 나아만의 물질로도 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함입니다.

 그런데 11절에서 나아만이 무어라고 말합니까 .내 생각에는....

나아만은 선지자의 처방이 내렸을 때 자기의 생각을 하고 있읍니다.

 '내 생각에는 내 생각을 할 판이면 여기에 무었하러 온 것입니까 내 생각이 현명하다고 생각할 요량이면 여기엔 왜 온 것입니까

나아만은 지금 왜 자기가 여기에 무었을 하러 왔는지를 잊고 있읍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떴읍니까

우리는 나아만 보다 얼마나 더 현명한 것 갔읍니까

우리 중에 어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마음으로 크게 아멘으로 화답을 하는가하면 어떤이는 내 마음의 생각으로 말씀을 비판 하려는 이가 있읍니다.

 교회의 일을 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어떻게하면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얻을것인가를 생각함이 아니고 내 생각으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데 하고 생각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읍 니다.

 오늘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내 생각은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생각에 아무리 좋게 생각이 되어져도 하나님의 생각을 따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11절을 다시 봅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서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위에 손을 흔들어 문등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그리고

12절에서는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여기에 나아만의 문제가 있읍니다.

내 생각에는 선지자의 처방보다는 내 생각이 낫다는 버리지 못하는 못된 심사가 묘하게 작용하고 있읍니다.

 내 생각을 따를 것이면 애초에 아람나라에 그냥 있을 것이지 왜 이스라엘에 오기는 온 것입니까

자기에게 그렇게 좋은 방법이 있으면 기의 방법으로 살 것이지 왜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 온 것입니까

자기의 생각이 그렇게 현명하다고 느껴졌으면 병은 왜 앓고 있는 것입니까

나아만은 지금 엘리사가 내린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실행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골몰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 보다는 내 생각이 좋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아만이 자기의 마음에 맞는 요구조건을 제시할 시기가 아니니다.

엘리사에게 왔으면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자비를 기다릴 것 뿐입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자기의 생각에 맞는 그 어떤 것을 바라고 왔기에 지금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읍니다.

나아만이 병을 고치기 위하여 집을 나섰을 때 그는 마음에 이렇게 자기 자신을 그려 보았을 것입니다.

 내가 이 많은 금은 보화를 가지고 가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가 내 앞에 나아 와서 굽실 굽실 거리며 자기를 맞이할 것이며 또 손을 언고 치료해 줄것이며 그 때 나는 의기 양양하게 가지고 갔던 금과 은을 그리고 옷가지를 그에게 주면 그가 얼마나 고마와 할 것인가

그리고 나는 건강해 져서 내 고국으로 고국으로 힘 있게 개선을 할 것이 다.

 2,내 생각의 결과-내 생각이라는 것들이 무었입니까

요단 강보다 내 생각이 낫다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내 생각이 낫다는 것입니다.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끝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이것이 내 생각의 결과입니다.

내 생각으로 장관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으로 존귀한 자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으로 튼 자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되로 출세한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럼 지금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 생각으로 산 결과가 어떤 것입니까 내 생각으로 내게 남은 것이 무었입니까

내 생각의 결관는 왕의 장관으로도 해결할 수 업는 문등병자였읍니다.

존귀한자라도 해결할 수 없는 문등병자였읍니다.

세상에 가장 큰자도 어찌할 수 없는 문등병자입니다.

 궈세와 부귀와 물질이 해결 할 수 없는 세상에 버림을 받아야하는 그런 문등병자가 내 생각으로 산 결과입니다.

 엘리사가 사환을 통하여 나아만에게 준 말씀은 전능자 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것입니다.

 거기에 내 생각은 전면적이 도전입니다.

 나아만은 마음에 분을 가득히 품고 몸을 돌이켜 떠나고 있읍니다.

12절 하반절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우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내 생각으로 판단하며 받는 그 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들도 말씀을 받고 집으로 돌아 갈때 나아만이 한 것 처럼 우리들도 분한 모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나아만에게 잘못된 처방을 내렸읍니까

아닙니다.

 엘리사의 말대로만 실행하면 내 마음과 생각에는 맞지 않아도 병은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나아만에게 분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말씀이 잘 못되어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질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에 단단한 빗장이 걸여 있읍니다.

우리는 마음을 비울 준비를 늘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맞출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내 마음을 맞출려고 노력을 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사탄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들의 마음에 들어와 작용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서 내정해야할 자리에 분노로 가득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의 마음의 적과 늘 싸워야하는 것임니다.

또 그것이 내 생각과 싸워서 이기는 길인 것입니다.

 3,내 생각을 버리자-우리는 내 생각을 버릴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알아야합니다.

 상대의 의견도 존중하지 못하는데 어찌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버릴 수 있겠읍니까

13절입니다.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끝하게 하라 함이니이까

그렇습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이보다 더 힘든 일을 시켰더라도 이를 실행에 옮겨야함이 마땅하거늘 나아만은 그렇게도 쉬운 일을 시켰건만 이 쉬운 일도 마음에 분하게 생각하고 분한 모양으로 고국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성령이 역사를 할 때에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기에 말씀으로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사 나아만에게 엘리사가 이런 명령을 했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나아만이 많은 금과 은을 가지고 와지만 이것보다 배나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면 나아만은 그것을 했었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의 마음엔 분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읍니다.

이 분한 마음은 충고가 좋은 줄은 알지만 충고를 달게 받아 들이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치 못한 것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충고도 귀하거든 어찌 사람들의 충고를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비교를 할 수 있겠읍니까

나아만이 마음에 분이 가득했던 것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들의 생각을 끝까지 나아만 처럼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나아만 처럼 소득 없이 돌아 갈뿐만 이니라 실패하고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에 금도 필요합니다.

은도 필요합니다.

좋은 옷들도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과 비교도 되지 못할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14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끝하게 되었더라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는 우리들이 우리들의 인간적인 생각을 버릴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내게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시길 원하신다면 마음에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생각을 버리고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이 아니라 칠십 번이라도 몸을 씻을 수 있는 순종의 사람들이 다 되어서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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