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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롯을 구한 아브람 (창 1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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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롯과 아브람의 선택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부름 받은 아브람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니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12:6) 그래서 아브람은 의아해 했습니다. 의아해 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 하십니다. 그 때 아브람은 그 말을 믿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심하여서 아브람이 이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12:10)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는 것 때문에 바로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고, 도리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약속의 땅 벧엘과 아이 사이에 올라와 살 때 하나님이 엄청나게 축복하시므로 짐승을 먹일 목초지(木草地)가 좁아서 롯의 목자의 종들과 아브람의 목자의 종들이 서로 다툼으로 아브람은 이방인들이 보는 앞에서 싸우지 않고(13:7) 네가 좌(左)하면 나는 우(右)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 하리라 하면서 아브람과 롯이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롯은 삼촌 아브람의 아량을 무시한 체 자기 좋은 대로 물이 넉넉한 소돔과 고모라 땅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기름진 곳을 택하여 갔습니다. 결국 롯은 소돔 성에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13:12) 이렇게 롯이 소돔에 들어가 살 때에 전쟁이 생겨서 롯이 그만 적군에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동맹군과 가군(家軍)을 이끌고 가서 롯을 구해 옵니다. 그래서 오늘은 “롯을 구한 아브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을 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Ⅰ.롯을 구한 아브람(1-16)

아브람이 롯과 헤어진지 몇 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 동안 롯은 소돔 성에 들어가 안주하고 있었고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습니다. 아브람의 신앙생활 초기 10여 년 동안에는 가나안 땅에 전쟁이 없었습니다. 롯은 육신적으로 잘 살고 물질을 얻고자 소돔 성에 들어갔는데 큰 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해 주변의 작은 도시들이 즉 소돔 왕, 고모라 왕, 아드마 왕, 스보임 왕, 소알 왕의 5 나라가 동맹을 맺어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국가들(시날 왕, 엘람 왕, 엘라살 왕, 고임 왕)에게 조공을 바치다가 조공 바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들이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엘람 왕)을 섬기다가 제 13년에 배반한지라” 그래서 제 14년에 메소포타미아 4개 연합군들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소돔은 패망했고 소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사로잡혀 갔습니다.(5-11)
그런데 소돔 성에 가서 살고 있던(12) 아브람의 조카 롯도 그만 이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즉, 소돔 왕을 위시한 5국가들도 동맹을 맺고 공동 방어를 했으나 결국 전쟁에서 참패를 당하고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도 탈취를 당했습니다. 소돔에 거하던 아브람의 조카 롯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집에서 기르던 연습된 가군(家軍) 318명과 마므레와 그 형제들의 동맹군을 거느리고(13,14,24) 야간 기습 작전을 펴서 막강한 그돌라오멜(4동맹)군을 파하고 롯을 구해 냈습니다.
아브람은 가신(병사)들을 여러 패로 나누어 밤을 이용하여 원수들을 파하고, 다메섹 좌편 오바까지 추격하면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부녀와 인민과 조카 롯을 찾아 왔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어디서 이런 용기와 힘이 났겠습니까 그리고 막강한 강대국 동맹 군들에게 도전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자기 생명도 위험할 뿐더러 많은 물질적인 희생을 치러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이 일을 해냈습니다. 이것은 아브람의 목자의 심정이요, 조카 롯을 사랑하는 사랑에서요, 그를 올바르게 신앙 생활하도록 하는 목자 심정에서였겠습니다.
차라리 롯을 가나안까지 데려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브람은 후회하거나 원망하지를 않았습니다. 아브람은 롯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거 잘됐다, 내 그럴 줄 알았다” 하며 삼촌도 몰라보고 노란자와 같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해 가더니 “잘 됐다” 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소돔 성에 들어간 롯을 향하여 “꼬시다” 하면서 오히려 그 일 당한 것을 즐기며 기뻐할 것 같은데도 아브람은 자기와 동맹한 친구들뿐만 아니라(13,24) 집에서 기르던 연습된 가군을 데리고 야간 기습을 하여 빼앗겼던 재물과 롯을 구출해 왔습니다.

로마서 15:1-3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했습니다.
아브람은 롯의 소행을 보면 충분히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었습니다. 앙갚음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긍휼히 여기는 목자의 심정, 그리고 그를 하나님 앞에 바로 새워 보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어진 신앙이 있었습니다. 이런 신앙을 우리 성도님들도 배워야 하겠습니다.

Ⅱ.축복을 잘 감당하는 아브람(17-24)

아브람이 전쟁의 승리를 거두고 돌아올 때 두 사람이 나와서 아브람을 만나게 됩니다.
① 하나는 멜기세덱이고 ② 다른 하나는 소돔 왕이었습니다. 이 두 분을 만나 아브람은 하나님이 주셨던 축복을 잘 감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1) 멜기세덱의 축복을 잘 감당하는 아브람입니다.(17-20)
아브람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살렘 왕 멜기세댁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아브람을 영접했습니다. 멜기세댁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살렘은 예루살렘의 옛 이름으로 평화라는 뜻이고 멜기세덱이란 “의의 왕”이란 뜻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멜기세덱이 노아의 아들 셈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왜냐하면 셈은 노아 홍수 후 502년을 살았는데(11:10,11) 아브람 시대는 노아 홍수 후 약 400년 정도밖에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시110:4)
그래서 이 멜기세덱은 장차 올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히7:16,17) 하나님은 이 멜기세덱을 아브람에게 보내셔서 전쟁에서 지친 병사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먹이고 힘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아브람의 후손들에게 베풀어주실 축복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로 대접한 후에 아브람에게 축복해 주었습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이렇게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축복하자 축복을 받은 아브람은 전쟁에서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이것이 십일조를 드리는 기원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자기가 작전을 잘 세워 승리했다는 자만심에 빠지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20절에 멜기세덱이 나타나서 “너의 대적을 하나님이 네 손에 붙였다” 하시자 이 승리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줄 믿고 감사 예물을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는 의미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요, 하나님이 축복의 근원이심을 믿고 드리는 신앙고백이겠습니다.

오랫동안 서울 대학교 종교학과 과장으로 지낸 신 사훈 박사님은 항상 크리스천 수를 파악할 때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만 교인 수로 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들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자를 하늘 문을 열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말3:10) 다른 종교의 신자들은 승리를 달라고 예물을 드리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받은 승리와 축복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엡1:3) 이것이 이방 종교와 다른 부분입니다.

오늘 아브람은 전쟁에서 크게 승리했습니다 승리의 날에 아브람은 겸손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증표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승리하거나 많은 축복을 받으면 교만하고 거만합니다만, 아브람은 승리를 하고 많은 물질을 얻었을 때 오히려 더 겸손하고 축복을 잘 감당하는 것을 봅니다. 승리의 날에 축복을 잘 감당하는 아브람의 믿음을 배우시기를 기도합니다.

2) 소돔 왕을 만나 믿음을 잘 감당하는 아브람입니다.(21-24)
한편 소돔 왕은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람에게 큰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했습니다. 소돔 왕은 자기 백성을 구출해 준 아브람에게 매우 고마운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건져낸 재물들을 모두 가지라고 했습니다.(21)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아니하였습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손을들어 맹세하면서, 소돔 왕이 취하라고 한 물질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실 한 오라기라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신끈 한 가닥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도 전리품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소돔 왕이 말하기를 아브람이 나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 할까 봐서 아브람은 깨끗이 전리품을 돌려주었습니다. 하나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은 그저 들어오는 물질에 눈이 어둡지 않았습니다. 이 물질은 아브람이 전쟁에서 빼앗긴 것을 찾아 온 것이라서 아브람이 차지해도 됩니다만, 아브람은 물질에 초연했습니다.
이것은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지키고 살면 초장이 좁도록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물질 때문에 죄를 짓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이방인이 보는 앞에서 조카와 다투지 않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 하고 네가 좌 하면 나는 우 하리라 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그는 좋은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물질의 근원,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는 줄 알고 양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역시도, 전쟁에 승리를 주시는 주님께서 믿음을 지키면 물질을 주실 줄 믿고 그저 들어오는 물질에 눈이 어둡지 않았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물질관이 바로 선 아브람은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 막대한 물질을 용감히 쓸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바쳐야 할 물질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렸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소돔 왕의 물질을 거절했습니다. 아브람이 이처럼 성공적인 물질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는 물질 문제에 대해서 비굴하고 한없이 째째 해지고 맙니다. 또,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딤후6:10) 돈을 사랑하는 자들은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게 되며, 또한 돈을 사랑하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딤전 6:9,10)
아브람은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요, 신앙의 중심을 지키면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성서적 물질관을 확립하고 있었으므로 모든 물질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아브람이 지녔던 “성서적 물질관”을 확립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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