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도의 복된 삶 (골 03:7-10)

첨부 1


며칠 후면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민속의 날이 다가옵니다. 구정을 민속의날로 정하면서 구정을 지키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고, 우리나라 국민의 90% 이상이 구정을 지킨다고 합니다. 금년 구정은 3일간이 연휴가 이어지기 때문에 적어도 2,500만명 이상이 민족적 대이동의 물결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미 신정을 지켰기 때문에 구정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만 다시금 새해를 맞은 것 같은 생각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올 한해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받기를 바라겠지만 우리 민족처럼 복을 사모하며 갈구하는 민족도 드물 것입니다. 대문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써붙여서 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요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이라 그 뜻은 문을 열면 만가지 복이 들어오고, 뜰을 쓸면 황금이 굴러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방문이나 베개나 이불에도 복복(福)자를 써붙이고 심지어는 숟가락, 젖가락 밥그릇에도 복(福)자를 새겨 놓을 정도로 생활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우리 민족이 간절히 복을 갈망하고 소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福)에 대한 관심은 갓난아이 시절부터 심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백일을 맞고, 돌을 맞게 되면 복자가 새겨진 떡을 준비하고 복자가 새겨진 옷을 해서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 살으라고 목숨수(壽)가 새겨진 옷을 해 입히고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부자로 살으라고 부할부(富)자가 새겨진 옷을 입혀주곤 합니다. 아뭏든 우리 민족이 복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까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문제는 복을 받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복받고 사는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복을 받으려고 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보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전한 은사도 축복도 내려오는 것입니다. 다른 데서 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복주지 못하는 벙어리와 같은 말못하는 우상에게 복을 달라고 빌고 있으니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엿날에 집터가 좋아야 복을 받고 산다, 명당에 조상의 뼈를 묻어야 복받고 산다는 등등, 미신적인 방법으로 인해 복을 받으려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4절에 보면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죄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절대로 우상을 섬기지 말고 복주지 못하는 우상에게 복달라고 빌지 말고, 오직 만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복을 받을 수 있게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복받을 것을 먼저 생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느냐

첫째로, 어떻게 살아야 복을 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복받을 짓을 하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복받도록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복을 받으려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려야만 합니다.

본문 9절에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에도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은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바 옛사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주석가 모팻(Moffatt)과 브레이스(Brace)라는 사람은 중생하기 이전의 행실, 성격, 태도를 총칭하는 말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옛생활을 되풀이 하는 육적인 본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육적인 본성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情)과 욕심(慾心)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옛사람의 본성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으려고 합니다. 이 구습을 좇으려고 하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을 박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인간의 본성은 목초 지향적이거나 그렇치 아니하면 잡초 지향적이다고 했습니다. 어느 한 곳에는 물을 주어 자라게 하고, 다른 한 곳에는 물을 주지 않아 시들어 죽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을 좇아 살면 육체의 소욕은 죽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영의 소욕은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좇아 살면 영의 소욕을 이루어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날에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았을지라도 이제 부터는 육체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버리고, 영의 소욕을 좇아 살아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을 좇아 살아야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3장 6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비유를 드셨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땅값을 하지 못했으니 찍어버린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싼 땅에 무화과나무를 심어놓았으니 땅값을 해야 될터인데 땅만 차지하고 땅값을 하지 못하니 찍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땅값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 여러분과 저는 어떠합니까 과연 땅값을 하고 있습니까 땅값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몸, 건강, 재능, 물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갖가지 은사를 말합니다. 이것들은 다 내것이 아니며 하나님께로부터 은사로, 축복으로 받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건강을 주셨는데, 건강주신 목적대로 땅값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가지 재능을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대로 재능값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주셨는데 이 몸값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은사를 주셨는데 그 은사에 대한 값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갖가지 축복을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남다른 축복도 주셨습니다. 그 축복에 대한 값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땅값이란 자리 값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자리값을 할 때에 사람다워지는 것입니다. 부모는 부모의 자리가 있고, 스승에게는 스승의 자리, 목사는 목사라는 자리, 제직들에게는 제직이라는 자리, 성도들은 성도라는 자리가 있습니다. 만일 자리만 차지하고 그 자리값을 하지 못한다고 하면 모두가 부끄러운 일인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땅이란 이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이름이 주어지면 그 이름에 대한 값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음악가라는 이름이 주어지면 그 이름에 대한 값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학가라는 이름이 주어지면 그 이름에 대한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학자, 교수,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 우리에게는 여러 종류의 이름이 주어졌는데 그 이름에 합당한 값을 지불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옛날 청계천에 거지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있었는데, 경찰이 그 동네를 조사하게 되어 김백억(金百億)이라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찰이 말하기를 김백억이라는 이름은 좋다만 이름대로 잘 살고 있느냐고 경찰이 묻자 김백억이 대답하기를 아마 우리 아버지가 나를 낳을 때에 너무 기뻐서 장차 부자로 잘 살라는 뜻으로 김백억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는데 보시다시피 저는 이렇게 거지촌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름은 너무나도 좋았는데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이름들이 주어졌습니다. 귀한 이름, 보배로운 이름, 거룩한 이름이 주어졌는데, 과연 그 이름대로 잘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거룩할 성(聖)자, 무리도(徒)자로 성도(聖徒)라는 이름이 주어지는데 얼마나 거룩한 이름입니까 그런데 이 이름대로 살지 못하고 속될속(俗)자, 무리도(徒)자로 속도(俗徒)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유명무실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면 역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열매란 그 나무의 신분이요, 자격이요, 가치인 것입니다. 그러니 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무로서의 신분을 상실한 것이고, 자격을 상실한 것이고, 가치를 상실한 것입니다. 사람도 이름처럼 살아야 하고, 이름에 알맞게 살아야 가치가 있는 것이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지난날의 삶을 돌이켜 볼 때에 이름에 합당치 못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를 원하시는 주님의 손에 아무 것도 안겨드리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긍휼히 여기시사 아버지 하나님께 애원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진노하사 내리치시려는 도끼날을 붙들고 아버지여 당신께서 창조하신 땅 곧 성도들의 몸이요, 재능이요, 모든 것들이 주어졌으니 찍어버리지 마옵시고 주의 쟁기로 깊이 파서 돌멩이를 제거하시고 은총의 거름을 주시옵소서. 한해만 더 그대로 두시옵소서. 그리하면 열매를 맺겠나이다. 그래도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그때에 찍어버리소서하는 애원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하나님께서 일년간 더 집행유예를 선고해 주신 것입니다. 한해를 덤으로 선물로 받았으니 이 한해는 열매를 많이 맺어 땅값을 하고, 자리값을 하고, 이름값을 할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둘째로, 복을 받을려고 하면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구습을 좇는 옛습관을 벗어 버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새사람을 입어 새사람답게 살아야만 합니다. 본문 10절에 보니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지식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인식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새사람을 입어서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옷입게 된다고 12절과 1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충만해진다고 1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는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고 1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받아 새사람이 되어져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멘!으로 순종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지라드라는 백만장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토요일에 퇴근 하려는 직원들을 불러 모아놓고, 내일은 주일이지만 출근을 하여 하역작업을 해야 하니 모든 사람이 출근하여 일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든 직원들이 아무 소리없이 돌아갔는데, 직원 한사람이 찾아와서 사장님!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사장님 명령보다 더 무서운 하나님의 명령에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기에 저는 내일 출근을 못하겠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장이 대노하여 그를 당장 해고시켜 버렸습니다. 해고를 당한 청년은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그 해고의 쓰라림을 맛보면서도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지라드라는 사장이 그 청년을 해고시킨 다음에 후회스러운 마음이 되어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의 친구인 은행 총재로부터 전화가 오게 되었는데 직원 한명을 구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장은 해고시킨 청년을 소개시켜 주었고, 이 청년은 더 좋은 직장에서 이전보다 더 주님을 잘 섬기며 복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전화위복(轉禍爲福)의 복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비록 해고를 당한다 하더라도 주일을 성수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라도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는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변화를 받으면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게 되면 감사하는 사람이 된다고 1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분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체코의 작곡가인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ovorak)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인 교향곡 9번 신세계는 그의 작품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입니다. 그런데 이 드보르작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든 곡의 끝마다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를(Thanks be to God)이라는 말이 붙은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성도들인 우리들이 봉사활동을 한 후에 하루 일과를 마치면서, 힘든 일을 해낸 다음에, 한해의 마지막에 서서 누구에게 그 공을 돌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했다고 하면서 자기에게 공을 돌릴 것인가 아니면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라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돌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 능력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일을 성취케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여기까지 나를 도와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결코 나를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만 자랑할 수 있게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화(化)한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구습을 좇는 엣습관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새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새사람을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새사람이 되어져셔 새사람답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어질 것이고, 새사람답게 세상을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