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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육체에 채운 고난 (골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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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중 잡혀서 고난받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자의 배신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신 예수님이 끌려가신 곳은 가야바의 법정이라 불리는 이스라엘 공회 앞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의 간교한 음모에 따라 빌라도의 법정과 헤롯 앞에서 갖은 조롱과 고난을 당하시고, 결국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사형에 처해지기 전에 예수님은 기둥에 두 손이 묶인 채로 매를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등을 내리치던 채찍의 끝에는 납덩어리와 날카로운 뼛조각들이 달려 있었습니다. 이 채찍으로 한번씩 내리칠 때마다 예수님의 등에는 검푸른 채찍자국이 새겨졌으며, 살이 찢겨 살점이 묻어 나왔고,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로마의 역사가들은 이렇게 채찍으로 사람을 내리치게 되면 피부가 약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옆구리나 등쪽이나 속의 창자들이 흘러나오기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매맞음을 당하신 예수님의 어깨 위에는 십자가가 지워졌습니다. 그 십자가의 무게는 대략 60kg 정도로, 예수님은 이를 짊어진 채 약 600m 높이의 골고다 언덕을 올랐습니다. 기운 없으신 예수님이 쓰러질 때마다 몸의 상처는 터져서 피가 흐르고, 로마의 군인들은 그 몸 위에 다시 채찍질을 가했습니다. 마침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로마의 법에 따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채 벌거벗겨져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또한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셨고, 십자가 위에서 수치와 고통으로 목말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호흡마저 편치 않아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고통 당하시다가 결국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오늘 누군가가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당하셨던 것과 동일한 고통을 당해야 한다고 명령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과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서 내가 그 고난에 함께 동참하며, 주님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습니다.라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고백은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사순절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교훈들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아주 짧은 문장을 하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표현 입니다. 이 문장의 의미가 에수님이 당하신 고난이 부족해서 아직 더 고통과 고난받으실 것이 남아 있다거나, 혹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에 부족하다거나 불충분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말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최대교회의 신학자였던 터툴리안은 이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 이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하며,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하며 일할 때 부딪혀 오는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들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단어는 육체에 나온다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중세의 수도사들처럼 수도를 위해 자신을 학대하거나 고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당하셨던 고난에 함께 동참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들을 중심으로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면, 하나님의 몸된 교회와 그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할 때에 받는 여러 가지 고통과 고난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함께 동참하겠다는 신앙의 고백이 담겨져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 나타난 그 자신의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부르심을 받은 뒤에는 고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생애를 살아갔던 위대한 신앙인 이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훌륭한 배경과 뛰어난 지식과 좋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하면서 수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세상을 떠도는 생활을 해야 했고, 때로는 사십에 하나를 감하 매를 맞아야 했으며, 굶주리거나 옥에 갇히는 일도 적지 않게 당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는 그 자신의 고백처럼, 그에게 다가온 수많은 고통과 고난을 오히려 기쁨과 감사로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고난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하신 것처럼,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모든 고통을 감사하게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로마서 8:18을 보면 사도 바울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울 자신의 고백대로 그는 하나님 나라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을 소망할 줄 아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부활사건이 십자가에서 당한 수난과 죽음의 연장선상에 있었음을 개달았던 지혜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감히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들의 삶으로 돌아와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통당하시고 고난당하신 사순절 기간을 맞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고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함을 통해서 우리가 받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오늘 내가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고난받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는 일이며,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의 면류관을 소망할 수 있는 기쁨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건이 반드시 십자가의 수난과 관련된 연장선상 가운데서 말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영광에 참여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받는 고난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오늘 우리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쫓으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사도바울은 이 말씀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워, 그 고난에 동참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나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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